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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자유, 상호주관성

김간중 |2008.01.23 10:09
조회 76 |추천 1

  약물에 대한 논의는 많은 오해와 선입견에 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 하나 올려봅니다. 글쓴이는 과학과 철학 및 시사에 관련해서 많은 팬을 거느린 젊은 학자입니다. 경상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히피, 자유, 상호주관성


 


  지금은 제가 뭐 쓰는 게 있어서 히피 역사나, 문화, 발생 동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은 힘듭니다. 대충 얘기합니다. 민족주의, 팽창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여 일어난 히피 세대를 알려면, 특히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기원을 알려면, 여러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휘트먼 등 19세기 자연주의 문학 운동까지는 건드리지 않더라도, 60년대 히피 운동과 맞물리는 싸이키델릭 문화 운동도 알아야 합니다. 비트 세대, 히피, 사이키델릭 운동 모두는 변화된 의식의 상태를 통해 '권력에 의해 조작된 심적 구조의 해방'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위 우리가 마약이라고 부르는 '의식 변화제'를 사용하며, 이 사용법은 서구에서도 역사가 무척 깁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제 글을 보십시요.



캐너비스의 약효, 부작용 그리고 역사

  또 히피에 대한 성숙한 이해는 자연주의, 곧 철학에서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민중들 속에 녹아든 자연주의와 이와 연관된 자연주의자들(naturalist)의 운동도 알아야 합니다. 소위 누드 운동도 부분적으로 그 자연주의자들의 운동과 관계를 맺습니다. 어쩄거나 비트, 히피, 싸이키델릭, 누드 그리고 페미니즘의 일부 운동 모두가 권력 집중화 경계 및 탈권력을 지향합니다.


  특히 히피는 서양 역사에는 실제로는 '개인의 진정한 자유'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자유의 정신적 원천을 동양이나 다른 곳의 종교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우드스턱 공연, 곧 90년 대 말 잡것들이 흉내낸 그것 말고 68년인가 오리지널 우드스턱 공연을 보면 Ravi Shankar라는 인도 음악가와 요기들이 등장합니다. 선불교는 일본의 것이 먼저 일부 히피 세대의 공동체 문화권으로 흡수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히피들도 다 똑 같은 이념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동양의 종교에서 개인적 자유의 원천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이들 사이에도 알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가나 불교에 대한 미국인의 대중적 관심은 사실 히피들 보다는 비트 세대 문학가들이 제공했고, 히피 세대 때 서부를 중심으로 폭발합니다.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은 실제로는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그래서 히피 세대는 대충 다음 세 가지를 지향한다고 보면 됩니다.


(1) 탈권력과 권력에 조작된 심적 구조의 해방, 그리고 여기에는 국적도 인종적 차별도 없다는 점! 속칭 의식 변화제 마약은 그 심적 구조의 해방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며, 이 전통은 인도에서는 오래되었습니다. 당연 석가모니도 무척 많이 했겠죠. 인도에서 금욕 주의자들도 다 했던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사용한 마약을 그들은 쾌락 추구제나 심적 안정제로 보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2) 진정한 개인적 자유의 발견과 추구 그리고 서구 집중 문화 의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 비트 세대의 알란 긴스버그(후에 소개할 사이트 참조)가 강조했듯이, 서구에는 진정한 개인의 자유 역사가 없다고 히피들은 봅니다. 그 대신 권력적이고 팽창적인 정치적 형태 속에서 '개인주의'가 역으로 강조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요. 철학이나 사회학에서 개인주의의 '개인'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그냥 개인으로서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에서 개인은 자율성의 원천으로서 이성을 소유한 자입니다. 과연 그러한 자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요.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거의 해탈과 자기 해소의 의미를 띠는 자유 개념이 인간을 타 동물과 구별하기 위해 도덕적 지성체로 규정한 '이성'과 '자율성'에서 도출 가능한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해탈과 자기 해소의 의미를 띠는 자유가 궁극적으로는 도덕성을 함축할 수 있다는 관점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는 매우 이질적인 것입니다.


(3)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함! 여기서 중요한 것은 (2)에서 밝혔듯이 히피가 추구하는 개인적 자유는 자유주의의 자유도 아니며, 근대 이후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개인과 무관합니다. 개인적 자유는 한 사람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지향해야 할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히피가 추구하는 개인적 자유는 개인의 권력에 의해 조작된 심적 구조의 해방이 있을 때 가능하며, 이러한 해방의 방법은 집단적 성격을 갖습니다. 인디언들이 독버섯을 사용해 집단 환각 여행을 하는 제의(ceremony)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개인적 자유와 공동체 지향이 히피 운동에서는 서로 갈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개인적 자유 추구를 위한 공동체 생활 영위 정신을 히피들은 고대 문화에서 찾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제가 지금 쓰는 것이 밀려서 상세한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그 대신 다음 사이트를 참조하십시요.



히피란 무엇인가?

  소개한 사이트에서 다음 인물들은 히피 운동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비트 세대 문학가이자 미국에 선불교를 소개한 인물인 긴스버그!



