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허망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의 미스터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랑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장르불문 불륜이라고 해야 할까, 장르확대 로맨스라고 해야 할까. 사랑의 배신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랑의 지고지순이라고 해야 할까. 명명하거나 구분하기가 이렇게 힘드니, 출판사가 이도저도 아닌 ‘이런 사랑’이라고 번역물의 이름을 붙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색다르다면 색다른데, 이 사랑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주인공 ‘루카’는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미 시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체인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죽음에 이르렀으되, 그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으되, 이 수다스러운 주인공 루카는 조용히 할 생각이 없다. 그는 심지어 관 속에 누워 있을 때조차 수다스럽다.
“머리는 비단베개 위에 얹혀 있다. 너무 편안해서 이대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밀랍빛 안색 덕분에 경건한 이미지를 풍길 것이다. 물론 관 속이 비좁아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마침 잘 된 일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니까.”
여기에 살아 있는 사람의 상념도 만만치 않다. 그와의 사랑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안나는 갑작스러운 연인의 죽음 앞에서 슬프되 의연하다. 정식으로 혼례를 치른 사이도 아니고, 온전히 한 집에서 동거를 하던 사이도 아니지만, 그녀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계급적 품위를 지키느라 여념이 없는 그의 부모를 옆에서 도와, 아직 흔적으로 남겨져 있는 그를 말끔하게 정리하려 애쓴다.
“이 모든 것이 너를 웃게 하겠지, 루카? 내 편집증부터 시작해서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는 성향, 무슨 일이든 미루지 못하는 성미, 정리정돈에 대한 집착, 이 모든 것이 너를 웃게 했었지. 나를 만나기 전에는 정리정돈하는 이탈리아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죽음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는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의 몸에서는 이제 ‘구더기들이 번식’하고 ‘눈구멍 속에서 유충들이 기어나오고’ 있는 중이지만 남은 사람들의 주변에서도 솔솔 의심의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루카가 살아 생전에 또다른 사랑을 나누었던, 기차역에서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젊은 남창인 레오가 등장한다.
“... 우리는 서로를 몰랐지만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우리 몸은 단번에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첫 경험과 익숨함이라는 두 감각은 우리를 동시에 쾌락으로 이끌었다. 현혹의 절대 경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쌍둥이와 같은 일심동체의 떨림을 겪어야만 한다.”
안나와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레오와의 사랑 또한 루카에게는 소중했다. 그리고 안나에게 루카가 중요했던 것처럼 레오에게도 루카는 중요했다. 물론 두 사람이 다른 것이 성별인 것만은 아니다. 레오는 안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안나는 레오의 존재를 몰랐다. (이렇게 보면 불륜의 상대는 때때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 대부분 불륜의 상대는 그 사람의 처 혹은 애인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대부분 그 사람의 처 혹은 애인은 불륜의 상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내가 견뎌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레오 베르티나는 내 일굴을 알고 있었다... 나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다시 한번 불균형. 다른 취급. 레오 베르티나는 알 권리가 있었고, 나는 우롱당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이제 안나는 큰 결심을 하고 레오의 일터인 기차역으로 레오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레오는 그곳까지 나오기는 했으나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대는 안나를 알아본다. 무엇을 확인하기 위함인지도 모른체 그들 두 사람은 그렇게 공통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 마주친다.
“... 우리가 과거에 누린 행복은 분명 같은 맛은 아니었겠지만, 틀림없이 똑같은 밀도로 강렬했을 것이다. 우리가 나름대로 느끼는 이 동지애는 병원 응급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부상당한 사람들의 것과 같다.”
루카와 안나와 레오... 통속적인 사랑 그리고 허망한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소설은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리고 이미 죽은 자의 목소리라는 신선한 형식으로 활로를 찾는 듯하다. 프랑스 소설 특유의 기름기 없는 건조한 상념이 계속되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들이 (루카의 부모님이나 사건을 맡은 형사와 같은) 양념의 구실을 한다. 눈을 희번득거리며 들여다볼만한 것은 아니지만 무미건조에도 불구하고 서걱거리는 씹는 맛이 있어 읽을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