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와 의의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외쳤습니다. 여성도 인간이라고, 살인적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는 살 수가 없다고, 여성도 시민이라고, 정치적인 권리가 박탈당한 채 살 수는 없다고 외치며, 용감하게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동시적으로 발생한 경제공황 속에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빵 대신 먼지를 마시며 쉬지 않고 일을 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그러나 그녀들은 정작 인간이자,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대륙에서도 빈번한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오르자 “주부들의 봉기”는 점점 빈번해졌고,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졌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거나 사악한 상인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계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의 참정권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나아가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의견은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인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에 의해 제출된 것인데요, 이는 즉흥적으로 제안된 것이 결코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분출하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내어 더욱 힘찬 운동으로 만들어나가고자 한 유럽의 사회주의 여성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준비된 것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세계여성의 날은 20세기 산업국가에서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분노하여 거리에 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이러한 저항을 기억하고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도모하고자 했던 여성운동진영의 의식적인 노력을 배경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11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여성의 날이 준비되었습니다. 이 날의 계획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기사가 정부와 사회에서의 여성의 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모든 기사들이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여 의회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치적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던 여성들도 여성의 날을 위한 회의와 시위, 포스터와 팜플렛, 신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여성의 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남성들은 변화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렀고, 그들의 아내들, 포로였던 주부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이 날은 우리의 날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축제일이다”라고 외치면서 서둘러 회의와 시위가 열리는 곳을 향했습니다. 작은 도시 곳곳에서 회의가 열렸고, 마을의 강당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노동자들(남성)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시위가 열렸고, 대규모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들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으며, 이 날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주의당과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즉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에 있어서 여성의 날은 필수적인 날로 자리매김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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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방의 역사와 3.8 세계여성의 날
3․8 여성의 날은 전 세계 여성들이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는 날이며, 이를 계기로 각 국에서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남녀차별 철폐, 여성빈곤 타파 등을 요구하는 여성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1915년 멕시코와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반대 및 물가안정 운동, 오스트리아․에스파냐에서 일어난 군부독재 반대운동, 1943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무솔리니 반대시위를 비롯해, 1979년 칠레의 군부정권 반대시위, 1981년 이란 여성들의 차도르 반대운동, 1988년의 필리핀 독재정권 타도 촛불시위 등이 그 대표적인 투쟁입니다.
그 중에서도 1917년 2월23일 여성의 날은 러시아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더욱 뜻 깊은 날이 되고 있습니다. ‘사건’은 식량구입을 위해 줄을 서 있던 한 여성이 빵 가게의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상 그러한 사건은 당시 러시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요, 1915년 봄부터 본격화된 소위 ‘식량폭동’은 하나의 시위가 또 다른 시위를 촉발시키고, 빵을 위한 시위가 정치적 요구를 위한 시위로까지 연결되곤 하였던 것입니다. 1917년에도 식량구입을 위해 기나긴 줄을 서 있던 여성들이 살인적인 기아와 빈곤에 분노하며 줄서기를 관두고 시위대가 되어 페트로그라드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또다른 곳에서 ‘전쟁, 높은 물가, 여성노동자들의 상태’라는 테마로 여성의 날 집회를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들과 동맹파업자들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이 지친 주부들의 행렬에 가세했습니다. 성난 여성들의 시위는 짜르의 비밀 군대도 감히 평소와 같이 진압하지 못할 만큼 위협적이고 위압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전쟁으로 인한 물가폭등, 경제파업, 정치파업, 여성들의 단결 등 여러 요소의 결합으로 인해 폭발한 1917년 여성의 날의 투쟁은 러시아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여성의 해방을 위한 행동은 결국 노동자민중 전체의 해방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뜻깊습니다. 여성의 날은 여성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모든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투쟁의 날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의 날을 시작으로 러시아 혁명이 전개되기는 하였으나, 투쟁에 앞장선 여성노동자와 병사들 아내의 요구가 혁명의 핵심과제로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의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 각각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인데요, 혁명 전에 무수하게 발생했던 식량폭동에 있어서의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노동조합 및 당이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 이후에도 노동자운동 진영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조직에 큰 힘을 쏟지 않습니다. 여성운동 진영의 경우에는 ‘여성참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여 맹목적인 활동을 전개한 나머지 여성노동자들의 바램을 받아 안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정권 그 자체보다 중요했던 것은 ‘무엇을 위한’ 참정권인가? 라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여권주의자들은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곧장 여성해방으로 직결된다고 여기고 여성들이 행사할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증명하는 데에만 골몰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여성해방을 표방하는 여성운동 진영이 러시아의 참전을 지원하고 전쟁을 지지하게 되는, 아이러니하고도 비극적인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여권주의자들은 세계대전에서의 러시아의 승리를 위해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성들도 애국군인이 되어야 함을 선동하면서 많은 여성들을 전쟁터로 보냈고, 또한 여성들만의 부대가 설립되어 여성들이 군인으로서 용맹하게 싸울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에 힘썼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여성 참정권 획득에 결코 반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의 국경을 초월한 국제연대의 정신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결과가 초래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러시아 혁명은 결국 여성해방과 무관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은 열악한 여성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려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와 병사아내들 스스로가 조직되어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냈으며, 노동자운동이 여성해방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전쟁을 지지하는 여권주의자를 비판하며, 여성들이 힘을 쏟아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닌 혁명이라는 사실을 호소했습니다.