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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저물어 간다. 손에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 오른 손목에 감았던 밧줄을 풀어 왼 손목에 감고, 그걸 또 오른 손목으로……몇 번을 반복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해가 떨어져가면서 나의 체력 또한 떨어져간다. 이래 봤자 일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추락해 죽을 것이다. 한번 상처 입은 밧줄은 마모되는 속도에 엄청난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며, 버텨주는 장력 또한 종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상처를 주면 안 된다.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떨어지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음을 시사해준다. 해는 떨어지면 다음날 다시 솟지만, 나는 그럴 리 만무하다. 나의 추락은 되돌릴 수 없는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번의 실수로 밧줄에 ‘되돌릴 수 없는’ 흠집을 내었고, 그 흠집은 나에게 ‘되돌릴 수 없는’ 추락을 선물할 것이다. 한번의 실수, 이 말을 되짚어본다. 한번의 실수, 한번의 상승 욕구, 한번의 몸부림. 대부분의 실수는 의욕적일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열정 없이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굉장히 고무되어 있었고, 위로 올라가서 이 지리멸렬한 두려움의 지속을 끝내겠다는 열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실수를 유발하게 한 이유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쩌면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실수 아닐까. 그냥 애초에 냉정하게 마음 먹은 것처럼 오래 매달리는 것에 집중했더라면 최소한 악화된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방향성이 올바르지 않은 열의만큼 딱한 것도 없다. 고찰은 계속된다. 살고 싶은 욕구를 가졌다는 게 꼭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병법인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이는 살 것이다?’하지만 이순신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살기 위해서 한번의 몸부림을 치지 않았겠는가? 아니다. 이건 그런 종류의 문제는 아니다. 만약 살고자 하는 열정이 문제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방법이 틀린 건가. 하지만 밧줄에 매달린 상태에서 발을 딛고 밧줄을 타는 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역시 열정이 문제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건 결과론적인 분석이기에 처음부터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코에 땀냄새가 진동한다. 밧줄이 점점 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이 실제인지 상상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제이슨, 넌 어떻게 생각해?
제이슨은 히죽 웃을 뿐 대답이 없다. 늘 그 얼굴뿐이지? 넌 그 표정밖에 못 짓지? 돌아이 같은 놈. 정말 쓸모 없는 돌멩이 같으니라고! 어차피 네놈은 내 공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처지가 이렇게 되었을지언정, 생각은 멈추지 않으니까. 인간은 끊임없는 사유를 하게끔 되어 있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웃기지 않은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유’라는 것은 정작 내 맘대로 멈추거나 시작할 수 없는 천덕꾸러기라니. 그래서 사고를 멈추기 위해 인간은 육체까지 죽여야만 하는 과잉희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살은 슬프디 슬픈 사치인 것이다.) 사람은 생각을 멈추면 죽는다. 생각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고결한 요소이고, 따라서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나는 고층 빌딩이 즐번한 도시에서 죽은 것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딱한 것들. 제이슨과 다름 없는 것들. 그런데, 충격적인 점은 제이슨은 생각이 없지만 영원하다는 것.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생각도 없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 생각이 많은 나는 반드시 멸할 것이고, 제이슨은 영원할 거라는 것! ‘생각이 있어야 살 수 있다’라는 명제는 이렇듯 내 안에서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의 사유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나는 죽을 것이다.) 열정은 그 보답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죽어도 뭔가가 변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제이슨은 나의 급 하강을 바라보며 비웃을 것이고, 이 일 이후에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이나 오래 살 것이다. 젠장, 히죽대는 제이슨의 눈알을 파버리고 싶다. 가만, 왜 무생물에 화풀이인가. 유치하게. 저 놈은 내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 따라서……어라? 이상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고 있을 때 놈은 웃으며 위를 보라고 했다. 위를 보라고 했다? 무생물이 나에게 위를 보라고 했다고?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때 분명 제이슨의 눈은 위를 향하고 있었다. 위를 보며 웃고 있다고 느꼈기에 나 역시 위를 본 것이다. 그건 분명 나의 혼돈된 의식이 만들어낸 강렬한 열망의 투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보는 이 광경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생물 제이슨의 눈은 정확히 아래를 응시하고 있다. 이건 대체? 어째서 무생물 따위가 눈알을 굴리는 것일까? 내 혼란이 만들어낸 결과라면 어째서 눈이고, 왜 눈뿐인가. 뭐라고? 생각하면 죽는다고? 너의 충고를 내가 들을 성 싶으냐? 제이슨은 대답 없이 또 웃기만 한다. 사물이니까 관념을 부여하는 태도에 따라서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느껴지는 것일 테다. 아무튼 이번엔 제이슨이 밑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쳐다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 나는 절대 다시는 밑을 쳐다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맛보았던 아득한 공포를 반복해서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애써 무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것도 여간 쉽지가 않다.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데다가, 앞을 보면 제이슨이, 위를 보면 끊어진 밧줄이, 옆을 보면 (해가 저물어가므로) 어둠이, 서서히 무언의 압박을 해오는 것 같았다. 밑을 바라 보라! 이건 거부할 수 없는 표징이었다.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은 것처럼, 칠흑 같은 밤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것처럼, 기분 나쁜 호기심의 표징이다. 나는 다시금 밑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전히 밑이 보이지 않는 암흑은 밤이라서 그런지, 검정 종이에 검정 먹물을 덧바른 것처럼 그윽한 심연의 어둠이었다. 공포는 예전과 같았으나, 밑을 다시 보는 것은 필경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나는 처음보다는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고 싶었다. 이번엔 낭떠러지 밑뿐만 아니라 아래쪽의 벽 부분도 살폈다. 오, 이럴 수가! 아까는 공포에 눈이 가리워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보였다. 정확히는 내 발 밑으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조그만 틈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손목에 감겨있던 밧줄을 풀고 조심스럽게 밑으로 발을 디디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달려 내려가는 것도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었다. 얼마 후, 신발 끝에 틈이 느껴졌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 채로 서둘러 두 발 끝을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다행히 밧줄의 길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다 주는지 쉽게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발을 전부 밀어 넣을 만큼 충분한 틈은 아니지만 일단 지지할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온 체중을 밧줄에 실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당분간 금방 죽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살았다. 아니, 살아있다! 게다가 (밧줄에 힘을 주지 않으므로) 끊어질 염려 또한 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디 그 뿐인가. ‘틈’이라는 것에 주목해보라. 겨우 발은 ‘얹어놓는’ 난간이 아니라, ‘끼워 넣을’ 수 있는 틈이라는 것. 만족스러울 순 없으나, 제법 튼실한 고정이 되기 때문에 몸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발을 끼워 넣자 그 동안 밧줄을 단단히 붙잡느라 고생했던 양 팔이 쉼을 얻었다. 한 팔 정도는 밧줄을 잡지 않아도 버틸 만하다. 양팔을 교대로 조금씩 쉬게 할 수가 있었다. 밧줄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몸을 이리 저리로 틀어 스트레칭을 하였다. ‘틈’의 가장 큰 소득은 역시 더 이상 밑을 보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였다. 이제는 충분히 아래쪽뿐만 아니라 양 옆을 살피며 지경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틈 하나가 다양한 갈래의 자유를 가져다 주다니! 마음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러자 간사하게도, 여태껏 깍듯이 잊고 있었던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상태라면 잠깐의 수면도 가능하다. 발을 단단히 끼운 채, 손목에 밧줄을 돌려 감았다. 몸이 뒤로 젖혀지지 않게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잠을 청했다. 세상에, 나는 행운아다!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올 행운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