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1&articleId=1652 >
저는 지금 중앙경찰학교에서 경찰관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입니다.
지금은 현장 실습을 위해 지구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실습나온 지구대는 서울 시내에서도 가정 형편이 가장 좋지 못한 영세민들과 서민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서울 서부 지역입니다.^^요기까지만요.)
그래서, 사건도 많고 다툼도 많고..이래저래 상당히 바쁜 곳입니다.
오늘 오전에 연세가 70이 가까워 보이는 노인분께서 지구대를 찾으셨습니다.
시장에서 조그맣게 반찬 가게를 거의 노점처럼 혼자서 하고 계신 할머니였는데 안색이 사색이 되어 장사하는 앞치마 차림 그대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지구대에 오셨네요.
할머니께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어봤는데, 할머니께서는 근처에 있는 성형외과 병원에 근무하는 병원 직원들의 식사 반찬을 공급하고 계셨고, 한달에 80만원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돈이 없으셔서 병원 원장님으로부터 선불로 80만원을 받으셔서 그 돈으로 반찬을 만들어 공급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이 선불금을 지급받는 날이었고 할머니는 80만원을 병원으로부터 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수표를 분실한 겁니다.
할머니는 한참을 울면서 이제 어떻게 하냐며.. 장사도 못하고, 병원에 반찬도 만들어 줄 수가 없고, 당장 가게세와 방세도 못내고 내일부터 밥먹을 돈도 없으시다며 한참을 우셨네요.
저희는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유실물 절차대로 접수를 하고 할머니를 돌려보냈습니다.
솔직히 수표이기는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수표번호도 모르시고, 어느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인지도 모르셔서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내일 모레가 설날인데.. 할머니는 춥고 배고픈 설을 맞으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
똑똑하고 예쁘게 생긴 여자 어린이가 중년 신사의 손을 잡고 지구대로 들어왔습니다.
중년 신사는 저희에게 딸이 육교 밑에서 수표를 주워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며, 경찰관 아저씨들은 무서우니까 아빠랑 함께 지구대에 가서 신고하겠다며 아빠를 재촉해서 딸을 직접 지구대로 데리고 오신 겁니다.
수표를 받아서 확인을 해보니 봉투속에 10만원짜리 수표가 8개가 들어있더군요. 직감적으로 그 할머니가 잃어버린 돈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수표 봉투에는 할머니께서 몇글자를 적어두셔서 당장 할머니의 수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돈 찾았다고 어서 지구대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금방 지구대로 오셨고, 다시 한 번 어린이의 손을 잡고 우셨네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 할머니는 너무 고민이 커서 병원 원장님께 찾아가서 돈을 잃어버렸으니 반찬을 만들어 드릴 수 없다며, 돈은 무슨 일을 해서라도 갚겠다고 그러셨다네요.
그러자 원장님이 원무과 직원을 따로 부르셔서 다른 병원 직원들이 모르게 조용히 할머니 돌아가시는 길에 다시 돈 80만원과 설날 선물로 비싼 과일선물세트를 드리라고 해서 그걸 받아 오셨더군요.
할머니가 병원 나서기 전에 그 병원 원장님은 할머니를 한번 포근하게 안아주시며 "할머니 돈 걱정은 마시고, 예전처럼 맛있는 반찬만 계속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할머니를 위로했더랍니다.
할머니는 지구대를 나서면서 지금 빨리 찾은 돈을 병원 원장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여 병원으로 가셨답니다.
저희 지구대장님은 돈을 찾아준 어린이의 학교에 연락해서 표창장을 주시겠다네요.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참 많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와 그 아버지, 반찬가게 할머니, 병원장님 같은 분들도 참 많이 계실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구대는 가장 많은 사건 및 범죄와 접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습기간 중 제게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될거 같네요.
현직으로 임용되면 정직하고 따뜻한 마음의 경찰관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어린이와 아버지, 할머니, 병원장님..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