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 전쟁의 수혜자는 결코 여성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폭등은 여성의 삶을 더욱 곤란하게 하고 있지 않는가! 여성노동자들은 타국의 노동자와 싸울 것이 아니라, 국제주의의 깃발 아래 전쟁반대, 물가인상저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날’은 투표권 쟁취를 위한 날에서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국제적인 투쟁의 날’로 바뀌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3.8 여성의 날은 여성해방을 앞당기는 투쟁의 날이었습니다. 이러한 여성해방의 역사는 여성의 날이 여전히도 ‘전 세계 여성들의 투쟁의 날’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성노동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노동자로 여기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는 노동자운동의 관행이 남아있고, 또한 여성의 해방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를 간과한 채 일부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전체 여성의 단결과 연대를 훼손하는 여성운동의 한계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투쟁의 주역이 되었던 이들이 가장 빈곤한 여성, 가장 불안정한 조건에서 일을 하던 여성, 가장 사회적으로 억압받던 여성이었다는 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빈곤과 폭력에 맞선 싸움에 가장 앞장설 이들은 바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빈곤한 여성들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억압받는 여성들의 치열한 싸움에 인종과 계층,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여성들이 화답하고 연대해야한다는 점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008년, 3.8 세계여성의 날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성의 날은 ‘어머니의 날’과 ‘발렌타인데이’를 뒤섞은 형태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3월8일에는 여성들에게 꽃과 초콜렛을 선물하세요~”라는 선전문구가 여성의 날이 되면 등장하는 실정이니까요. 이러한 모습은 비단 광고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3월8일 서울지역에서 열린 99주년 여성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의 한 여성간부는 “오늘 남성 동료가 꽃을 주던가요? 남편에게서 선물을 받으셨나요?”라고 확인을 하시더군요. 우리의 기억 속에 ‘여성의 날’은 여성들 애썼다며 선물을 받는 기념일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날은 저명한 여성인사들을 모시고 한 말씀 듣거나, 유명한 여성 연예인들의 공연을 즐기는 기념행사를 치루는 날로 변질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여성의 날의 의미가 퇴색되게 된 것일까요? 이는 여성운동이 위기에 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운동의 국가에 대한 의존성이 커짐에 따라 해방을 위한 변혁이라는 운동의 본래적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류적인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활용되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은폐되고 왜곡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날의 발자취를 살펴보아도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에 처음 3.8 여성의 날 투쟁이 시작되었으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그 맥이 끊겼다가, 1985년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여성의 날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85년의 ‘세계여성의 날 기념 여성대회’에서는 여성운동의 과제로 ‘민족․민주․민중’이라는 ‘삼민이념’을 여성해방의 이념으로 정립하는 ‘85 여성운동선언’이 이루어졌는데요, 70,8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주역이 된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의 정신과 85년 구로동맹파업으로 대표되는 연대의 정신이 그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대중의 생존권 투쟁과 진보적 여성단체운동이 결합됨에 따라 여성의 날이 그 본래적 의미를 되찾아 빛을 발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86년 3월 8일 여성대회 이후 여성대중이 겪는 문제를 여성운동의 실질적인 과제로 위치지우고 이들의 여성운동에의 주체적 참여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틀거리가 생겨났고, 이는 다음해 ‘여성단체연합’의 건설로 이어집니다. 이와 같이 3․8 여성의 날의 부활과 함께 생겨난 여연은 ‘기층여성 중심성’과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이라는 규정을 수용했는데요, 이때 ‘기층여성’이란 생산직 여성노동자, 여성농민, 빈민여성을 말하며,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이란 민족민주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민주화 투쟁에 복무하는 여성운동을 말합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여연에게 ‘민주화 투쟁에 복무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지향은 즉시 모호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여연은 6월 항쟁 이후를 “불완전하고 왜곡된 상태이긴 하나 자율적인 시민사회 영역이 구축된” 상황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수렴하여 법을 제․개정하는 것으로 치우치고, 민주화 투쟁은 상층 중심으로 결합하는 것에 국한되게 됩니다. 이는 ‘기층여성 중심성’과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이라는 지향, 즉 여성운동의 ‘주체’와 ‘전망’이 분리되기 시작함을 의미하는데요,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남녀유권자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1995년 여성대회였습니다. 이제 여성은 여성들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자신의 손으로 근본적으로 바꾸어내는 주체로 호명되지 않고, 다만 투표를 할 수 있는 한 표를 가졌을 뿐인 국민으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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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대중운동의 역동성은 상실되고, 신자유주의 정부의 통치성에 여성운동이 적극적으로 편입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정책이라는 것이 일과 가정의 양립-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해 여성들이 언제든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유연하게 쓰일 수 있고 또한 여성들에게 여전히도 출산과 양육, 가족의 돌봄이라는 재생산의 1차적 책임이 부가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책에 불과하다는 본질을 간과한 채,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여 적극적으로 여성정책에 개입하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합니다. 여성억압의 원인과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여성대중의 삶이 나아질리 만무하며, 이는 오히려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여성억압이 강화되도록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여성이 정치인이 되고 고위관료가 된다고 해서 전체 여성의 삶이 나아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는 일부 여성들이 CEO가 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다고 하여 여성의 빈곤과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제한적이고 개별적인 해법이 마치 전체여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인 양 여겨지는 것은, 정작 현실의 여성의 문제를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게끔 할 뿐 아니라, 알파걸과 알파우먼, 골드 미스가 될 수 있는 소수의 여성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빈곤․비정규직 여성 간의 간극을 더욱 크게 하고 위계질서를 강화한다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또한 이로 인해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문제해결방식은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되어 갑니다.