Allen Ginsberg

  하바드대학 심리학 조교수로서 히피들이 사용하는 마약의 부작용 연구 의뢰를 CIA로부터 받고, 후에 CIA의 적이되는 티모시 리어리!



Timothy Leary

  특히 티모시 리어리가 히피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히피 운동이 대규모적으로 확산됩니다. 그 다음 히피운동과 여러 음악가들이 맞물리는데, 단연 잼 밴드(실황 공연에서 락 및 민속음악 그리고 재즈 등을 자유자재로 섞어 연주하는 그룹)의 대명사 제리 가르시아의 그레잇풀 데드가 가장 히피다운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Grateful Dead

  다음은 질문에 대한 간단한 저의 답변입니다.


 

  "히피가 추구하는 공동체생활이 원시공산사회의 복귀로 볼 수 있는가?"


  없습니다. 히피도 그 안에 여러 부류가 있고, 반전 세력 운동에서 나온 히피들 집단 전체를 동질화할 수 없습니다. (3)에서 언급한 고대 문화에 대한 동경은 결코 공산주의가 희화한 원시사회는 아닙니다. 일부 히피 집단에 국한해서 그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히피 집단이 희망한 고대 문화는 집단별로 차이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들이 마치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의 도피를 추구한 것으로 말하는 사람은 진짜 히피 운동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물론 국내 문화 철학 등 이런 데 종사자들이 히피 운동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남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쨌든 PTP운동, 곧 개인 대 개인의 자유로운 파일 공유 운동 또한 멀리는 히피 정신에서 기인합니다. 위에서 찾아보라고 한 티모시 리어리가 80년대부터는 탈권력의 수단으로서 마약 대신 인터넷을 권장합니다. 이것이 PTP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히피는 개인의 자아를 중요하시하는데 어떻게서 공동체생활을 추구하는가?"


  (3)을 보십시요. 자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히피가 추구한 자유라면 공동체 지향과 마찰할 이유가 없음은 (3)에서 간략히 설명하였습니다.


  "추구한다면 그에 대한 방법론은 없는가? (즉 개인의 주관과 타자의 주관이 모두 인정되는 상호주관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하나의 방법론은 없습니다. 그것은 열린 문제입니다. 말씀 드렸듯이, 히피들 모두가 공동체 지향하는 방법에서 동질적 집단은 아닙니다. 히피들 중 일부는 지나치게 그 공동체 영위에 종교적 성향을 섞었고, 히피의 지향점과 달리 심지어 교주들도 탄생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재수 없게 말려든 인물이 인도의 라즈니슈라고 봐도 됩니다. 그러한 종교적 색체를 지나치게 띠는 것에 대해 다른 히피 집단, 실례로 티모시 리어리 추종자들은 반대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캘로포니아 주 히피가 양분되기도 했습니다. 리어리가 그렇게 반대한다고 해서 종교성을 반대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인도 종교에 심취한 리어리는 종교성이 아니라 종파성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주관과 타자의 주관이 모두 인정되는 상호주관성'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근무 중인 교수들, 아니면 어설픈 책에 의한 오염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강한 의미의 상호주관성도 있겠지만, 상호주관성 개념도 하나는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이었던 상호주관성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냥 개략적인 뜻만 전합니다. 상호주관성은 인간 문화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공감대를 뜻하기도 합니다. 또는 인간 문화나 사회 현상 해석의 일종으로서 상호주관성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호주관성의 광범위한 이해 틀 속에서 그 접근법은 뭐라고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철학에서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분석철학에서는 언어 및 진리론과 연관됩니다. 또 개인주의 이성 개념에 반대하여 대륙 해석학 전통에서는 가다머, 하버마스 및 칼 오토 아펠등이 상호주관성을 강조합니다. 얼핏 보면 이 양자는 무척 다르게 보입니다. 분석철학과 해석학 전통이니 그렇죠. 하지만 이 양자는 강한 공통성을 갖습니다. 개인 혹은 개체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혹은 언어적 구조가 있고, 그러한 구조의 분석이 문제 해결의 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양자의 전통은 또 후설 등 현상학 계보와도 연관될 수 있습니다. 언급한 양자보다는 현상학 계보에서 타자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조명받습니다. 이러다 보니 분석철학 진영에서도 현상학 성격을 띠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반면에 이러한 물결에 반대하는 계보는 바로 해체주의자들입니다. 자크 데리다, 레비나스 등을 들 수 있겠죠.


  곧 철학도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의 산물이며, 그 전통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에 종속된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 점이 망각된 채 무차별하게 서양철학이 학생들에게 전파되면, 남는 것은 개념의 혼선과 쓰잘데 없는 허수아비 논쟁들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한 가르치는 자들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 것이며, 이런 자들의 혀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머리 속에 심지 마십시요. 이것을 이해하면 히피가 추구한, 그러나 실현되지 않은 자유가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이념이란 그 무엇이든 결국 실현될 수 없는 운명이며, 그것의 긍정적 역할이 있다면, 이러이러한 세계상의 전파를 막는 것입니다. 이념이 무엇이든 인간이 실제 배워야 할 점은 모든 이념 운동의 실패 원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출처 : http://goodking.new21.net/bbs/index.php

글쓴이 : 이상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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