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진보여성운동의 민주화운동 참여 경험
-1983년부터 1987년까지를 중심으로
권미혁(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1. 들어가며
○ 태국, 필리핀, 대만, 중국 등의 민주화투쟁을 보면 같은 아시아권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별로 매우 다른 주체세력과 다른 경로를 거치고 있음. 버마 민주화투쟁 역시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다르며 무엇보다 아직도 상황이 엄혹하다는 점에서 독재 이후의 예상도전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
○한국은 UN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성공한 나라로서 지금의 활발한 여성운동은 대부분 과거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생겨난 여성운동세력과 동력이 기반이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음. 그만큼 1980년대의 한국의 여성운동은 민주화투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 이같은 성격은 군사독재 체제 종식 이후에도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민주화를 공고히 하려는 사회운동의 전통으로 연결되고 있음.
그러나 지금의 여성운동은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운동이론과 운동양식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음.
○한국의 여성운동이 자신의 고유한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민주화운동과 (성공적으로) 결합해갈 수 있었던 배경은 버마 민주화 이행과정에 도움이 되리라고 봄.
2. 1983년부터 1987년까지의 한국 진보여성운동의 특징
-민주화운동에의 적극 참여가 여성운동의 주요 내용.
이 시기 진보여성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여성운동을 기존의 여성운동으로 구별해내는 것이며 그 구별점의 하나가 ‘민주화운동’ 적 내용이었음.
이러한 특징을 갖게 된 배경은 그 주체세력과 여성운동론에 있었음.
(1)주체세력
당시 진보 여성운동은 아래와 같은 주체세력들에 의해 진행됨.
1)노동자 농민 운동의 주역 여성들
197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진행된 여성노동자운동은 우리 사회에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후 활발한 노동운동과 여성노동자운동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됨. 이들은 유신체제 붕괴의 시발점이 된 YH 무역 여성노동자 투쟁에서 보듯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선 노동 3권의 보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군사독재체제를 청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인정하고 있었음.
2)여성 지식인
-학내 여학생운동가
70년대 말부터 (민족)민주화투쟁을 해온 학생운동은 80년대를 거쳐 급속한 양적 확대 속에 선도적 정치투쟁동력이자 대중활동가를 배출해내는 보급원으로서 그 성격을 갖추어 나갔음. 특히 학생운동에서 여학생들이 적극적, 주체적 역할을 했고 이같은 여학생들의 실천은 이후 진보적 여성운동의 역량을 예비하는 것임.
-진보적 지식인 여성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하면서 신좌파와 그에 기반한 여성학, 여성운동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 여성집단. 대표적으로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그룹과 이대 여성연구소 그룹이 있었음.. 이들은 특히 이효재 선생님의 제 3세계 여성운동론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며 이후 서구적 여성운동과는 다른 경로를 밟게 됨.
3)여성운동 전문조직
변혁적 이념과 한국적 여성해방이념으로 무장한 진보적 지식인 여성, 학생운동 출신, 노동, 농민, 주부, 교회 등의 중간리더쉽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여성운동 전문조직을 만들게 됨.
여성평우회(1983년 출범), 여성의 전화(1983년), 또하나의 문화(1984년),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여성부(1984), 한국여성민우회(1987년), 한국여성노동자회(1987년), 한국여성단체 연합(1987년) 등
4)종교권의 진보적 여성활동
종교권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군사독재의 탄압에서 자유로웠다는 장점을 갖고 인권문제에 대한 대응을 통해 군사독재와 맞섰음. 교회여성연합회와 장상연합회, 카톨릭 여성들의 활동이 대표적이었고 이후 기독여민회(1986년)라는 여성운동 전문조직이 생기게 됨.
5)민주화 실천 가족운동 협의회(1985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수많은 청년·학생, 노동자, 민주인사들이 구금되었음, 안기부, 수사기관, 교도소에서 고문 등 인권유린이 심각한 상황에서 인권침해와 맞서 싸우고 양심수들을 구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족들의 모임. 민가협의 주축 멤버는 민주화투쟁을 하는 아들과 남편을 둔 주부들이었고 누구보다 군사독재의 억압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음.