결국 대다수의 여성들은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며 동시에 가족 내 보살핌 노동과 재생산 노동도 책임지는 이중부담을 떠맡아야하는 삶을 살지만, 이러한 현실의 원인을 정확하게 문제제기하지 못한 채 다만 여성들이 의회로 진출하는 것에 골몰하고 정부정책에 개입하는 것만 중시하는 여성운동은 한국사회 여성의 현실을 오히려 은폐하고 왜곡시키며 여성의 권리를 협소한 틀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운동이 ‘해방을 위한 변혁’이라는 성격을 잃어감에 따라 여성의 날 역시 ‘여성해방을 위한 저항과 연대의 날’이라는 본래적 의미가 퇴색된 채 단순한 기념일로 전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불평등의 심화, 그로 인해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피해를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에 여성을 보다 깊숙이 편입시킴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역설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안세계화운동의 고양과 더불어 여성의 날이 그 본래의 색을 되찾아 가는 반가운 모습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 폭력과 빈곤이 난무하는 세상에 맞서 전지구적 저항을 일궈내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3월 8일’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세계 여성운동들의 연대체임과 동시에 ‘행진’이라는 행위 그 자체이기도 한 세계여성행진은 1995년 캐나다 퀘백지역에서 여성의 빈곤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하며 10일간 “빵과 장미”행진이 진행되고 같은 해 북경여성대회 때 이러한 행진을 지구적으로 확산하자는 제안이 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8년 10월 17일 ‘국제 빈곤퇴치의 날’에 “빈곤 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를 중심으로 “세계여성행진 2000 요구안”이 만들어졌고, 2000년 3월 8일 ‘세계여성행진’이 결성되었으며 지구적 행진이 발의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 전 세계 3만 여명 여성들이 모여 ‘인류를 위한 여성의 지구적 헌장’을 선포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을 출발로 하여 50여 개국을 통과하는 ‘릴레이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에 반대하는 전 세계 여성들의 공동의 목소리와 실천은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모여졌으며, 이날 정오에 각 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된 선포식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희망이 되어 24시간 내내 지구에 울려 퍼졌습니다. 한국의 경우 7월3일에 여성헌장 및 퀼트-또 다른 세상을 향한 전 세계 여성들의 바램이 수놓아진-가 통과하였으며, 이 날 한국여성들의 행진이 진행되기도 하였죠. 물론 10월 17일에도 전 세계 여성의 저항과 연대에 동참하는 공동행동을 하였고요.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 국가정책이 여성에 대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포섭되는 경향과는 완전히 단절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국제 연대를 강화하는 날로 세계 여성의 날은 거듭나야 합니다. 2008년 3월 8일 여성의 날은 바로 그러한 거듭남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100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저항하는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투쟁의 날로 다시 살아 숨 쉬어야 합니다.
저항_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불안정노동-재생산노동의 여성전가에 맞서자!
“최저임금 현실화하라! 생활임금 쟁취하자!”
“외주용역화 저지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
“노동자성 인정하고 노조결성 보장하라!”
“빈곤과 불안정노동 양산하는 비정규악법 철회하라!”
