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의 시작.
'사랑도 쉬었던 시절~♪'
오전 11시...
내 손전화에 등록된
Toy의 '안녕 스무살.'이 나를 깨운다.
원래 노래가 좋다는걸 알았지만,
특별한 기회를 통해 더 좋아하게된 가수...
하지만 지금 이 시간 만큼은 너무나도 듣기싫다.
하지만 일어나야함을 이내 깨달아,
아쉬운 꿈을 잠시 접어두고,
나는 나의 따스한 이불에서 벗어난다.
그리곤 내 방 벽에 붙은...
오늘의 일과를 본다.
'학 원'
...
너무나도 가기 싫었다.
어머니의 등쌀에 못이긴...
그리고 뭔가 해보겠다는 나의 작은 바램의 성과물...
어쩌다보니 종로까지 다니게된 내 신세를 한탄하며...
가볍게 몸정리를 한 뒤, 가방을 매고...
몇 일전에 산... 헤드폰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리곤 상록수역...
시간은 12시 30분...
'어차피 지금 가면... 늦는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늘에서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MP3에서 평소에 듣지 않던 곡이 흘러나오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다음을 눌러보지만 넘어가지 않음에...
홀드에 걸려버린 MP3가 풀리지 않음을 직감한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 고장이 나다니... 삼성동 A/S센터에 가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가자!!' 라는 생각에 몸을 맡겼다.
그리곤 학원가기 싫었다는 내 가슴 한켠에 있는 마음을
합당화 하기 위한 나름 괜찮은 변명이란 것에 뿌듯해 한다.
혼자 좋아하다 보니...
그제서야, 답답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마음에 생긴 여유 때문이었을까?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상록수역의 조용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의 장난스런 외도를 묵묵히
지켜봐주겠다는 듯한 모습이랄까?...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지만
그래도 짧은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다시 즐겁기만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을 서울 여행,
얼마 되지도 않을 시간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을 무렵...
멀리서 지하철 바람은 나의 여행의 시작을 알려줬고...
나는 그 바람에 몸을 싣고선 길을 나섰다.
↑ 오전의 상록수역.
너무나도 조용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평화로운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 오전의 상록수역은 정말로 갈때마다 나를 평화롭게 해준다.
#2 지하철
의외로 이 시간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다.
운 좋게 자리에 앉았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서서 갈뻔했다.
내 건너편엔...
피곤에 지친 회사원 둘과 며느리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 두분과 함께...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한 여자가 영어 책을 배게 삼아 자고 있었다.
늘 보아오던 지하철 풍경이었지만...
오늘따라 세상 속에 이렇게 다양한 연련층이 한 곳에서
세상 속에서 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 새삼스러웠다.
알수없는 새삼스러움을 감상하면서
많은 생각이 오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 관념이랄까?...
젊은 나이엔 공부라는 맹목적인 목적에...
자신을 잃은채. 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나이가 좀 더 들고선...
스스로의 명예와 부를 위하여,
자기를 돌보지 않은채 늘 피곤에 쩔어살고...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줄 무렵엔...
자기가 키워온 모든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알수없는 부정적인 생각들...
그 안타까운 생각에 젖어들어 나를 잃어갈때...
갑자기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방어를 위해...
새로산 책을 열었다.
↑ 이스탄불의 선물... 책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마치 유럽 고성 속에 있는 고서같은 이미지..? 이 책은 터키의 수도이자 동 서양 문화의 결합지인 이스탄불에 대해 쓴 여행기이다.
한장 두장 넘기면서...
나는 이 나미 씨가 되어 이스탄불이라는 곳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색다른 문화... 동서양이 결합된 그 곳...
두 종교의 문화가 같이 공존하는 그 곳에 대한 매력은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주었고... 나를 한명의 여행가로써로 변모시켰다.
한 40분쯤 읽었을까?...
(체감상 10분 읽은 듯 했다.)
무언가 빼먹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삼성동 가는 방법을 몰랐었다.
그래서 책을 잠시 접어두곤...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하철 노선도를 봤고...
사당에서 갈아타야 했다는걸 깨닫고 안도와 함께 내 자리를 보았을땐...
어느 아주머니께서 차지한 상태였고...
(내 기억엔 내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앉으신듯...
대한민국 어머니의 빠른 민첩성을 느끼게 해주셨다.)
