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은 맑지 않았다.
찌뿌둥한 날씨는 오히려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오랜시간을 달려와 차에서 내렸을 때
바다는 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고
목장갑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서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그리고, 1년 반만에 온 바다라는 것에 기뻐할 정도로.
한걸음, 또 한걸음 다가갔을 때
처음엔 무엇을 해야하는건지, 어디가 그렇게 오염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군데군데 시꺼먼거 보이지? 저게 다 기름이야. 퍼내야해."
흙 중에는 유난히 까만 흙이 있었다.
그 것이 기름이라고 했다.
장갑으로 모으고, 삽으로 떴다.
모래는 가능한한 퍼내지 말아야해서 조심조심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기름들이
일을 하면 할수록, 기름을 떠내면 떠낼 수록 더 많이 보였다.
쉴 수가 없었다. 밀물이 들어올테니 4시간 밖에 일을 할수가 없는데
나는 오늘 오면 또 오지 못할텐데
조금이라도 더 기름을 떠내고싶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추억을 남기겠다고 카메라를 챙겨왔던 내가 부끄러웠다.
차에서 가지고 내리지 못한 것을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물이 점점 차오르는데
나를 포함한 영세교회 45인이 삽자루와 장갑과 쓰레받기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퍼냈는데도
모래사장은 너무 넓었고 기름은 너무 많았다.
바다가 너무 힘이든 나머지 토악질 해놓은
씨꺼먼 기름덩어리들이 물을 만나자 서로 엉겨붙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물에는 투명한 기름 덩어리가 둥둥 떠다녔다.
밀물이 모두 차오르면
바다는 다시 이 기름들을 품어야만 하겠지.
발이 자꾸 빠지고 물에 젖은 모래가 너무 무거워서 힘들다고,
조금 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떤 오빠가 게를 손 위에 올려주었다. 아주 조그만 게.
그저 좋아서 게를 쳐다보다 일을 하기위해 발밑에 내려주었다.
게는 내가 무서웠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라고, 밟히지 않게 가라고,
옆에 손가락으로 살짝 도랑을 파 주었다.
게는 그 곳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런데
눈에 밟혀서, 도랑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이 자꾸 눈에 밟혀서
게를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모래있는 곳에 놓아주었다.
게는 자꾸만 자꾸만 나에게 도망치기위해 도랑속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기름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게를 빼내었다.
그렇게 몇번을 하다가 나는 눈을 돌렸다.
게는 이 곳이 집이니까. 삶의 터전이니까.
내가 이 곳에 기름을 모두 퍼내지 않는 이상
나는 저 게를 구할수 없을 것이 당연하니까.
하나님이 아닌 인간은
이렇게나 작은 생명에게조차도 구원을 줄 수 없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 45인이 한 일이
이 작은 생명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되는 일이었기를.
기름유출사건을 보도로 접한 후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생명들을 동정했다.
지금껏 이 썩은 바다를 보며
통곡해야했던 어민들을 위해 슬퍼했으니 지금 이 순간 만이라도
새카만 기름 속에서 몇 천번 아니 몇만번이라도 구역질을 했을
가여운 생물들을 위해 슬퍼했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해야하는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바다를 병들게하고 무수한 생명들의 숨통을 조인 이 기름은
예정대로였다면
내가 편하기위한 이동수단과,
내가 따뜻하게 지낼 난방과,
내가 사용하는 수도없는 석유화학제품들을 위할 것이였겠지.
다시 일을 하기위해 허리를 굽히고
기름을 떠냈다.
물이 차오른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조금 후면 이제 끝내야할 것이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서해바다는 찌뿌둥한 하늘 때문에 더욱
하늘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수평선 저 끝에서
바다는 하늘과 뒤섞여서 밀려오고있었다.
힘들게, 숨가쁘게 뱉어낸 기름들을 다시 품기위해서.
이미 먼저 수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떠냈기 때문에
바다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아직도 해안가에 기름이 이렇게 많은데..
겉모습이 저렇게 아름다울지라도 그 속은 썩어가고있겠지.
그 결과는 곧 다시 표면으로 나타날것이고..
인재의 끝은 천재의 그 것만큼이나 잔인하고 가혹할테지.
물이 많이 차올라서 결국 4시30분쯤 작업을 끝냈다.
가는 길이 즐거웠던 것처럼
오는 길도 역시 즐거웠다.
웃었고, 떠들었고, 노래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다.
아마
서해안에 엉겨붙어있던 그 새까만 기름덩어리들이
나에게도 옮아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