2008년 한국사회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은 100여년전 울려퍼졌던 여성노동자들의 구호와 너무나 흡사합니다.이는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이 중단없이 계속되어야 함을 알려준다고 하겠습니다. “女風당당”, “2000년 이후 ‘골드미스족’ 12배나 급증!”,“신임검사 절반 이상이 여성”....여성을 둘러싼 화려에 수사에 가려져,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고 빈곤층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현실이 은폐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자가 되자마자 여성인사를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신자유주의 여성인력활용 정책 하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신화는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인수위에서는 “여성 유망직종 발굴과 기업수요에 맞는 맞춤형 훈련, 취업연계 서비스 개발,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의 고용지원 확대 등을 통해 150만개의 여성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을 여성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즉 ‘맞춤형 일자리 제공해줄께→열심히 일해라→(빈곤, 비정규직에서 탈출하고)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것일텐데요, 그러나 이것은 여성의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문제를 은폐하고 해결을 더욱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만일 뿐입니다. 여성이 비정규직이 되고 빈곤해지는 것은 단지 적당한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성이 가사와 육아의 일차적 책임자가 되고 또한 유연한 노동력으로 취급되면서 저임금이 당연시되기 때문인데, 그러한 조건은 그대로 두고서 어떻게 여성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걸까요? 아니 오히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란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파트타임 노동이거나 여성이 가족 내에서 해오던 ‘여성적인 노동’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일이라는 도식을 강화함으로써 빈곤과 불안정노동, 재생산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조건을 더욱 공고하게 하여 여성의 삶을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해방이라는 것이 집단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우회하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능력과 자질이 되어 성공한 여성과 그렇지 못하여 비정규직과 빈곤상태에 놓여있는 여성이 확연히 구분되는 조건은 여성간의 위계와 분할, 경쟁을 가속화시킬 뿐 해방을 더욱 요원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100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전개될 우리의 저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 재생산노동의 여성전가에 맞선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정부가 선전하는 성공신화라든지 여성정책의 기만성을 철저히 폭로하고 여성억압의 구조 자체를 변혁해냄으로써 여성해방으로 나아가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연대_ 투쟁하는 여성-남성(비정규직-정규직, 이주-정주 노동자)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 재생산노동의 여성전가에 맞선 저항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여성내부의 위계와 분할을 극복하고 단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연대도 필수적입니다. 여성운동이 만들어갈 또 다른 세상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해방되는 새로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는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간의 연대와 단결 역시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고 빈곤층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현실이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노동자 운동과 여성 운동 모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그 어느 쪽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가족 내의 성별분업이 존재하고 그것이 전사회적인 성차별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저임금․불안정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게끔 함으로써 여성의 빈곤과 이중부담이 강화된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혹은 파악하려들지 않는 것!-이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실정입니다. 나아가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OECD 국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논리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 전사회적인 노동력이 줄고 부양책임은 늘어난다는 저출산․고령화 위기담론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여성해방-노동자해방을 위한 운동을 자임한 이들이 신자유주의가 핵심기치로 삼고 있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대책마련에 동참하고 ‘저출산․고령화’ 대책기구에도 참석하면서 여성의 비정규직,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는, 실로 모순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게다가 주류적인 여성운동 진영은 정부의 여성정책 개입 및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을 통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골몰함으로써, 여성대중운동의 수동화를 초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운동이 마치 여성이익집단을 위한 것으로 치부되는 데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억압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그것을 적당히 활용하는 운동양태는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여성억압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며, 빈곤-비정규 여성대중집단을 정책의 대상이나 제도개선의 수혜자로만 위치지우는 운동방식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사회변화를 주도해 갈 주체의 형성을 더디게 한다는 문제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합니다. 노동자 운동과 여성운동의 이러한 한계가 극복될 때에 비로소 여성-남성, 비정규-정규, 이주-정주 노동자의 연대는 강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100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펼쳐질 싸움은,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각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적인 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여성의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다만 그것이 너무나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문제시되기 보다는, 그러한 현실이 여성-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전반적으로 후퇴시키는 기제가 된다는 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여성 당사자 뿐만이 아니라, 정규직 여성도, 농민 여성도, 장애 여성도, 그리고 남성들도, 이주노동자도, 저임금의 불안정한 형태 말고는 노동에 대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을 중심으로 기존의 운동이 개조되고 연대전선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99주년 3․8 여성의 날에 광주시청에서는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이 진행되었던 반면, 서울에서의 여성의 날 기념대회에서는 진보여성 총 단결로 대선투쟁 승리하자는 선언이 허공에 외쳐졌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로 인해 3․8 여성의 날의 의미가 변질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올해의 여성의 날은 투쟁하는 여성들이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즉 진정한 여성의 날이 되게끔 해야 할 것입니다. 여성의 날이 100주년이 되었음을 다만 기념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100년간 투쟁해 온 여성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100년을 이어져온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되새기면서 바로 지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에 맞선 싸움에 나섭시다. 그러할 때에야 여성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 즉 1년 365일이 여성의 날인 세상이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바로 여성들의 ‘저항’과 ‘연대’로!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 저임금, 비정규 노동 철폐! 여성노동권 쟁취! 재생산 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자본주의 하에서 재생산은 생산과 분리되어 가족의 영역에 맡겨졌고, 여성의 장소를 가족으로 할당하는 공사분할,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하에서 재생산의 일차적 책임은 여성에게 전담되었다. 더불어 신자유주의 정책은 여성을 저임금의 유연하고 온순한 노동력으로 간주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데, 이에 따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권장되고 국가 정책의 주요 대상이 된다(여성인력 활용방안). 하지만 이런 정책은 여성의 소득은 (남성)가장의 소득을 보충하는 것이고 여성들은 일차적으로 가족을 담당한다는 성별분업의 구조와 이데올로기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해 가족 생계를 부양하고, 가족 내 가사노동, 돌봄 노동을 전담해야 하는 이중부담에서 전혀 자유로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되었을 뿐이다.
