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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여행기(3)

김지훈 |2008.01.21 00:26
조회 63 |추천 1

     아름다움으로의 출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하도 모기가 극성인데다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숙소를 나와 바람을 쐬어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다 아침 6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서 5시에 기상을 하였다. 우리는 간단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 짐들은 이곳 숙소에 맡기로 하였다. 숙소를 나와 예정된 장소로 나갔다. 투어버스를 타는 곳까지 데려다 줄 차량이 6시가 되기 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정도 성도 시내를 달리는데 운전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는지 차가 중앙선을 넘어 질주를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원래 이렇게 운전을 하는 건가 보다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정확한 역명은 모르겠지만 그는 역 근처에 이번 여행을 함께 할 가이드와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우리를 내려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휴게소에 핀 다알리아 / 붉게 활짝 핀 꽃봉우리가 매우 정열적으로 보였다.


  가이드가 막 중국말로 빠르게 이야기 하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고 중국말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는 소음이었다. 그래서 이번 3박 4일 내내 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가이드의 음성은 나에게는 정말 악몽과 같았다. 왜 이리도 목소리가 큰지 그리고 스피커 소리가 넘 커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

  내가 수업 시간에 그렇게 소리를 지를 때 얼마나 녀석들이 싫어했을까 하는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 돌아가서 수업을 할 때 녀석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근데 지켜질 지는 모르겠다.

  그곳에서부터 중국인 교사 부부와 딸(아직도 의구심이 생긴다는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했다는데 말이다)이 은근히 친한 내색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저녁때에는 그들이 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같은 교사라는 동질감에 끌렸는지 우리는 여행 내내 더욱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고, 식사 때에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서로 자리를 마련해 주며 깊은 정을 나누게 되었다.

  잠시 후 우리와 3박 4일을 함께할 투어버스가 도착하였고 탑승과 함께 구체구로 향한 장장 10시간의 길고도 먼 여정이 시작되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까닭이었을까. 차에 타자 마자 잠이 들었고 2시간을 채 못 가서 차가 성도 변두리에 한 휴게소 같은 곳에 멈췄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거의 2시간마다 차는 휴게소에 멈추어 섰다. 관광객들의 화장실 문제도 있었지만 궁극적인 것은 바로 차의 브레이크의 가열을 방지하고 냉각수를 보충하는 것이었다. 머 장시간 움직이다 보니 쉬어가는 것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너무 자주 쉬는 것 같았다.

  첫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들렀는데 말로만 듣던 중국의 화장실의 실태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어릴 적 시골의 공중 화장실을 보는 것 같았다. 냄새는 그렇다치고 칸막이가 없어서 남의 흉직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아야 한다는 현실에 화장실에 대한 거리감이 더욱 커지게 하였고 한때는 식욕 부진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런데다가 더욱 답답한 것은 예전 터키 여행에서도 그랬듯이 화장실 이용료를 받는 것이다. 화장실이라고 달랑 만들어놓고 관리는 제대로 안하면서 돈을 받아 챙기는 실태라니 정말 한심하다. 심지어는 화장실 앞에 앉아서 뭐가 그리 좋은지 맥주까지 마셔가면서 희희낙락하는 중국인들을 보았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구체구 가는 길 / 협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야크(목우)와 여주인 / 휴게소에서 관광객에게 야크를 이용(야크 타고 사진을 찍는 등)하여 돈을 벌고 있다. 웃긴 것은 이 야크보다 옆에 더 잘생긴 야크가 엄청 인기가 많았다.


  첫 휴게소를 지나 나름대로 평야지대를 달리던 버스는 차츰 험준한 협곡으로 난 구불구불한 그것도 차 두 대가 거의 아슬하게 비켜나갈 수 있는 그런 길을 달렸다. 도로 밑으로 천길 낭떠러지였고 강 물살은 세찼다. 

  중간에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우린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성도에서 먹은 사천요리와는 격은 다르지만 구성은 거의 흡사했다. 그때의 식사와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역시나 나는 별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데 밥에 찰기가 없어서 젓가락으로 뜨는데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밥알이 날아갔다. 이런 식사를 거의 3박 4일동안 식사를 했으니 난 거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점심 식사때 화장실에 다녀온 권석자 선생님은 그 여파로 더욱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쉬는 틈틈이 성도에서 가져온 과일과 빵을 이용하여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다른 과일들은 맛이 별로 없지만 복숭아 하나만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구체구 가는 길 / 판자를 얹어 만든 집, 그리고 위성 안테나도 있고 이 협곡의 험난함을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다.


  점심을 마치고 난 후 버스는 여전히 험난한 협곡을 무한 질주 하였다. 예전에 이곳에 도로가 생기지 않았을 당시에는 정말 이곳 사람들은 현대 문명과 격리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긴 현재에도 이곳은 거의 현대 문명과 격리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도로 곳곳의 휴게소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그나마 현대 문명과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체구 가는 길 / 마지막 휴게소에서 바라본 풍경, 넓게 펼쳐진 옥수수밭, 맑은 파란 하늘 그리고 거기에 뭉게 구름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었다.


  협곡 밑으로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 그리고 주변으로 높게 솟은 녹색빛의 산들, 가끔씩 밭을 가득 메운 옥수수, 보리, 정말 파란 물감으로 물들인 것처럼 보이는 하늘, 그리고 그 안에 하얀 물감을 한방울 떨어뜨린 듯한 구름들, 정말 한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지금 내 눈에 펼쳐진 풍경들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 고향의 풍경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해보았다. 어린 시절의 공기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메꾸기엔 충분하였다.

  어느덧 10시간의 장정이 끝나고 오늘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호텔에 도착하였다. 대략적으로 해발 2000미터에 위치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호텔 옆의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였다. 아침에 안면을 튼 중국인 교사 부부 가족과 함께 자리하였다. 식사 메뉴는 점심 메뉴와 같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맛김으로 대충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 중국인 가족이 교사부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아버지는 중국어 선생님, 어머니는 영어 선생님(상당한 영어 실력의 소유자), 그리고 딸(?)은 일어를 전공한다고 한다. 집안이 다들 언어학을 전공하는 나름대로 엘리트 가족이다. 우리 일행 모두 교사라고 소개하면서 서로 친근감을 표시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 허름해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 10시간 대장정의 피곤을 씻기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2007. 7. 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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