○위의 구성에서 보듯 대부분의 여성운동가들은 민주화투쟁에 직접 참여하였거나 민주화투쟁과 관여되어 있었음.
○따라서 이들은 정권의 시녀로 전락해있던 관변적 여성운동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들의 운동을 기존의 여성운동과 다른 ‘새로운 여성운동’으로 규정했음.
“분단 이후 남한의 여성운동은 중산층 여성들에 의한 관변 여성단체로서, 활동도 주로 봉사, 취미,및 여가활동 수준에 불과해 대중여성 현실 및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진보적 지식인 여성들 간에는 여성단체 활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강남식, 2003)
“..........일제 말기에 반민족적 행위를 서슴치 않았던 일부 여성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된 여성운동은 지배자의 통치논리를 강화하는 데 급급했으며, 민족의 현실과 민중의 요구 속에 바로 서기를 거부했다..........여성운동은 상류층의 사교모임으로 전락했고 자선사업이나 소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획득 등이 전부인양 호도되어 왔다”(민청련 여성부, 1984)
이같은 비판은 민중의 저항에 놀란 전두환 대통령이 1987년 4월 13일 직선제 내용으로의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반대해 단행하려 한 ‘호헌선언’에 여성단체 협의회가 지지선언을 함으로써 극에 달하게 됨..
(2) 이론적 근거
○당시 진보여성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하나로 정리하기는 어려우나 대략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됨.
①사회구조적 변혁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
“여성운동은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와 맞물린다고 인식했어요. 민주화와 통일이 함께 가지 않으면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지은희, 여성평우회 창립 20주년 기념 좌담에서)
②소위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여성의 억압이 시작되었다”고 규정하는 급진적 여성운동론과 “여성억압의 문제도 계급문제가 해결됨으로써 가능하다”는 마르크스 여성운동론에 대한 거부. 특히 ‘스탈린의 반동’(사회주의화된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반동적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의식은 마르크스여성운동론에 대한 거부를 가져왔음.
③여성의 인간화와 여성의식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성격
여성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필수적이었고 이같은 의식은 나아가 여성 모두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함.
“여성운동은 전여성의 인간화 운동이고 우리가 속한 사회의 비인간적 요소를 타파하려는 총체적 운동이어야 한다. 한국 여성이여 우리 모두 단결하여 여성의 인간화운동에 앞장서자.” (여성평우회 발기취지문에서)
④제3세계 해방이론적 시각 채택-식민지 여성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민족문제에 대한 천착
위와 같은 이론적 기반에서 당시 여성운동은 “여성을 둘러싼 이중적 억압에 대한 해결과정“으로 이해되곤 했음. 즉 여성억압의 기원을 사유재산제의 발생에서 구하면서도 현상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여성억압의 양상을 사유재산제와는 별개인 가부장제 구조 때문으로 보고 사회변혁과 가부장제의 철폐를 동시에 구하는 것이 여성운동으로 이해 된 것임. 그러나 이 둘 간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정교한 이론적 작업이 미흡했음.
