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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팔자에 없는 공부를 한답시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남산 도서관이란 곳에서 하루의 반정도를 보내고 있지 않겠어? 태어나서 그토록 도서관에 오래 머무는 것도 그토록 오래 앉아있어 본것도 처음이야.
중학교 반배치고사를 준비하는 초딩부터 대딩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준비생에 공인중개사 공부하는 할아버지들까지 어찌나들 열심히 공부하던지...
공부를 하러 갔음 공부만 해야 하는데, 짬짬이 거기 온 사람들의 천태 만상을 관찰하게 되는건 아마 버릴수 없는 천성과 하늘이 내린 오지랍 때문이겠지? 그런데 아까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가 정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식권 매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세 개 뿐인 메뉴( 돈까스 백반 카레라이스)중 하나를 선택하려 고심하고 서있는데 앞에 있던 할아버지가 지갑에서 천원짜리 하나를 꺼내고는 한참을 망설이는거야. 천원으로 먹을 수 있는건 빵이나 과자 뿐이었거든. 사발면이라도 팔고 있더라면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될 수 있었을테지만, 거긴 사발면을 안팔더라구
한 30초가량을 망설이던 그는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 몇 개를 꺼내더니 단팥빵 한 개와 삶은 계란 두 개를 샀어. 그리곤 테이블에 앉아 두손으로 받쳐든 빵을 아주 천천히 한 입씩 베어먹고 있었지.
보려구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가 천원을 꺼낼 때 검게 어두워지는 지갑의 속내를 들켰던 터라, 내 가슴은 순간 먹먹해 졌어.
천원짜리 몇 장 쯤은 어느 주머니에 넣어뒀는지도 모르게 이리 저리 쑤셔박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어
3000원짜리 백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먹으며, 좀 더 맛있는걸 먹지 못해 아쉬워하던 내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렇다고 내가 생면부지의 그에게 대뜸 밥을 사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대체 그는 뭘 공부하러 거기에 왔던 걸까?
새삼 나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밥숟갈에 눈물겨운 감사를 느꼈어
풍요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린 스스로에게 주어진 현재에 끊임없이 감사해야만 해.
아무 생각없이 돈을 지불하고 사 피우는 담배 한 갑이 이천 오백원, 기분이 궂은 날이면 한잔 해야지 하는 생각에 몇 만원어치 술을 마시고, 몸을 가누기가 거북해지면 손을 척척 들어 택시를 잡아타고... 서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치도 못했던 기름 유출 사고로 일주일에 삼만원 벌이쯤 되던 해산물 채취를 못하게 되었다고 울고 불고 하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나라 얘기를 접하고 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망년회를 벌이며 흥청망청 살아가고 있으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그 흔한 구세군 자선남비에 천원짜리 한 장 넣질 못했네. 나 하나쯤 외면해도 세상은 돌아간다고 생각했던건 아녔을까? 고개 숙여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야...
나에게 허락된 현재에 진심으로 감사할 때 반성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씩 줄여 갈 수 있지 않겠니?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