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초창기에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순간을 맞은바 있다. 조선소 설비자금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주영 회장이 마침내 영국 버클레이 은행의 부총재와 면담을 하게 된 것이다.
만일 그 자리에서 부총재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조선사업을 일으키려던 정주영 회장의 야심은 물거품이 되고 한국이 조선 선진국이 되는 것도 물건너 갈 판이었다. 한 기업의 사활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미래까지 걸린 면담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날고긴다는 경제 전문가, 금융전문가들이 배석한 가운데 날카로운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부총재-당신 전공이 무엇입니까?
정회장-(속으로) 이 사람아 소학교에 전공이 어디 있어?
대답이 없자,
부총재-전공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기계공학 아니면 경영학
정회장-저의 사업계획서는 읽어 보셨습니까?
부총재-물론이오.
정회장-내 전공은 바로 현대조선 사업계획서요.
부총재-모두 한바탕 웃음.
정회장-조마조마
부총재-당신은 유머가 전공이로군요. 당신의 유머와 사업계획서를 함께 수출 보험국으로 보내겠소.
위기의 순간을 절묘하게 넘긴 한마디의 유머. 아시아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무명기업인 정주영은 다름 아닌 유머의 힘으로 영국인들을 설득함으로써 어려운 면담을 멋지게 성사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유머란 어떤 때는 회초리 역할도 하고 해결사 역할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