어쩔수 없이 사당까진 서서 갔다.
마음의 양식을 먹은지 20분도 채 넘지 않을 무렵.
'사당. 사당 역입니다.' 라는 짱구엄마 목소리가 나오고...
나는 책을 가방에 넣고선...
몇 십분이었지만 잠시 정든 지하철 풍경을
놓아둔채 자리를 나섰다.
#3 유치한 생각
사당역...
내가 타고있던 칸에서도 엄청난 인파들이 튀어나왔다.
딱히 비유하자면 하나의 분주한 물결이 되어 이리로 저리로 흘렀다.
나는 그 분주함에 넋을 잃어 멍하니 있었다.
아마도...
상록수역의 조용함이 익숙했던 내게.
분주한 리듬이 하나의 쇼크였으리라...
밀폐된 지하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아
뛰고 걷고 무리짓는걸 보며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몇 십분만 이곳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보면...
요즘 유행하는 패션과 사람의 성격, 기분이 보일꺼란 유치하지만서도 뭔가 신빙성이 있어보이는 생각 말이다.
(물론 타당성을 따지기엔 많은 시간이 소비될듯 싶다.)
그렇게 유치한 생각에 넋을 잃어있던 나는 열차 출발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 아... 시간이 없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유치한 생각의 실천은 언젠가 해보리라 라고 다짐하고는 모두의 분주한 리듬에 나를 싣고 2호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4 후드와 정장
사당역은
4호선 -> 2호선 갈아타는 부분이 역 끝에 있기 때문에 한참을 걸어야한다.
멍하니 모두의 흐름을 따라 내 발만 보고 걸어 2호선에 도착했을 때, 바퀴벌래같은 검정색들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정장차림의 회사원들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비니와 후드티, 면바지를 입은 내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정장맨들이 많았다.
다들 검은옷과 서류가방 그리고 길게 늘어진 행렬...
그런 모습에 긴장한 나는 잠시 얼수밖에 없었고, 도망가야한다는 알수없는 기분에 또 끝에서 끝을 향해 걸어갔다.
혹자는 내게 '어때서?' 라 질문할지 모르지만 나는 정장이 싫다.
이유는 갑갑해서... 라고 간단하게 말할수 있지만 깊게 말한다면 자유와 복종의 차이라 해야하나?.
내가 보는 정장의 모습은 몸에 딱맞고 정형화된 벽돌같아 보인다.
그러한 모습은 너무나도 내가 신빙하는 자유와 동떨어져 있다.
음... 마치,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는 벽돌의 모습이랄까?
너무나도 딱딱하고 정형화된 모습을 볼때마다 나는 갑갑해한다.
그런데 후드가 정장 사이에 있으면,
마치... 피라미드 벽돌 사이에 껴있는 강가에 돌맹이 같지 않은가?...
그 질서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짧은 본능이 나를 도망하게 하였다.
혹시 언젠가는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후드의 편안함이 좋다.
아직은 나의 자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강해서 그런가보다.
정작, 지금의 후드가 정장보다는 우월하단 느낌은 없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끝자락에 도착하니...
나처럼 정장을 피해서 모인 후드족들이 밴치에 앉아, 멍하니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모두가 나랑 같은 생각이겠지' 라는 혼자만의 공감대를 만들다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상 속에 기뻐하며 어느세 도착한 열차에 몸을 실었다.
#5 장님 할아버지
다행히 맨 앞칸이라
생각보단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찜찜했다면...
내가 관찰할 무언가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렇게 혼자 심심해 하던 차에...
앞을 못보는 장님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1년전 저는 갑자기 시신경이상에 의해 눈을 잃었습니다. 혼자살기 힘든 각박한 세상 좀 도와주십시오.'
(아직도 이 멘트 기억한다. 그만큼 인상이 깊었나보다.)
검은 선글라스 위에 오랜기간 같이 운명을 함께한 중절모와 기나 긴 시간을 눈 역할을 해줬을 보행용 막대기 그리고 새하얀 머리카락, 긴 수염...
마치 '동방의 덤블도어'라고 불러드리고 싶은 그런 인상이었다.
(그만큼 따스하게 생기셨다.)
열심히 보행막대기로 땅을 두드리시며 걸으시는 모습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6.25 참전 후 실명을 하시고 돌아오신 할아버지
비록 아버지 고3때 돌아가셨지만,
그리고 저 할아버지는 1년전에 눈을 잃으셨다지만...