최근의 한 연구를 보면,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66.3%가 비정규직이며, 20대 후반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다. 게다가 정규직 여성은 20대 후반을 정점으로 그 수가 크게 감소하지만, 비정규직 여성은 20대 후반과 40대 초반을 정점으로 하고 30대 초반을 저점으로 하는 M자형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자녀 육아기를 거친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 할 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인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0% 정도이며, 비정규직 2명 중 1명은 저임금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이 많은 여성들이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저임금 계층에 속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여성이 가족 내 가사 전담자라는 성차별, 성별분업의 구조와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출할 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반찬 값 벌러 온 아줌마’라고 무시하면서 저임금/임금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걸핏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정규직으로 고용하냐’고 비정규직을 정당화했던 이랜드 사측의 태도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착취, 활용하는 것은 자본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여성은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전제로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여성들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은 전체 노동자들의 지위와 조건을 후퇴시키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저임금, 비정규 노동을 철폐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임금, 고용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성별분업, 성차별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제거하는 것에서나 여성들이 경제적 독립과 자율성을 위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안정된 일자리에서 노동할 조건을 만드는 것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더불어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 노동권 쟁취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와 지배세력은 한축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다른 한축으로 신자유주의 하에서 가속되고 있는 가족의 위기, 재생산의 위기(단적으로 고령화)를 관리하는 방안으로 재생산 노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지원은 여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임과 동시에 여성들에게 일-가정을 양립하게 해주는 특혜처럼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마련하겠다는 일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기존에 가족에서 수행되던 재생산 노동이다. 하지만 이런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나 평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따라서 저임금이 당연시 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재생산 노동의 영역을 사회서비스라 명명하면서 시장화하려 한다. 이는 사회서비스 부문이 자본의 이윤 창출의 한 영역으로 사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속에서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조건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이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저임금을 받을뿐더러, 담당하는 사회서비스 이용자의 요구나 상황에 따라 노동조건이 좌우되는데다가 사랑의 마음으로 수행해야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 하에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런 지원은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을 사회가 책임진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개별 가족이 그 수혜 단위가 되고 있으며, 기존에 가족(여성)이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던 구조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가족 내에서 여성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보육료를 지원하든, 간병, 가사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든 그 일이 여성의 일, 여성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제 각 가정의 주부들은 ‘사회서비스 이용자’라는 규정 속에서 자신의 가사와 돌봄 노동을 보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정부 지원을 통해 돈을 주고 이용하는 사용자의 위치도 갖게 되었다. 결국 맞벌이 부부든, 한 부모 가정이든, 자식들의 돌봄이 없는 독거노인이든, 어쨌든 여성의 역할에 빈자리가 있는 가족을 다른 여성의 노동으로 채워주는 양상이다.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누군가를 돌보고 키우는 일이 없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자본의 요구에 따른 여성인력 활용의 측면에서 시행되는 지금의 일-가정 양립정책은 재생산 노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저 각 가정에 약간의 돈을 지원하고, 저임금의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을 활용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시장화 방식은 재생산 노동 영역을 일자리로 갖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할 뿐이다. 재생산 노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사회를 재생산하는 노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존에 가족에서 무급으로 수행되어 온,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고 그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이 속에서 보육, 간병, 가사와 같은 재생산 노동을 사회 전체가 지원하는 체계나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권리 보장과 같은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 투쟁 기조
여성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현실을 폭로하고 그에 맞선 투쟁을 조직한다.
여성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여성/남성,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형성한다.
■ 주요 요구
여성 비정규직 심화하는 비정규 악법 폐기! 외주용역화 저지, 정규직화 쟁취!
비정규 악법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법이라 칭해지고 있다. 비정규직법안 통과 이후, 장기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해지가 잇달았고, 이미 단체협상을 통해 정규직화를 약속한 단위에서조차 임의해고가 자행되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외주화, 용역화도 진행되었다. 비정규직법안으로 인해 해고되거나 외주화된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여성노동자들의 비정규직을 더욱 심화시키고 확산시킬 비정규 악법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확산하는 외주화, 용역화를 중단시키고,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자리를 쟁취해야 한다.