따라서 사회주의 여성운동론에 가까운 기본 틀에 독재타도라는 시대적 당면과제의 강조와 민족문제에 대한 관심을 입힌 내용이 당시의 여성운동론이었다고 필자는 생각 함.(한국식 사회주의 여성운동론?) 이같은 운동이념에 따라 여성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민주화운동의 내용이 도출된 것임(독재타도와 민주정부 수립, 민중 생존권 쟁취, 민족 통일)
(3) 여성운동의 내용
1)강력한 기층여성운동 중심 -억압받던 민중여성에 대한 관심과 주력세력으로서 설정
-성도섬유 불매운동(1985년)
-여성생존권 대책위원회 활동(1985년)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건대 여성운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 성장을 해왔다. 구로지 역 6개 사업장에서의 동맹파업, 성도섬유 부당해고에 대한 여성노동자와 여성단체와의 연대 투쟁, 그리고 소싸움에서 여성농민의 눈부신 활약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점에서 뚜렷한 한계성을 노정해 왔다. 첫째, 기층여성운동 과 여성단체들의 운동이 통일성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다. 즉 기층여성들의 현장에서의 투 쟁과 기존의 여성단체의 지원 연대투쟁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고 산발적이었다는 것이다. .............(중략) 이런 뼈아픈 경험으로부터 우리 여성운 동은 앞으로 기층여성과 여성단체와의 체계적, 조직적 연대를 적극 모색하고자 하여 그 일 환으로 오늘 여성의 날을 맞아 생존권 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자 한다....“
2)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
-여대생 추행 대책위원회 활동(1984년)
-212 총선 관련 여성유권자 선언(1985년)
1.정부는 자유로운 공명선거를 보장하라
2.대통령 간선제와 비민주적 전국구 제도 등을 포함한 현행 선거법을 개정하라.
3.여성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라.
4. 근로여성의 권익을 보장하고 노동법을 개정하라.
5. 여성농민의 생존권을 위해 농업정책을 시정하라.
6. 가족법을 위시한 모든 여성차별법을 개정하라.
7 여대생 추행사건과 같은 여성에 대한 공권력의 성적 폭행을 중지하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대응(1986년)
-최루탄 추방운동(1987년)
-시청료 거부운동(1986년)
-호헌 철폐투쟁(1987년)
-민주화운동의 전국적 전선조직이었던과 국민운동본부에의 참여(1987년)
3)여성고유의 이슈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크기 만큼 민주화의 내용도 질적으로 심화되어 각 계급, 계층은 자신의 이해를 ‘독재타도’라는 일반론과 함께 주장하였음. 그리고 이같은 주장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지지받았음.
- 3,8 여성대회 개최
-결혼퇴직제의 불합리함을 폭로했던 25세 조기정년 철폐운동
-가족법 개정운동
-여성문화운동
는 동인지 출판을 통해 여성주의 담론을 대중화시키고 대안적인 교육, 문화 활동을 위한 모색을 활발히 전개한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1989년 9월 진보적인 여성주의 연구와 실천을 목표로 한 가 창립되고, 진보 여성주의 담론 생산을 표방한 기관지 『여성과 사회』를 창간한다. 이 시기로부터 『여성과 사회』는 동인지와 함께 여성주의 담론 형성의 양대 축이 된다. 아울러 1988년 최초로 여성정론지를 표방한 「여성신문」의 창간도 여성주의 담론의 대중화 및 문화 생산에 중요한 계기가 된다.(강남식,)
-노동운동 내에서의 여성이슈 :한국 최초의 여지부장을 선출한 동일방직, 결혼퇴직제 철폐, 출산휴가 쟁취의 콘트롤데이타 노동조합, 여성노동자의 저임금 개선을 위한 하후상박 임금제도 도입과 노조의 수유시간 확보 투쟁을 했던 삼성제약 등.
(4) 내부의 이론투쟁
○당시 진보여성운동 각 그룹간에 위와 같은 여성운동론이 다양한 형태로 조합되어 채택되었고, 이들 간에 이론투쟁은 필수적인 것이었음.
○주로 변혁이론간의 차이나 민족문제에 대한 관점의 차이 그리고 당면과제를 둘러싼 전략과 전술의 판단 차이로 노선투쟁이 생겼고, 여성평우회의 경우 조직이 분열되기도 했음. 예를 들어 여성운동을 민주화운동의 한 부문운동적 성격으로 이해하는 그룹과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그룹간의 차이라든가 정치투쟁에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하는가 아니면 대중획득을 위해 정치투쟁을 우회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음.
○그러나 대부분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여성운동은 사회민주화의 달성과 민중생존권 쟁취, 통일 등 민족민주운동으로서의 규정을 가장 강하게 받고 있었고 그 내에서 여성 고유의 이슈를 결합하는 형식을 취했음.