그래도... 알수없는 측은함에 한동안 영정사진으로만 바라본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선뜻 천원을 꺼냈다.
한걸음 한걸음... 내 근처에 다 오셨을때.
내 작은 정성을 할아버지 바구니에 넣었다.
할아버지의 깊고 깊은 주름이 더욱더 깊어 보였다.
그 주름 하나 하나가 삶의 고통이었으리라.
그러자 할아버지께선 "고맙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리곤 내리셨다.
멍하니 뒷 모습을 바라봤다.
태어나서 한번도 본적이 없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저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다음 역인 삼성역에서 내렸다.
#6 분주함과 또 다른 목적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삼 성 동.
코엑스도 있고, 고층빌딩도 많고
뭔가 인텔리 해보이는 건물들이 많은 곳
그 만큼 더더욱이 바쁘고 분주한 곳.
↑ 분주한 리듬의 삼성동 인간들. 딱히 많은 인원일때 찍지 못했지만... 저 흔들림으로라도 그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정말 분주하다. 정장맨들을 찍으려고 찍었는데 엄청 빠르게 도망가 버렸다. 그렇게 8번 출구를 찾아, 답답함의 해소를 찾아 나섰다. 8번 출구를 따라 올라갔을때 눈부신 햇볕이 나를 반겼다. 날씨는 가히 여행을 위한 따스하며 시원한 좋은 날씨었다. 하지만 이내 지상에 나온 것에 대한 행복은 사라졌다. 지상 역시도... 지하 못지 않은 분주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 삼성동의 분주함. 정장보다 더 싫은 교통체증... 답답한 모습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저 사이에서 고생할꺼란 생각에 측은하게도 보인다.
분주함 속에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했던 나는 다시금 여행이라는 목적을 찾아 A/S 센터를 찾아나섰다.
그렇게 한걸음 두걸음 걸으며, 고층빌딩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A/S 센터 입구였다.
한결같은 아이리버 누나는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한다.
한두가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얼마나 걸릴듯 하냐 물어보니,
1시간 40분만 기다리라고한다.
지금 시간은 2시 30분, 학원은 이미 쫑났다.
'1시간 40분이면 할께 뭐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몇 일전 화제로 전소된 숭례문이 떠올랐고...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새 목적지는 세팅 되었고, 아이리버 누나에게 '그때 돌아오겠다.' 말한 뒤 다시금 역전을 향해 걸었다.
↑ 나름 서비스가 좋은 삼성동 아이리버 A/S센터. 비록 카운터 누나가 이쁘진 않지만... 전문가적인 지식으로 고객을 마음놓게 함에... 좀 대단해 보였다. 나는 처음에 이게 코엑스에 있는줄 알았다. 8번출구 바로옆 건물에 있다.
#7 서울역으로 !!
안산 촌놈이라 그런지, 숭례문가는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누나한테 연락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은 알고 2는 모르는 행동이었다.
몇분 뒤 누나의 메시지가 왔다.
'서울역'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줌과 동시에, 학원은 어쨌냐고 묻는다.
...걸렸다...
둘러대기엔 누나의 눈치가 빨라,그냥 쨌다고 말했다.
왠일인지, 누나는 '집에 일찍 들어가기나 해' 라며 봐줬다.
(누나 ♡)
어찌되었든 목적지는 서울역 !!!
서울역 하니, 한달 전 쯤인가 동생 데리고 서울에 갔을때 식사했던 서울역 롯데리아가 생각났다.
그러자 배가 고팠고, 서울역 롯데리아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삼성역에서 지하철을 타, 구석에서 다시 책을 폈고
(이 때쯤 책을 이미 1/3을 읽었다...)
서울역까지 남은 시간을 이스탄불에서 보냈다.
그렇게 이스탄불의 문화에 나를 식히다 보니, 사당역, 그리고 서울역.
도착이었다.
↑ 사당역에서 4호선 갈아타고... 사람들은 없엇지만, 자리도 없었다.
서서 책보다가 심심한 가운데 지하철 풍경에 대한 알수없는 강한 인상에 한장 찍었다. 얌전한 아주머니와 신문을 보는 화난 인상의 아저씨..
그리고 무심한듯한 학생... 현대 사회의 가족상을 보는듯한... 착각이랄까?
