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욕심이란, 신념이란, 지혜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로구나!
이 영화를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본 이유는 분명 감독인 코엔 형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본 코엔 형제의 영화가 뭐였는지 떠올려 보는데 말고는 도통 생각이 안 난다. 영화가 끝난 뒤 코엔 형제에 대해 뒤적여 보니 정말 내가 본 그들의 영화는 한 편밖에 없다. 그것도 10년 전 일이라, 기억 속에는 하얀 눈밭과 빨간 피, 뻘건 살점이 튀던 분쇄기, 그리고 주연여배우였던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얼굴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엔이라는 이름만으로 이 영화를 보았던 건, 에서 하얀 눈밭에 새빨간 피가 튀길 때의 서늘했던 느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한 느낌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다시 또 이 영화 에서 다시 만났다. 에서는 오로지 돈(욕심) 때문에 시체분쇄 시츄에이션이라는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서늘함과 무력감을 느꼈더랬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그나마 인간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래서 인간에게 그나마 희망이 될 줄 알았던, 신념과 지혜마저 불가해한 우연의 고리 안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서늘한 절망이 느껴진다. 아… 인간의 욕심이란, 신념이란, 지혜란, 얼마나 허망한 것이더냐.
욕심 - 를르윈 모스
사냥꾼? 총잡이? 모스의 직업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사막에서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고현장. 보아하니 멕시칸 마약밀매상들이 총격전을 벌이다 죄다 죽은 것 같다. 개와 인간의 시체들이 널부러진 현장에서 발견한 검은 가죽가방. 그 안에는 모스가 평생을 모아도 만질 수 없을 거금이 들어 있다. 당연하게도, 모스는 돈가방을 들고 날쎄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름 양심은 있던 모스, 사고현장에서 물을 달라고 애원하던 유일한 생존자를 내팽개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 잠을 못 이루다 물을 떠서 다시 현장으로 찾아가고, 돈가방을 찾으러 온 킬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를 쫓는 킬러는 보통 킬러가 아니다. 절대 포기란 없으며, 또한 실패도 없다. 돈가방을 들고 죽을똥 살똥 피해다니는 모스를 보며 답답함이 밀려온다. 저까짓 돈가방이 뭐라고, 어차피 자기 것도 아니었는데, 자기 목숨까지 내걸고 도망을 다닐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가까이에 다가오고 있는 걸 느끼면서도, 혹여 죽지도 않고 돈가방도 자신의 것이 되는 요행이 따르지 않을까,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모스가 바라던 요행은 생기지 않았고, 질질 끌던 그의 미련은 아내의 목숨까지 앗아간다.
신념 - 안톤 쉬거
전설의 킬러. 구닥다리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살인을 일삼는다. 그에게 살인의 이유는 없다. 죽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는 인간일지라도, 그가 꼭 살아야 할 이유 또한 없기 때문에, 그는 거리낌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처음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의 모습에 그가 등장하기만 해도 공포가 밀려왔다. 그가 주유소에서 주인할아버지와 대화만 나누어도, 길 가다가 차를 세우고 누군가와 대화만 나누더라도, 곧 살인이 벌어지겠구나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의 살해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나는 킬러에게 쫓기는 모스가 아니라 모스를 쫓아다니며 숱한 이들을 죽이고 있는 킬러 안톤 쉬거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죽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나뉘어진다. 그가 하는 살해는 욕심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신념이다. 한치의 벗어남도 없는. 또 다른 킬러 칼라처럼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잘난 척하지도, 권모술수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타협점을 찾지도 않는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조금의 에누리도, 오차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자의 모습을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매력적으로 보인 적이 없었던 킬러가 신념의 화신이 되어 나를 유혹한다. 어차피 돈가방은 모스의 것이 아니었잖아. 죽일 이유도 없었지만, 또 그렇다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거잖아. 어느새 나는 안톤 쉬거의 대사를 마음 속을 따라 외우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 가져온 것은 무엇인가. 한치의 오차도 없고 늘 계획대로 움직이지만, 바로 앞에 일어날 교통사고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그 잘난 신념의 정체가 아닌가. 모스를 죽이고 모스의 아내도 죽였지만, 돈가방은 여전히 멕시칸들의 손을 떠돌고 있지 않은가.