여성 비정규 노동 고착화시키는 무기계약제, 분리직군제 반대!
분리직군제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태가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 무기계약화된다는 점에서 노동권 쟁취와는 거리가 멀다. 분리직군제를 통해 한계적이나마 정규직화가 되었다고 이야기되지만, 같은 정규직 내에서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별도의 체계에 의해 관리되기 때문에 정규직이냐 아니냐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조차 분리직군제 앞에서는 무기력할 따름이다. 따라서 고용안정의 측면만을 부각시키며 분리직군제를 환영할 수는 없다. 분리직군제는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성별 분업이 고착화하며, 성별과 고용 형태의 차이를 활용하여 저임금 직군에 여성노동자들을 할당한다.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비정규직을 고착화시킬 뿐인 무기계약제, 분리직군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 사회서비스 공공성 쟁취!
사회서비스는 돈벌이 대상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따라서 공적인 사회서비스 체계를 확보해야 하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국가 및 사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운영에 있어서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및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역주민들, 그리고 운영주체 등이 민주적 권리와 책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도 필수적인 과제다. 사회서비스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나, 특히 여성이라면 아무나 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간병, 보육 등의 돌봄 서비스 노동이 제대로 사회화될 수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낮은 임금으로 감당할만한 일로 여겨져, 가족 내외에서의 여성의 이중적인 부담은 더욱 강화될 것이 뻔하다.
최저임금 현실화, 생활임금 쟁취!
2008년 현재 최저임금은 시급 3,770원으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게다가 최저임금제도는 그 취지가 무색하게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상한선이 되면서 바닥 생존을 강요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생활권은 최저선의 생활조건이 아닌, 인간다운 삶의 권리로서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이 단순히 최저 수준의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되어야 하며,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권리,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대한 자주적인 결정권 확보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주여성의 노동권, 시민권 보장!
국제결혼이나 취업을 위해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무권리 상태에서 폭력과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 감시 등의 문제는, 여성은 남편의 소유물이고 가족 내 하인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과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비하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문제다. 그리고 이주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어떤 권리도 없이 차별과 멸시,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견뎌야 하고, 늘 단속과 추방의 위험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에 대한 정책이나 태도는 이주여성들을 한국 사회의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인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단지 다양성과 관용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이 문제를 관리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주여성들이 처하게 되는 많은 문제들은 이들이 당당한 노동자이자 시민으로 인정받으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속에서 해결될 수 있다.
여성의 빈곤,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는 FTA 반대!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세력의 적극적인 의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여성들의 불안정한 노동, 빈곤이 심화되었다. FTA는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기제다. 초민족 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들을 착취하고 여성의 삶을 악화시키는 FTA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FTA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아니라 노동권, 여성권, 식량주권, 건강권, 교육권과 같은 민중의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싸울 것이다.
여성의 삶 악화시키는 미국의 대테러 전쟁 반대, 한국군 파병 반대!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를 확산하고 그 통치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매개다.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 즉 금융세계화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군사력을 동원하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그 자체로 그 지역의 여성들,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민중의 삶을 파괴한다. 게다가 전쟁 이후 재건이란 명목으로 신자유주의 질서를 이식시키면서 민중의 삶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여성의 권리와 양립할 수 없으며, 이에 동참하는 한국 정부의 파병도 찬성할 수 없다. 여성의 이름으로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반대하며, 파병 한국군의 즉각 철군을 요구한다.
[보육]
눈부시게 조명 받는 보육의 미래에 대한 화려한 약속
그 뒤편에 가려진 보육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내기 위한 전국보육노동자들의 투쟁!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는 임신 7개월의 정선생은 차량운행에 전천후로 쓸 수 없다는 원장의 압박에 괴로워하십니다.
근로계약서도 없고 월급명세서도 없이 그저 인턴이라 불렸던 옆 반의 김선생, 1년만 지나면 인턴 딱지 떼고 정교사가 될 거라는 생각에 동일시간 동일업무를 하여도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봉투를 꿋꿋이 참아냈는데, 결국 김선생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1년짜리 계약직이 되어 있었고 올해는 경영상의 이유로 기어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 광주전남지부 보육노동자들의 이야기 中-
저출산․고령사회 대책마련을 위한 사회협약이 발표되는 등 보육문제가 국가 핵심과제라는 화려한 조명 속에 수많은 정책과 예산확대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보육노동자들의 고통과 시름, 눈물을 닦아주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보육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100만원 남짓.
