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학교의 문제점이 이것뿐일까...
가정환경조사서를 처음 작성했던게 국민학교 3학년때로 기억한다.
그당시 아버지는 지방대학에서 건물에 전기와 가스등을 관리하는 관리직을 맡고 계셨고
내가 조사서에 어떻게 써야 하느냐 묻자 아버지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관리직이
부끄러우셨는지 당황하시며 '전문가'라 쓰라고 하셨었다.
그렇게 학교에 가서 선생에게 보여주니 대번에 종이를 나에게 내던지며
'전문가면 뭔줄알아? 정확히 다시 써와!'라며 다그쳤었다.
나뿐이 아니었다.
조사사항 하나라도 잘못쓰거나 비어있는 아이들에겐 대번에 다시 작성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지방에 근무하셔 일주일에 한번만 집에 오시기에 난 일주일 내내 시달림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결국 부모님 학력란에 고졸,중졸이라는 빨간 글씨가 써넣어지고
재산에는 전세 2000만원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나서야 난 꾸중을 면할수 있었다.
그땐 참 짜증이 났었지만 그나마 그것이 나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때, 국민학교에서 명칭이 바뀌며 학교는 대대적인 변화바람이 불었다. 학기초 내내 이런저런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중 가장 극성스러운것은 학부모총회였다.
부모님 직업, 연봉, 근무시간, 근무지역등.
새로이 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할테니 '어머니도우미'를 모집한다거나 '학부모총회임원'을
선출한다든가...
그러한 이유로 담임들은 계속해서 부모님들을 학교로 소환했고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으레 쥬스세트와 봉투가 오가곤 했다.
마침 내가 4학년 올라가던 겨울방학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IMF로 정리해고 당하셨기에 우리 부모님은 단 한차례도 학교에 얼굴을 비치지 못했다. 그 결과로 나에게 돌아온것은 지독하리만치 심한 담임의 괴롭힘이었다.
뭐, '대한민국 교사 전부가 그렇지 않다!'라고 핏대세울 인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부 그랬다.
수업시간에 엄청난 과제를 내준채 자기들끼리 다과모임을 가지던 선생들은
서로 봉투를 주지 않은 부모의 아이들을 공유하며 '줄때까지'괴롭혔다.
정기적으로 학부모들이 담임과 합동면담을 할때면
학부모들은 참여하지 않은 부모의 아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으로 수다를 떨었다.
그자리에서 담임이 한마디만 흘리면 끝인거다.
'모 아이가 불량스럽다'든가,
'모 아이가 주변 친구들을 괴롭힌다'든가,
혹은 '모 아이가 도벽이 있다'라든가.
그렇게 한마디 흘리기만 하면 아줌마들 수다의 힘으로 금새 소문이 나게 되고
결국 소문을 들은 부모들은 그 소문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괜히 궁금한게 많아지는 초등학교시절... '이게 뭐에요?'라고 물어볼때마다 내게 돌아온건
냉대와 눈총 뿐. 그렇게 선생들의 미움을 받던 아이들은 하나 둘 모여 어울리게 되었고
선생들은 그 친구들을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폭력이나 비행은 전혀 없었다.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또래끼리 모여 쉬는시간에 장난치고 떠들었을 뿐이었지만
그런 아이들은 유독 선생의 눈밖에 나 트집을 잡혔다.
1년에 한두번은 꼭 발생하는 절도건에 대해서도 항상 그런 아이들이 먼저
범인마냥 끌려나가 조사를 받았고, 똑같이 싸워도 그런 아이들만 혼났다.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싸움잘하면 최고였던 초등학교시절 힘있는 아이 한명과 싸움이 난적이 있었다.
먼저 맞은것도 나고 피가 나는것도 난데 선생은 그 아이만 감싸돌았다.
울고있는 나에게 기세좋게 따귀까지 올려쳤던 그 선생은 연락을 받고 달려온 그 아이 부모와 함께 나를 한시간가량 쏘아붙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원통할 뿐이다. 그 조그만 아이가 뭘 안다고...
자기를 변호할 능력조차 완성되지 않은 아이가 무슨 잘못이라고...
2시반에 나와야할 학교에서 5시까지 무릎꿇고 있다가 나온 나의 머릿속엔
억울함이라든가 분노는 없었다.
오로지 슬픔뿐.
엄마는 어디갔을까? 아빠는 언제 오는걸까? 왜 우리 부모님은 와서 싸워주지 않을까...
그렇게 5학년이 되었을때 시작은 새 담임의 전화였다.
'아이가 소문이 자자해요, 엄마없는 아이 가르치기 힘드니까 좀 도와주세요.'
그 말인 즉슨 봉투좀 내라는 것이었다.
끝까지 봉투를 내지 않는 나에게 선생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요구를 해왔고
결국 아버지를 학교에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교회 집사님과 함께 간 아버지는 화를 내며 어떻게 이렇게 학교가 썩을수 있냐고 했고
결국 그렇게 난 선생들의 눈에서 더 멀어지게 되었다.
호통에 질책, 구박과 따귀까지.
급기야 난 '호랑이선생님'이라 불리던 가장 무서운 남자선생님의 반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나마 양심이란게 있던 그 호랑이선생님 밑에서 남은 5학년을 보낼수 있었다.
그게 내 초등학교 시절 기억의 전부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난 국립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하자 마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교복.
어떻게 30여만원 하는 교복을 2일만에 사입고 오라는 것인가?
