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교포들의 '수퍼 화요일'
2008년 미국 대선의 대세를 결정지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지난 5일 수퍼 화요일, 미국 뉴욕과 뉴저지, 캘리포니아에 사는 재미 교포들은 아침 일찍부터 투표장을 찾았다.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의 린드버그 초등학교 투표소에는 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손을 잡은 한인 부부, 점퍼 차림에 중절모를 쓴 60대 노인, 20대 남녀 대학생들이 줄줄이 투표를 했다.
투표장 밖에서는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와 아시안아메리칸 법률교육재단의 자원봉사자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출구조사를 벌였다. 뉴저지 포트리의 한인유권자센터와 뉴욕 플러싱의 한인권익신장위원회 직원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쉬지 않고 한인 가정에 전화를 돌려가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일부 한인들은 뉴욕 시내에서 '힐러리' '오바마' 피켓을 들고 선거유세를 했다.
200만 재미교포들의 80%는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 3개 주에 산다. 지난 수퍼 화요일에는 이 3개 주에서 동시에 예비선거가 펼쳐졌다. 4년 전만 해도 뉴저지는 6월에 예비선거를 했으나 올해부터 대선 후보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2월로 앞당겼다. 한인들의 투표율은 뉴욕주는 22~23%, 뉴저지주는 33~34%로 추정된다. 2000년 약 6%, 2004년 약 10%에 비하면 괄목할 성장이다.
지난 수퍼 화요일에는 아시안계와 라틴계 등 소수민족이 큰 변수 역할을 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이 민주와 공화로, 민주당 내에서는 클린턴 지지파와 오바마 지지파로 나뉘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소수민족의 표가 균형추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힐러리 후보는 441명의 최대 대의원을 가진 캘리포니아주에서 라틴계의 60%, 아시안계의 75% 지지를 받으면서 오바마 돌풍(突風)을 누르고 가까스로 대세(大勢)를 유지했다.
이런 열기 때문인지 한인들의 정치적 참여도 뜨거워지고 있다. 린드버그 투표장에 나온 최기봉씨는 "생계에 바쁘지만 우리 한인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드시 투표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포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례 없는 일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해 처음으로 한인타운 정치자금 행사에 참석, "아시안들이 힐러리를 지지해 주면 백악관, 대법원, 국무부, 검찰, 경찰 등의 고위직에 아시아 출신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후보는 뉴욕의 한인 언론에 선거광고를 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저지 교포들은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 선거서비스를 받았다. 모두 전례 없는 일이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의회의 축하 결의안이 200만 한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한인들이 건의하자, 미국 의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때와 마찬가지로 결의안으로 화답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정치인들에게는 재미교포들의 지지표와 정치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의 한인들이 더 높은 투표율로 결집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아쉬운 반성도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민주·공화당이 팽팽한 세력대결을 벌일수록 한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는 점점 커진다. 재미 한인들이 비 맞으며 투표장을 찾고, 신용카드 빚을 내 가면서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런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김기훈 뉴욕 특파원 var c_copyrigh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