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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공보영 |2008.02.12 09:51
조회 54 |추천 0


 

내 속은 순수하거나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이 많고

복잡하며 계산이 빠르다

 

판단력 또한 민첩해서 어떤 상황에 처할 때

어떤 표정으로 대처 할까를

고민하는 속도는 거의 순간에 가깝다

 

그래서 내 표정은 늘 정돈되어 있고 깔끔하다

 

어느덧 나는 표정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지어낼 수 있는 표정은 수천 가지나 된다

 

나는 실수조차 매력으로 미화시킬 수 있는

표정의 메커니즘을 터득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있게 되었다

 

처음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지만

표정을 계속 짓다 보니

표정을 나를 치장하는 도구로 아주 효과적이였다

 

내 표정에는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내 표정을 보고 나를 가늠한다

 

표정은 곧 내 인격의 표상이 된다

나는 표정을 활용해서 사람들의 신뢰와 호감을 얻어낸다

 

가끔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

당황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표정관리는 성공적이다

 

사람들은 내게로 와서

자기 문제를 털어 놓으며 상담을 청하곤 했다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는

표정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듣는다

나는 깊이 있고 성숙한 내면을 지닌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들은 내게 " 너니까 얘기하는거야 " 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흡좁하다

 

그들에게 충고를 해주는 내가

한층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나이에 비해

일찍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 내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어설프고 유치하지만

남들은 고상하고 진지하게 보아준다

 

그들의 시각에 부응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온갖 종류의 정답 들을 잔뜩 준비한다

 

늘 지식이 한참 앞서도 생각이 간신히 뒤쫒는다

그러나 내 표정에는 그 시간차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철학자 처럼 진중해 보이는

표정을 정말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화를 많이 내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분노 란

매우 저급한 감정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

타인과 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천박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분노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

화가 안 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화를 얼굴에 노출하지 않으려고

두터운 표정 하나를 또 하나 고안해 낸다

 

어떤 경우에도 내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은 나보고 너무 착하다고 한다

 

그 말도 꽤 맘에 든다

그래서 분노를 맘속에 덮어 버리고

속에서 자라고 있는 미움을 애써 외면한다

 

나는 작은 일에 수비게 상처 받는다

평범하게 지나갈수 있는 말에도

예민해지며 작은 비난에도 삶의 의욕을 잃는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자칫

나약하고 소심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그렇게 보이긴 싫다

나는 강하고 의연한 표정을 연마한다

 

어떤 비난을 받아도

그 앞에서 담담하게 미소지으며

 

" 그럴수 있겠 군요 . 그렇습니다 "

 

하고 대꾸함으로써 한 걸음 나가

 

" 나는 통큰 사람이다 " 라는 점을 과시한다

 

그게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 후 집에 돌아와서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펑펑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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