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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

안준형 |2007.12.18 18:43
조회 84 |추천 1

내 아버지.

음력 54년 1월 2일 생.

현 초등학교 교감선생님.

키 182에 85kg.

 

고등학교 때 농구를 했고 내가 알기론 집안 사정때문에 그만 두어야했다. 지금 내가 카드를 들고 나가 맘에 드는 신발을 긁어 버리기만 하면 살수 있는 농구화 한켤레를 살 돈이 없었기에.

 

난 운동선수들을 많이 안다.

중학교때 내가 다닌 춘천중학교에는 농구부,야구부,수영부가 있었다. 고등학교때는 레슬링부와 유도부가 있었다.

 

그리고 운동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운동을 하다보면,

그것이 내 미래를 그려나가는 주된 직업으로 인식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스레 학업은 멀어지게 된다.

 

내 아버지의 시대에 비교적 선생님이 되기가 쉬웠다지만,

막말로 운동만 하던 무식쟁이가 선생님이 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어릴적 아버지는 내게 악마이자 괴물이였다.

그 큰손바닥으로 내 뺨을 때리거나 몽둥이로 찜질을 할때면,

무서움에 벌벌 떨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때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과 혹시 내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했다.

 

난 자주 맞았다.

 

시험성적이 떨어져서 맞은 것도 아니요,

도둑질을 하고 누구를 때려서 혼이 난것도 아니다.

 

거짓말.

 

학원을 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학교에서 거짓말을 하고 조퇴를 했다.

컴퓨터게임이 하고 싶어서 바둥바둥 거렸고,

당시 붐을 이뤘던 PC통신때문에 전화비가 20만원이 나오기도 했다.

 

학원이나 과외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시키지 않으셨다.

다만 내게 항상 강조했던건 운동 뿐이였다.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좋은 추억들만 머릿속에 저장된다고 들었다. 다른 경우엔 너무 강렬한 기억들이 남는다.

 

신기한건, 난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엄청 많이 맞고 자랐지만,

별로 기억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 무릎에 앉아 차 운전을 해봤던일과,

멋진 노란색 오토바이를 타는 아버지모습이 기억난다.

세련된 양복을 입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과 새로산 자동차를 몰던 모습.

집앞에 벌통에서 꿀을 따던 모습도 생각나고 나를 대리고 우뢰매를 보러 갔던 일도 생각난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주워온 자식에게 참 다정했던 괴물인듯 하다.

 

얼마전 내게 또 잊을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오랫만에 내려간 춘천에서 귀국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자리.

그 날만은 술을 진탕 취하고 싶어 차도 두고 갔건만.

 

급히 울리는 전화는 날 쉽게 취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난리가 아니라는 전화.

평소에 아버지의 술버릇은 술에 취해 그냥 주무시는 것이였다.

 

하루는 큰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친구분댁에서 업고 차에 태운적도 있고, 집앞 계단에 쓰러진 아버지를 겨우 일으켜 집에 온적도 있다.

 

서둘러 택시를 탔다.

 

집에 도착했는데.

현관문을 열자 바로 앞에 아버지가 쓰러져 계시고 누나는 울고 있다.

 

수습을 해보자.

 

누워있는 아버지를 겨우겨우 들어 거실에 눕혔다.

그런데 잠이 깬 아버지가 우신다.

내 머리끄댕이를 부여 잡고 가슴팍에 머리를 꼭 잡아당겨 끌어안고는 콧물까지 흘리며 우신다.

 

왤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널 잘못키웠어. 미안해."

 

...

 

난 잘컸는데.

삼시세끼 밥도 잘 먹고,

돈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옷을 못입은 것도 아니요,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못간것도 아닌데.

 

왤까...

 

 

펑펑 우시는 아버지의 숨겨뒀던 마음을 조금 알게 되는 순간.

 

언젠가 [구성애의 아우성]이란 성교육 방송을 본적이 있다.

한때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성교육 아줌마.

뭐, 이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건 강렬했던 추억이거나 내가 몰랐던 기억하고 싶은 좋은 추억일수도 있다.

 

지금은 불가능하리 만큼 힘든일이 된,

온가족이 모여앉아 TV를 보는 일.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거실에 둘러 앉아 그 방송을 보고 있는데

우스겟 소리로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우리 준형이도 몽정해본적 있니?"

 

난 얼굴이 빨개져서.

 

"뭔소리에요."

 

하고 방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방에 들어갔던일.

 

낚시를 좋아하는 나에게 함께 낚시를 가자던 일과 오랫만에 집에 들어가면 외식을 나가자거나 여름에 가족과 함께 콘도를 가자고 하던 일들.

 

모두 나에게 다가오려고 했던 아버지의 노력이고 용기였다.

아버진 그 무뚝뚝한 성격에 내게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엄청나게 생각하시고 용기를 내셨을 텐데.

 

난 단박에 짤라 버렸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나보다.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아버진,

내가 태어나서 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빼곤 한번도 보지못한 눈물을.

이 모진 아들 때문에 흘리셨다.

 

사랑해. 사랑해를 연신 외치시면서 날 놓지 않으신다.

얼마나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으셨을까.

 

아들은 이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

또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말을 얼마나 듣고 싶을까...

 

난,

 

아직 아버지의 사랑을 모두 이해하기가 어려운 철부지이다.

부자간의 이유없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닭살과 유치라는 놈을 개입시킬 만큼 아직 부정을 잘 모르는 모진 아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역시 내 아버지.

 

타지에 나가 공부하는 아들에게 단한번도 힘드냐? 정도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던 매정하게 보였던 아버지.

 

그렇게 술이 많이 되시고도 아들만 찾고 아들만 안고 아들을 위해 눈물을 보였던 아버지.

 

난,

 

지금 날위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돈을 뿌려가며 살고 있는데.

 

잘하자.

 

부모님께 잘하자.

사랑한다는 말.

고거 힘들면 그냥 전화라도 자주하자.

 

아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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