평일근무시간 평균 10.5시간,
어린이집 기나긴 하루생활 중 보육노동자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총시간 21.8분
그중 아이들 돌보며 먹는 점심시간 11분. 휴식시간 3.6분, 개인 청결 시간 5.5분,
어른변기 조차 없는 보육시설 17%,
퇴직금과 연장근무수당은 그림의 떡, 생리휴가 월차휴가는 아득한 남의나라 이야기.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며 쳇바퀴처럼 쫓기는 하루일과 속에 날로 쌓이는 건 만성피로와 소화기, 호흡기 장애, 근골격계 이상 등 늘어만 가는 직업병들...
이것이 바로 눈부시게 조명 받는 보육의 미래에 대한 화려한 약속 뒤편에 가려져 숨죽여 헐떡이고 있는 보육노동자의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보육의 질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정작 보육공공성을 강화하기는커녕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하여 보육노동자들의 노동강도만을 강화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보육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보육현장에서 결코 우리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육노동자의 안정적 노동환경은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행복한 보육환경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이에 전국의 보육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벽을 깨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보육노동자 최저임금 145만원 쟁취하자!
필요인력 확충하고 8시간 노동 보장하라!
보육은 국가책임 국공립시설 확충하라!
보육공공성 확보와 보육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
[간병]
누구나 근심걱정없이 노후를 보내는 것,
간병노동자의 노동권 확보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통해서만 쟁취될 수 있는 민중의 권리!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만들려면 반드시 해당노동자인 요양사와 간병인들의 노동의 댓가가 정당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국민건강보험료로 요양비용이 지급되고, 노인과 환자는 부담없이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요양사와 간병인들이 저임금의 불안정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지요. 그래서 노인과 환자가 정말로 마음 편하게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요양사와 간병인도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에서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정부가 정말로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자 한다면, 모두가 안정된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노인들이 정말 편하게 하늘나라로 가시게끔 모실 수 있게 하는, 노인들이 기쁨으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이 땅에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3월, 98주년 세계여성의 날 맞이 토론회에서, 서울지역지부 간병인분회장 발언 中-
노무현 정부는 고령인구 증가에 대비한다며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제정, 오는 7월부터 실시되도록 하였다. 노인과 환자를 돌봐오던 간병노동자들은 이 제도의 실시로 인해 많은 노인과 환자가 마음 편히 보살핌을 받고, 또한 간병노동자들 역시 음지에서 벗어나 당당한 노동자로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왔다.
간병노동자들은 가사사용인일 뿐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공식부문에서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으로 일을 해왔다. 이로 인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이며, 따라서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들은 류머티즘, 허리디스크, 안구질환 등에 시달린다. 또한 간염, 결핵 등의 산업재해에 노출되어 그대로 피해를 입게 되어도 산재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이 일자리에서 내몰리게 된다. 이외에도 비인간적인 대우와 무시로 인한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간병제도라고 할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간병노동자들의 기대는 남달랐다. 공식부문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일하며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되길 소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간병노동자들의 이러한 바램은 이윤추구만을 목표로 한 시장화된 방식의 법안이 강행처리됨으로써 산산히 깨어지고 말았다. 통과된 법은 해당노동자들을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활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존에 병원과 집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일해 온 간병노동자들을 더욱 음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간병인도 노인과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노동자이며, 간병노동자가 기운차게 일을 할 수 있어야 노인과 환자의 쾌유도 가능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에 서울지역과 대구지역 간병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간병노동자의 노동권 확보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해당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결코 노인들의 편한 노후를 가능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내는 실천을 힘차게 진행 중이다.
[청소용역]
우리는 쓰레기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청소용역여성노동자의 권리선언!
“쓰레기를 치우면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했던 늙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눈치 보고 숨죽이며 살아왔던 인생이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순간까지도 무수한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쓰레기에서 인간으로 돌아왔습니다.
(…) 노동자의 그 어떤 투쟁이 절박하지 않겠으며, 힘들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당장이라도 광주로 달려가 광주시청 여성동지들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손만 잡고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멀리서 마음으로라도 동지들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승리하는 그날까지 지금 잡은 이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울산과학대 여성노동자들이 광주시청 여성노동자들에게 보낸 연대의 편지글 中-
2007년 3월 7일, 울산과학대의 청소미화원 여성노동자들은 알몸인 상태로 울산과학대 직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녀들은 한 달에 67만 원 받으며 일해 온 청소미화원 노동자들이다. 그녀들은 1월 22일, “2월 23일부로 계약해지 하겠다”라는 사측에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사측은 사직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명할 수 없는, 그동안의 삶이 억울해 사직서에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없었던 9명의 노동자들은 서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장에 직원들이 들이닥치자 누군가는 외쳤을 것이다. “옷을 벗자. 벗고 있으면 그 누구도 손을 못 댄대!” 하지만 그녀들은 알몸으로 끌려나왔다.
그리고 2007년 99주년 여성의 날을 맞는 3월 8일 광주시청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도 “비정규직 직원 고용을 승계하라”고 요구하며 알몸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광주시청 3층 사장실 앞 복도를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하던 노동자들을 끌어냈다. 남성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모두 끌려 나갔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만 남았다. 농성장에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누군가 외쳤다. “우리 몸에 손대지 말라”고 외쳤다. 그리고 윗옷을 벗었다.