#8 한국은, 그리고 식사.
서울역이다. 몇일 전과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한가지 있다면, 더 많아진 사람들 정도?
'아마도 나와 같은 취지로 온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라며 뿌듯해 하곤, 지하 역전을 거슬러 올라와 겔러리아랑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른다.
지상에 다다를 무렵, 나는 이 곳이 기차역인지, 백화점인지를 햇갈려했다.
물론 둘 다 겠지만 역을 찾아오는 이들은 극히 드문듯 하였다.
하나같이 호화스러운 옷과 함께 유행을 따라한 다 같은 헤어스타일들 아마도 겔러리아로 향하는 사람들인 듯 했다.
지하철 여행을 하며 느끼는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페션과 스타일은 모두가 개성을 찾아 다니는 일본의 스타일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는걸 느꼈다.
우리나라의 어설픈 모습에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나도 개성없지만...)
그런 이런 저런한 생각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는 지상에 다달았고 나는 사진이고 뭣이고 간에,
'굶주린 배부터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어 롯데리아를 찾아갔다.
↑ 겔러리아와 서울역을 잇는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내려가는 이는 없는... 오후 3시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모습은 정말 답답해 미치게한다. 평소에 지켜지던 좌측 통행도 지켜지지 않은채... 하나같이 자신의 편안함을 강조하는 이기심 역시도 씁슬하였다.
서울역 롯데리아 뭐 어디와 별반 다를거 없는 Fast Food점이겠지만,
그래도 이 곳은 나름 조용하다.
(장사가 안된다라고도 말할수 있겠다.)
서울역 근처인데도 장사가 안됨은 의아하지만, 서울의 분주함에 지친 내게는 훌륭한 쉼터였다.
배고픔에 지쳐 햄버거세트 하나를 시키곤 조용한 이 곳에서 이스탄불의 경치를 감상했다.
물론 Fast Food점에서 책을 읽는게 '오바한다.' 라고 말할수 있지만,
예전에 천안역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독서하는 어느 노인을 보고나서부턴... 나도 저절로 책을 펼치곤 한다.
(혼자 있을때만 그런다. )
경치에 한참을 푹 빠져있을때 식사가 나왔다.
햄버거 한조각이랑,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콜라.
무난한 세트메뉴.
그래도 여타 롯데리아랑 다른점이 프렌치 프라이가 치킨 바구니에 나오고 콜라는 플라스틱 컵에 주더라 물론 전에 왔을때도 그렇게 먹었지만,
그날 따라 더욱 생소해보였다.
여행이라는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어떠한 일이나 작은 부분까지도 모두가 신기하고 관찰하고 싶었다.
생소함에 점원에게 묻기는 쪽팔리고 해서, 그냥 생각을 멈췄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와서 되돌아 생각하면 '서울이라 그렇다...' 라는 촌놈발상밖에 나질 않는다. ㅋ)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옛말처럼 햄버거는 여행의 피곤함을 풀어주기엔 했다.
한입 한입, 한장 한장, 책을 넘기다보니 어느덧 책의 반을 읽었다.
그쯔음 되니 내 앞에는 콜라밖에 남질 않았고, 원샷으로 콜라를 없앤 다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서울역 롯데리아. 정말 사람없다. 물론 런치타임이 아닐때 와서 그런가 했지만... 텅텅 비어있었다. 와서 사가는 사람은 좀 있었는듯...
결국 난 아싸 였던건가...ㅋㅋㅋ 아... 치울때도 점원이 치워준다. 역시 서울?! ㅋㅋㅋ
#9 New & Old...
밖에 나오자마자 고층 빌딩들과 신 서울역의 밀레니엄틱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곤 삼성동에서 본 분주함보단 덜하지만 시끄러운 엔진소리의 주인공들이 보인다.
그 소리가 싫어서라도, 얼른 자리를 이동해야만 했다.
그렇게 피난민 마냥 빠른 걸음으로 숭례문을 도주하던 도중
구 서울역을 보게되었다.
바쁘게 도망치던 나의 갑갑함은 그곳에서 잠시 정차했다.
구서울역은 자신의 소임을 마친 뒤, 조용한 박물관의 역할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퇴역한 장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더더욱 아쉬워 보이게 하였다.