○도리어 1980년대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은 2000년대 여성운동론으로부터 나옴. 페미니스트 이론과 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주내용으로 한 탈근대 이론으로 무장한 새로운 여성운동가들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여성운동을 ‘남성권력에 동원된 여성들의 운동’, ‘진정한 여성적 이해를 관철시키지 못한 비여성주의적 여성운동’으로 비판하고 있음.
1987년 여연은 맑스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기본 민주주의관, 민주화 전략의 전제로 삼았다. 여연은 민족, 민주, 민중주의에 여성해방이라는 요소를 결합시켰다. 그러나 이때의 여성해방은 삼민주의의 하위 개념에 불과햇다. 초기 여연은 민주화, 자주화, 경제적 민주화 등을 포함한 이념을 지향했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민주화투쟁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진보여성운동이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얻은 민주주의 사이의 간극에 무엇이 놓여 있는가? (허성우, 2007)
3. 나가며
○1980년대 한국의 여성운동은 민주화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민주화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을 주요한 내용으로 함. 이같은 상황은 주체세력과 운동이념에 근거한 것이었음.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한국의 여성운동은 많은 발전을 하였고 운동의 내용과 이론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 여성의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여성고유의 과제를 보다 중심적으로 하고 있음.
○2007년 현재 (민주화 이후의) 한국여성운동의 다음과 같은 도전을 받고 있음.
1)여성운동 제도화에 대한 도전
○1987년 이후 여성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고 급격히 제도화되었음. 90년대 중반이후 민주적 정치과정은 여성운동에게 정치적 기회의 장이 되었고 이같은 정치적 환경변화 속에서 ‘갈등과 대립’의 대상이던 국가는 ‘갈등과 협상’의 공간으로 인식되었음, 이에 '진보적‘ 여성운동은 ‘참가의 정치’ (politics of engagement) 전략, 즉 ‘비판적 참여’ 전략을 취하게 됨. 특히 여성운동은 성주류화 전략을 근거로 정책과정에 적극 개입해 들어가면서 여성정책의 주요 행위자며, 명실상부한 국가정책의 파트너쉽으로 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성부가 신설되었음.(윤정숙, 2005)
○이같은 제도화는 여성 관련 정책을 전사회적으로 수행케 하였으나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점, 법, 제도 위주의 개혁이었다는 점에서 관습, 문화 등 사회전반에의 성평등 의식 공유를 동반하지 못함으로써 급속히 역공을 당하고 있음.
2)신자유주의 체제 하에 여성생존권의 급격한 악화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제출되어 있음.
○버마 민주화 운동 중 우리와 다른 점은 소수민족에 있다고 보임. 현재 한국여성운동에서는 여성운동간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음, black feminism이 대표적 예인데, 여성운동이라고 모두 같은 운동이 아니며, 백인은 흑인의 여성운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임. 결국 여성운동간의 차이에 주목하고, 이 차이가 무시되지 않는 운동을 지향하고 있음. 이같은 논의가 버마여성운동을 보다 풍부히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함.
여성평우회(2003), 여성평우회 발자취,여성평우회 창립 2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강남식( 2003) “여성평우회의 활동과 여성운동사적 의의, 여성평우회 발자취. 여성평우회 창립 2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________, “여성운동의 전개와 과제”
심정인( 1985) “여성운동의 방향정립을 위한 이론적 고찰”, 무크지 여성, 창작과 비평사
민주화청년운동연합(1984), 민주화의 길
윤정숙(2005), “여성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 북경행동강령 10년 평가서, 한국여성단체 연합
허성우(2007),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 개혁주의 젠더정치학의 성과와 한계”, 학술 단체 협의회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발표문
권미혁(2007)한국진보여성운동의 민주화투쟁, “다큐 6월 항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 이후 한국에 제기된 이슈와 문제, 그리고 딜레마
* * 출처 : 아레나(Asian Regional Exchange for New Alternatives) / 버마전략회의-독재 이후 버마 민주화의 예상 도전들과 민주개혁구상(Envisioning Post-Dictatorship Burma) 자료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