울산과 광주의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은 똑같이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자로서 임금임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위해 노동3권을 요구했으며,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폭력과 탄압.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했으며, 그 용기는 ‘쓰레기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자부심이 되었다.
울산과학대의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은 긴 싸움 끝에 일터로 돌아갔고, 광주시청의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은 조금 더 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성신여대에서, 연세대에서, 덕성여대에서....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과 비정규직이라는 굴레 속에서 인간다운 권리를 찾겠다고 선언하는 전국 곳곳의 청소용역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기륭전자]
누구보다 오래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하루는 전체 노동자의 환한 웃음의 하루로 되살아날 것
“싸움이 길어지면서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이제 그만둬라, 당신이 가서 이제 사람에 대한 것 알고 그랬으니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만큼 배웠으니 다른 것도 더 배워야겠지 않냐, 나는 아직도 노조활동해서, 싸워서 배울게 많으니까 더 해야겠다고.”
기륭전자가 위치한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옷은 갈아입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힘겹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은 20여년전 구로에 있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20년 뒤의 모습이다. 10대 때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혹은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일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들쳐 매고 일을 하고,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쯤이면 또 일을 찾아 파견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기계처럼 일해 온 여성들의 삶은 여전하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주는 저임금. 잔업특근 거부하면 해고 0순위에 오르고, 어느 날 갑자기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살인적인 노동통제. 어린 아가씨들이나 결혼할 염려가 있는 아가씨들은 6개월, 결혼할 염려가 없는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1년, 나이가 좀 찬 사람은 3개월로 계약을 맺어온 성차별적 현장분위기...급기야 불법파견 시정 통보를 받고서도 오히려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조합원들을 일터에서 내쫓아버리기까지...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오늘도 투쟁 중이다. 2005년 뜨거운 여름에서부터 시작하여 2008년 봄을 맞이하고 있는 3년여 간의 투쟁. 그러나 그 누구보다 오래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하루는, 전체 노동자의 환한 웃음의 하루로 반드시 되살아 날 것이다.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보호’법의 거짓말을
온몸으로 알려낸 용감한 여성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이 가사와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노동형태라고 호도하면서,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차별금지를 강화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이야말로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매장을 점거하고 있는 파업의 순간에도 밀린 빨래와 설거지 걱정, 남편과 아이들 끼니 걱정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뉴코아-이랜드의 수많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여성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좋다고 이야기 할 이는 단 한명도 없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과 기업의 입맛에 맞는 유연한 고용형태가 결코 아니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방식과 형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이다. 파리 목숨과 같은 비정규직이라 일이 많을 때는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야근특근을 감내해야하고 일없다고 나오지 말라면 찍소리 못하고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을 때는 일을 하고 휴식이 필요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쉴 수 있는 노동에 대한 권리가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보호’법은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그리고서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일자리 창출 및 고용유지 방안인척 하며 독립직군제와 무기계약 전환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을 ‘여성에게 적합한 직종’, ‘저임금의 직종’으로 몰아넣고 성차별 및 빈곤 문제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노무현 정부의 온갖 감언이설과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비정규‘확산’법의 허구를 폭로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을 알려내는 투쟁을 벌여내고 있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퉁퉁부어 관절이 망가지고 화장실 갈 틈조차 없어 방광염이 걸려도 언제나 고객친절을 최우선시 하는 이랜드 그룹의 기조아래 끊임없이 웃어야 했던 그녀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130억 원을 십일조로 헌납하고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해나갈 동안 밤이고 낮이고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한 달 고작 최저임금 겨우 넘는 임금을 받아 쥐고 가족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녀들. 이들의 고단한 삶은 이 땅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대표하며, 따라서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거센 목소리는 우리 모두가 귀기울이고 화답해야 하는 시대의 진실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지 않고 더욱 크게 확산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확산되어야 할 것은 ‘비정규직’이 아니요 다만 ‘진실’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의 몫일테다.
[노점상]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가난...
폭력적인 단속철거 말고, 빈곤여성의 생존권 보장하라!
올해 58세인 H씨는 18년 째 상추, 콩나물, 고추 등을 팔며 노점상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오전 7시에 집을 나서 저녁 9시 쯤 장사를 끝낸다. 하루 수입은 5~6만원, 한 달 수입은 보통 120만원 안팎이다. 비공식 부문, 아니 불법 노점을 하고 있는 H씨에게 역시 4대 보험은 먼 나라 이야기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가난은 H씨에겐 좀처럼 떨쳐내기 어려워보인다.
뿐만 아니다. 정부는 노점으로 생존하는 빈곤대중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는 대안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당장 폭력적으로 단속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