애도와 아쉬운 마음에 다가서니, 박물관은 문을 열지 않은듯 하였고 처마 밑에는 노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서울역의 옛 추억이 그리워서, 아님, 한겨울의 추위를 피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고구마를 구워먹고 있었다.
아마도 둘 다일것만 같았다.
그런 퇴역 장교님의 모습을 바라보니,
'무엇이든 그런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버려지게 되는거...
그것은 우리 아버지가 그리하였고 그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도 그랬을것이다.
역사가 그리하고, 세상이 그러했다.
그건 인과율처럼 깨어지기 어려운 노년의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옛말에 '노인의 깊은 주름 하나 하나에 세상의 지식이 패여있다.' 라는 말이 있듯이 다 쓰고 버려지는 건전지마냥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고 억울해 보였다.
특히 새로지어진 고층 빌딩 들 사이에서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곤 그들의 눈치 속에서 "저 건물은 오래되고 지저분해서 보기 싫다." 라는 소리나 들어가는 모습이 꼭 곳 임기를 마치는 아버지의 모습에 맞물려, 더더욱이 깊은 생각과 아쉬움을 남겼다.
↑ 서울역 앞. 시끄럽고 바빠보이는 거리... 난 싫다.
↑ 아쉽게 서있는 구 서울역... 비록 일본이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시간을 지켜온 산 역사 였다. 마치 오랜 영혼이 사는듯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정말 아쉬웠다. 박물관 좀 열어주지 ㅠㅠ;;
↑ 서울역 지하도 가기전에 있는... 쓰레기 더미 위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 서민과 상류층의 알수없는 조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언제라도 무너질듯 한 쓰레기 더미는 서민들의 애환과 같아보임에 서글펐고... 언제라도 하늘을 찌를듯한 상류층의 재수없음이 보여서 짜증났다.
하지만 이 것이 현 사회의 주소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그저 그랬다.
#10 지하도로...
잠시 깊었던 아쉬움을 접고선 한걸음씩 이동했다.
숭례문이 어딘지 모르던 나는 차도에 있는 표지판만을 믿고 갔다.
그렇게 차도를 따라가니 내가 큰 8차선 도로를 건너야함을 알게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문득 보이는 서울역 지하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 텅빈 지하도 입구... 저 아저씨는 갑자기 나타나셔선 내 사진을 방해하셨다. 윽... 생각해보니... 노숙자 같기도 하다...
지하도 입구에 다다랐을때, 서울 어딜가도 많은 사람들이 뚝 끊긴걸 보고 의아했다.
그리고 갑자기 들려온 바람소리에 분위기가 확 음산해졌다.
조금 찝찝하고 겁도 조금 났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숭례문을 가기위해
한걸음 한걸음 내려갔다.
그렇게 지하도를 들어서는 순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횡한 지하도 한가운데 기둥들이 나란히 서있고, 그 가운데는 종이박스로 지어진 아담하면서도 조촐한 집들이 드문 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횡한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노숙자들의 보금자리.
안산에선 본적도 없는데, 진짜 서울엔 노숙자들이 많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거지.? 라는걸 처음봤기 때문일거다.
한번도 씻지않은듯한 검은 얼굴과 냄새나는 점퍼.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초리. 내게는 노숙자라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했다.
비단 나만 그런것은 아니리라. 그래서 이곳이 그만큼 횡한거일지도...
그렇게 쓸데없는 사색에 빠져 있다가, 문득, 자고있던 노숙자한테 담배삥 뜯길까 두려워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나왔다.
↑ 너무나도 횡한 지하도... 다 이유가 있었던거였다. 물론 노숙자분들이 주무시고 계시진 않았지만... 뭔가 꺼림직 할만도 했으리라...
↑ 꽤나 추워보이는 구조... 완전 어떻게 사냐? 저기서... 좀 그렇다 ㅠ;;
밤되면 꽤나 많은 분들이 모이실 듯하다.
#11 故 숭례문
천천히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예전에도 많았던 곳이지만...
아까부터 생각하던 나와 같은 동기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여서 그런걸까?...
그렇게 많은 빌딩들을 지나
표지판을 따라 잘 가고 있는데...
멀리서 염불외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기구나/' 라는 생각에 그 곳을 바라봤을때...
사람들만 있었지... 숭례문의 흔적은 없었다.
뭔가 해서 자세히 바라다보니...
