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생각해온 것이지만
내게 있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건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 보다도
더욱 난해하고
가득 쌓여있는 하지 않은 그러나 언젠간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숙제들처럼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온통 관통하여 흐르는 가슴 아픈 기억보다도
더 처절하고 아픈 일임에 틀림없다.
명쾌하게 증명하고 떨쳐 버리기엔 그 무게나
사안이 너무도 중대하고 커서
홀로는 결코 다 감당할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일임도 부인할 수 없다.
혹자는 말할 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그런 문제가 되냐고?
그저 맡기고 믿음으로 내어 맡기면 된다고!
하지만
믿음이 없어서 인지
생각이 많아서 인지
그렇게 물 흐르듯 내어 맡기기엔
너무도 부족함이 내게 발견되곤 한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내가 스스로 갖는 것인가? 아니면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진 믿음이 위로부터 어떠한 승인도
없는 것이었다면 그러니까 나만의 착각이나 틀속에서
만들어진 나 자신만을 위한 인위적이고 부적절한 것이었다면
나를 위해 유리한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참으로 쉬울 수 있다.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신뢰하고 받아들인다면 기꺼이
그 처럼 행동하려하고 그를따라 기꺼이 모든것을
내어 맡길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아는것은
우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천년 전의 그 분의 모습이 있어야만 되는 까닭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인정받으려 어떤 의식으로 구별짓고
세상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듦으로써가 아니라
세상속에서 세상을 변화시켜 가면서 그 속에 어둠을
스스로의 빛으로 밝히고 정화시킬때 비로소
위로부터 진실된 승인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면 당신은 그 분을 인정하지 않는거냐고?
우리가 신뢰하는 그 방식을 부정하는것이냐고?
당신이 스스로 할 수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고?
그래서
나는 말하려 한다.
내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건 아니라고 왜냐면
그 분은 나의 인정의 범위안에 계신분도 아니요
내가 인정하든 말든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계신 창조주시기에
오히려 나는 그분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무언가 바뀌었다고 인정의 주체가
많은 사람들이 혹은 나를 포함해서
그 분을 신뢰하는 방식이 비록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 해도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어떤 오류나 과오가 있는 것이라면
그 작고 시시콜콜한 것들에게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그 분을 향해 나아가려는 그 마음의 진정성이
중요한것이 아니겠느냐고
사람마다 인식의 정도와 사고의 폭이 다르듯
조금 다르다고 그것이 그렇게 큰일 날 만한 것은 아니리라
더욱이 중세도 아닌 현재의 지금의 세상에선
칼빈도 루터도 알니미안도 그저 이름뿐인 지금은 말이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가능하다면 그 이상이었으면 하고
이십년 이상을 그 분을 알았지만
나의 아는것이 온통 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건 그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하나
아직 이루지 못한 꿈처럼 항상
죽어서도 못이룰까봐 맘을 졸이는
아주 간단한 하나
믿으나 아직은 온전치 않은
믿으나 아직은 나를 온통 채우지 못한
그래서 그 분의 능력이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염없이 죄스럽고 송구한
그래서 성경에서 천국에서 가장 작은자라 하신
세례요한보다도 못한 자리일지라도
그저 거기 있기만 해도 감격스러울 것같은 마음 하나
이렇게 품고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 애써 감추고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네
나를 나되게 하셨듯이
내가 믿는 믿음에 위로부터의 믿음을 더하여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달라고
내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있는
내게 당신의 맘으로 세상을 알 수 있는
내 작은 소망에 믿음을 더하여 사랑에 다다르게 하여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