지혜 - 에드 톰 벨
쫓기는 모스와 쫓는 쉬거. 그들을 멀찍이서, 혹은 한 발짝 늦게 쫓아다니는 늙은 보안관 에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왕좌왕 허둥대는 젊은 보안관과 달리, 그는 사건현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범인을 예측하고,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가늠할 줄 안다.
굵은 주름과 흰머리는 그냥 생긴 게 아닌 것이다. 그가 보안관으로 살아온 세월의 더께는 그에게 빠릿빠릿하지는 않지만 멀리 보는 지혜를 선사해 주었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욕심이 가져올 비극도 안다.
그러나 에드의 지혜는, 그리고 에드와 비슷한 또래인 노인들(주유소 주인할아버지, 모스가 히치하이킹한 차의 주인할아버지, 모스의 장모 등)에게서 풍기는 삶의 연륜은, 거듭되는 살인을 막지 못한다. 아무도 그들이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청년들은 제것도 아닌 돈가방을 들고 튀느라 목숨을 걸거나 그놈을 잡으려고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소년들은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에게 옷을 벗어주고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린다. 노인들의 소리는 그저 공허한 울림으로 메아리칠 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느 스릴러영화도 주지 못한 긴박한 긴장감과 서늘한 절망을 안고 극장을 나섰으니 영화 선택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무척 의아했다. 왜 하필 제목이 일까?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인 고로, 친구에게 물어봤다. 영문학을 전공한 친절한 친구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예이츠의 시에 나오는 귀절"이라며 그 시를 수배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친구가 수배해준 예이츠의 시를 읽으니, 다시 또 영화의 먹먹했던 느낌이 살아나는 듯했다.
SAILING TO BYZANTIUM
W.B. Yeats
I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Monuments of unageing intellect.
II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III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IV.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 The Tower (1927)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윌리엄 B. 예이츠
늙은이들이 살만한 나라가 못되지. 서로
팔짱을 낀 젊은것들, 노래에 푹 빠진 나무 새들,
-그들 죽어 가는 세대들이여
연어가 추락하고, 고등어가 가득한 바다,
어류, 육류, 조류들은 여름 내내
잉태되고, 태어나고 또 죽는 것을 찬양하지
감각적인 음악에 사로 잡혀 모두들
늙지 않는 지혜의 기념물을 외면한 채
늙은이란 비천한 존재일 뿐,
작대기에 걸쳐놓은 넝마 같은 것
영혼이 손뼉을 치고 노래하고
유한의 옷을 입은 헤진 조각들을 위해
더욱 커다란 노래를 부를 때까지는
게다가 여기엔 노래학교도 없고 단지
나름대로 거창한 학술용 기념비뿐인 걸
그래서 난 바다로 떠나
비잔티움의 숭고한 도시에 온 게지
오, 금빛 모자이크 벽화인 양
신의 성스런 화염 속에 서 있는 현인들이여
그 성화에서 나와, 가이어로 어우러져
내 영혼의 노래 선생이 되어 주소서
내 영혼을 소멸하소서, 열망에 찌들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죽어 가는 짐승에 묶인 이 혼백을 위해
영원의 예술품 속에 이제 나를 재편하소서
자연에서 비롯되었으되, 결코 다시는
어느 자연물을 빌어 내 육신을 삼지 않으리라
금판과 금박을 입혀 그리스의 금쟁이가 만든
그러한 형체로 태어나, 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거나,
또는 황금빛 가지에 앉아 노래부르리니.
비잔티움의 귀족들을 향해
사라진 것과 사라지는 것, 혹은 새로 올 것에 대해서
물론 내가 예이츠의 시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저 에드의 마지막 탄식이 다시 울려나오는 듯한 느낌. 욕심도, 신념도, 지혜도,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의 운명을 제어하지 못하리. 허망하고 또 허망하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가해한 오늘을 산다. 욕심을 의욕으로 포장하고, 우연을 조절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시간만큼 살아갈 시간만큼 쌓이는 지혜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을 만들 거라 믿으며.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으로 킬러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든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사진 한 장은 남겨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