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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원스 어폰 어 타임

최용진 |2008.02.01 19:32
조회 385 |추천 1

 

(스포일러 있어요. 이 영화는 특성상 스포일러가 영화 감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노약자와 임산부, 아직 관람하지 않은 사람은 글을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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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시니컬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관람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영화의 오락성이 철저하게 시니컬한 유머에 기대있다는 거였다. 영화는 광복을 3일 앞둔 시점의 배경을 갖고 있으나, 진지한 독립운동을 그리지도 않고 반일의 이데올로기를 크게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일본의 존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배경지식에서 한치의 전진이 없을 정도로 평면적인 면에 그치고 있으며, 오히려 악랄한 인물의 대부분은 삼등가문 혹은 이등가문의 '조센징'들이다. 독립군은 보는 누구나 알 수 있듯 허황되게 그려져있다. 그리고 영화는 (오락 영화이기에) 이들보다 사기꾼을 가장 정면에 내세운다. 이처럼 영화는 기본적인 얼개부터 의도적으로 조소를 품고 나아간다.

 

  영화가 특수한 배경을 택하면서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배제한 채 극에 치닫는 오락성만을 과시했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 시절을 관조적인 태도로 비웃는다. 주인공 격인 사기꾼 오봉구(박용우)와 춘자(이보영)는 조선인이 가지기 어려운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오봉구는 사기꾼이자 독립군이다. 그는 조선인이며 일본인(행세)이다. 이는 분명 전에는 없던 캐릭터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유리한 것은 뭐든 갖다붙인다. 그게 섬기는 국가이고 신분이고는 중요치 않다. 오로지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서면 무슨 행세든 할 수 있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인물이다. 춘자의 경우는 더하다. 영화의 주제와 거의 빈틈없이 맞물려 있는 춘자는 아버지가 조선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그녀에게 모국은 없다.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냉대받는다. 그녀에겐 섬겨야 할 나라는 없고,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녀는 독립 따위가 뭐 중요하냐며 대놓고 비웃는다. (그래도 그녀가 밉지 않은 것은 태도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독립 운동에 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수이자 도둑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그 시대를 비웃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 한다.

 

  다른 인물들을 살펴보면, 우선 독립군으로 등장하는 카페 미네르바의 사장(성동일)과 요리사(조희봉)는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유머를 책임지고 있을 정도로 우습게 그려져있다. 상부의 작전을 수행하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를 저지르고, 평소에 대화하는 장면에서조차 우습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유머는 단순한 오락이라고 보기엔 섬뜩하다. 독립과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농을 치기 때문에 대놓고 웃기엔 뭔가 찝찝하다. 마구 웃겨주다가도 한순간 진지해지면 그 간극에서 오는 불쾌함이 크다. 아마도 감독은 이런 점을 의도적으로 노렸을 것이다. 그들의 유머에 크게 웃다가 그들이 독립군인 사실을 환기시킴으로써 우리가 비웃고 있는 것은 독립군이다, 라는 마뜩찮은 냉소말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그들은 독립운동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우리는 웃으면서 보게 되는 그들의 '노선논쟁'도 당사자들에겐 죽고 사는 문제이기에 더욱 섬짓하다. 물론 그들도 일장기를 내걸고 몰래 장사를 하는 유연성이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원래 유연하다기 보다는 어쩔수 없는 선택에 불과하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는 조선이냐 일본이냐의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지닌 자들이 오히려 코미디의 정점에 서 있게 된다.

 

  조선인을 핍박하는 친일파 조센징들도 그러하다. 헌병대장 야마다(김수현)나 경찰서장(김구택)은 자체로 유머러스하진 않지만 보는 관객에게 비웃음의 대상이긴 마찬가지다. 영화의 또 다른 중요 인물인 밑바닥 형사(임형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독립군이 가진 태극기를 흔들다가 같은 편(노선)이라고 외치며 일본인의 총탄 세례에 죽고 만다. 이쯤되면 초반엔 하하 크게 웃다가도 웃음이 잦아들며 소름이 끼치게 된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마냥 즐기기도 미안한 심정이 든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런 것이다. 독립운동이고 나발이고 그게 다 뭐냐는 것이다. 반대로 침략한 일본은 또 뭐고, 그 밑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친일파 조선인은 또 뭐냐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놈은 죽고 산 놈은 산다는 것이다. 무슨 노선을 타고 있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것이다. 죽어라고 독립시켜놨더니 이제는 일본이 나간 자리에 미국이 있다는 것이다. 카페 미네르바는 일본 손님이 없어지고 미국 손님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춘자는 일본노래를 버리고 잽싸게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르며 살 길을 모색한다. 봉구는 그런 춘자를 보며 마치 '그래,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자'라고 하는 듯 하다. 현실은 그렇다는 거다. 애초에 '동방의 빛' 같은 건 없었다는 거다. 독립이 된 후에도 버젓이 친일파가 다 해먹고, 아직도 토지가 정리되지 않은 땅이 수두룩하다. 독립군은 해방후에 뭘 할지 모른 채 그냥 식기나 닦고 카페 사장 노릇이나 계속해야 한다. 그저 그냥 어떻게든 돌아간다. 영화의 조소적 태도는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시대를 연신 비웃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놓치 않는다. 그래서 [원스 어폰 어 타임]은 무척이나 시니컬한 영화이다.

 

  혹자는 시시껍절한 오락 영화의 담론을 뭐 그리 심각하게 파헤치려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 실컷 웃으면 그만이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원하게 웃어 넘길 수도 없다. 이런 혼란스런 시대에선 그저 한 발짝 물러선 채 스치듯 살아가는 게 장땡이다, 라는 영화의 관조적 태도는 영화에 삽입된 적극적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시나리오가 아주 꼼꼼한 영화이다. 무엇보다 주조연의 고른 체력 분배가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것을 한데 모으고 영화의 흐름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탄력을 가한 것은 시나리오와 감독의 좋은 연출력 덕택이다. 후반부 여러 상황이 교차로 반복되면서 틈이 생긴다든지, 간혹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 느낌의 컷들이 거슬리기는 해도, 영화는 대체로 좋은 완성도를 가진 준작이다. 부디 강한 장르성을 가진 이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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