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들리 스콧이 왜 거장을 넘어선 장인이란 칭호를 받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호소력 짙은 대중영화라고 해두자.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면서 관객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주면서(그의 90년대가 그랬고)
또 언제 그랬냐는듯이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들을 토해내는
(2000년대는 그랬다)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역시 후자에 속한다.
미국사회에 만연한 모든 문제들을 투과하는 해부학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최근 조디악이 그러했듯이..)
자본주의 시장의 맹점과 계급, 인종, 부조리등-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던 폐단들을
인물들간의 교차와 평행으로 낱낱이 파헤친다.
사회적으로는 헤로인을 공급하는 마약왕이지만 사생활은
그 누구보다 건실하고 흠잡을곳 없는 루카스와
가정적으로는 쓰래기에 가깝지만 오직 직업적 청렴결백함만은
대통령 표창감인 리치
이 두 캐릭터의 대립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들이 연출된다.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경계선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트루포라는 절대악을 경계선으로 교차되는 프랭크와 리치라는
캐릭터들간의 치명적인 매력들은
이 영화를 권선징악이라는 절대적 기준으로만 보게하지 않는
힘도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들인가.
영화를 보는 내도록 경찰들보다 루카스에게 손을 들어주었던
나조차도 그랬으니 말이다.
결국 리치가 잡고 싶었던건 마피아가 아닌
부폐한 미국사회였던 것이니까.
결국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돈잘버는 마피아의
미화도 청렴한 공직자의 성공도 아닌 이 사회에 만연한 맹점들의
투과였던 것이다.
그들이 사는 작은 세상은 이 넓은 세상의 축소판이었으므로-
게다가 대부나 스카페이스 같은 명작 갱스터무비들과는 행보를
달리하는 인간미 넘치고 안정적인 결말은
이 영화를 주저없이 명작으로 꼽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리들리 스콧
그는 과연 위대한 장인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