지금이야 급전 30만원도 없는 집이 어딨느냐고 피식 웃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당시 IMF후폭풍으로 신용불량자가 한창 늘어나던 때라 그렇게 급히
돈을 마련할수 없는 집이 왕왕 있었다. 결국 나는 시기에 맞춰 교복을 입고오지 못했고
2일정도를 선도위원에게 잡혀 기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첫날 중학교 입학식에서 나에게 떨어진 지령은 가정환경조사서와 등본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 동사무소에서 등본을 받기위해 처음으로 내 주민번호를 외웠던것 같다.
이제는 익숙해진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고 학기초가 지날즈음
나는 생소한 설문지를 받았다.
대충 '불우학생어쩌구'제목의 설문지였는데,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급식비와 각종 학비를 면제해주는 내용이었다(국립중학교에는 학비가 존재하지 않지만 학부모총회 운영비등의 명목으로 1분기당 20여만원을 걷어갔다).
돈을 최대한 안내는게 효도라 생각한 나는 창피함을 감수하고 아이들 앞에서 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창피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맨 뒷자리에 앉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말고도 손을 든 아이들이 두어명 있었기 때문이다.
손들기 전 눈을 감으라던 담임선생의 말은 유명무실했다.
솔직히 그시절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면 감는가?
요리조리 실눈을 떠서 집요하게 손을 든 아이들을 찾아내고는
'거지네 자식'이라며 놀려대던 철없던 시절인데...
그렇게 학비와 급식비를 면제받고 좋아하던 나는 다음날 스피커를 타고 전교에 흐르는
방송에 호명되었다. 진짜 가난한지 세부조사를 해야하니 방과후 남으라는 내용이었다.
막 사춘기에 들어서 한참 예민하고, 또 막 학교에 입학해서 서로를 알아가야할 시기에
나와 몇몇 아이들은 그렇게 가난한 아이로 낙인찍힌 것이다.
극기훈련이라든가 수련회같은 연례행사가 있을때 마다 난 돈을 면제받기 위해
교무실을 찾았고 그때마다 담임은 '또 너냐?'라며 핀잔주던게 생각난다.
지금 하는일 있으니까 저쪽에서 기다리라고...
면제받는 아이들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런 일로 교무실에 가면 아이들은 늘상 보는 아이들을 서로 보는것이다. 그렇게 풀이 죽어서 교무실 한쪽에 앉아있으면
짖궂은 아이들이 몰래 와서는 '거지들이다'라고 놀려댔었다.
중학교시절 하이라이트는 '애X랜드 견학'이었다.
맙소사, 그곳에 견학할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돈있는 아이들은 자유이용권 끊어 놀고
돈없는 아이들은 도시락도 못사와 쫄쫄굶는 그 빌어먹을 견학에서
나는 세상이 어떠하단걸 배웠다.
차라리 나도 그랬다면 편했을것을.
같이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데 갑자기 선생이 와서는 표를 건네주었다.
"이거 결손가정애들한테 주는거니까 이거 가지고 타라."
놀이기구 3번을 탈수 있는 표.
나는 가난할지언정 자존심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학교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뭉게어버렸다.
이뿐만 아니다.
중학교시절 미술준비물은 또 얼마나 비싼지...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온갖 비싼 준비물들을 사오라 시킨다.
국민학교때는 차라리 저렴한 찰흙공예같은거나 했지
생판 처음 들어보는 미술도구를 사오라는데, 캔버스인가? 컨버스인가? 한판에 몇천원하던
그림판과 아크릴물감? 무슨 생판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물감들.
또 붓은 왜 종류별로 사오라는건지, 1호부터 12호까지 그리고 넑직한 브러시와
각종 소모품들...
확증은 없지만 분명 학교 앞 문방구들과 거래가 있었을거라 짐작한다.
그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하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며칠 전부터 문방구에는 딱 전 학급에 필요한 수량만큼의 재고가 준비되었으니까.
학부모총회에 한번도 나오지 않는 부모의 자식
급식도우미 한번도 안하는 부모의 자식
봉투 안내는 집
편부모 가정
준비물 잘 안가져오는 아이
초중등 시절 내 의지대로 찍힌 낙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잘하고 싶은데, 나도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안됐을 뿐.
나도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신세한탄같은 장문의 글을 쓰는지,
또 내가 무슨 말을 하고픈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은 종류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있는 아이들이
있을거라는것, 또 그런 아이들을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폭력이다. 직/간접적, 그리고 정신적/신체적으로 무방비상태에 놓인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무관심이 불러온 심각한 폭력이란 말이다.
내가 겪었던 일들은 가난과 편부모라는 환경. 그리고 교사들의 무관심에 기인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혼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중 이혼 당시 20세 미만의 자녀를 두고 있는 경우는 70.3%라고 한다(2001년통계이며, 이혼율은 감소하는 추세이나 이혼 자체는 증가하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며 유가 상승과 미국 불경기등 기타 경제적 요인으로 실물경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서민들 먹고살기 힘들어 진다는 얘기).
이러한 사회적 추세에 비추어 봤을때 나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질거라 생각하는건 지나친 걱정일까?
교육은 국가백년대계라 했다.
당장 급하게 변하는 고등교육이나 수능문제에 이목을 빼앗겨 우리들 모두가 초중등 교육의
문제점을 잊고 있는건 아닐까?
감정에 치우쳐 글이 너무 길어졌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이 나같은 상처를 받고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본문에는 안좋은 교사들만 나열했지만 사실 학교엔 좋은 선생님들도 많다. 이를테면 아침에 지각했는데 아침은 먹고왔냐며 다정하게 토스트에 땅콩잼을 발라주시던 중2때 담임선생님이라든가, 편견없이 공정하게 대해주시던 초5, 중3때 담임선생님 등등.
PS2-어렸을때 날 핍박하던 교사란 탈을 쓴 짐승들에게...
씨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