숭례문은 이미 하얀 철제벽에 가려져...
해체당하고 있었다.
↑ 해체 당하는 숭례문. 정말 안구에 습기가 찬다.
숭례문인걸 알게되니까... 갑자기 알수없는 답답함이 내게 서렸다.
뭐랄까? 아까 서울역에서 느낀 아쉬움?이랄까?...
죽어버린 고인을 바라보는 느낌? 이랄까...
그렇게 염불소리를 따라 더 들어가보니...
하얀 벽보에 쓰여진 국민들의 원통하고도 아쉬운
한마디 한마디가 적혀있었다.
↑ 크기가 너무커서 잘 안보이겠지만... 지못미 숭례문 정말 많이 적혀있다. 그리고 누군가 쓴 시도 보이고... 기도문도 보이고, 꼬마가 쓴듯한 미안하다는 말도 있었다. 그만큼 많은 연령층과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것일까?...
그 글귀 한구절 한구절이 너무나도 와닿기만 했고...
한수 쓰고 싶었지만... 쓸자리도... 쓸 펜조차도 없음에 아쉬웠다.
그래도 정말 이 곳에선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지긋한 할아버지의 원통한 표정...
한 때는 고기를 구워먹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숭례문을 바라보는 노숙자의 모습...
아무것도 모르는듯 바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v를 치켜새우며 사진찍는 연인들...
나처럼 사진찍으면서 멍하니 바라보는 이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모습들이 하나의 융합을 이루며
형용할수 없는 감정을 유발 시켰다.
귀에는 계속 숭례문의 역사를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호된 소리가 들려오고...
그 어둑하고도 몸에 달라붙을듯 한...
찝찝한 기분이 고인을 섬기는 모든이들에게도 들었으리라...
아쉬움이 아닌 분노로...
분노가 아닌 아쉬움으로 모두가 하나되어 소리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몇몇 또라이 철없는 연인들이 욕을 처먹긴했지만...)
그날의 하늘은 모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처럼 노을지고 있었고...
나는 시간이 늦었음을 깨닫곤...
발걸음을 옮기고자 했다.
↑ 위로의 꽃들... 직접가서 보면 더더욱이 슬퍼지게 한다.
↑ 위대한 역사가 서린... 조선왕조의 시작이던 서울의 火 기운을 막아내던 숭례문... 그 아쉬운 뒷모습이 서글픔을 뛰어넘어 분노의 기운까지 서렸다. 500년을 버텨온... 그 웅장함을 평소에 지나치며 바라본 것이 너무나도 미안할 따름이었다.
↑조계종에서 찾아와서 한 방송... 저기서 염불외고 타령하고... 숭례문의 넋을 달래주고 있었다. 모두가 아쉬움의 표정으로 지켜보았고... 나 역시도 같은 슬픔에 젖어있었다.
↑ 어릴적부터 보았던 숭례문의 뒷모습이 아쉬운 노인과...
주인없는 이름표...
↑ 보다 가까이서 보고싶은 숭례문의 마지막... 비록 복원한다 하지만...
그 때의 역사성을 다시 재부여할 수 있을까?...
#12 사람 많은 남대문시장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애국심을 불사르고선...
다시 내 자리를 찾아 돌아가야함에
사라졌던 조급함이 떠오른다.
'서울역으로 해서 돌아갈까?' 했는데...
그래도 모처럼의 여행인데
좀 더 돌아보면서 가고싶어서
무작정 남대문 시장 쪽으로 걸었다.
↑ 남대문 시장으로 건너는 횡단보도... 무지 많은 사람들... 특히 저 가운데 연인들... 한대 쥐박아주고 싶을 정도로 다정했다. ㅋㅋㅋ
아마도 서울시의 어머니들은 다 여기에 있을까?...
아주머니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셨다.
길가엔 야채부터 시작해서 환전까지 하는 여럿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고... 외국인들도 많았다.
특히 속어로 짭이라고 불리는 짭퉁 가방 가게의 모습은... 10년, 20년 전에도 가짜를 만들어 팔던 우리나라의 모습 그대로인거 같아서 외국인들이 많은 이 곳에선 조금 부끄러웠다.
한걸음 한걸음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인파는
초등학교 때 '신홍길동전'을 문화예술회관에서 볼때 외에는 없었는데...
갑갑한걸 무지하게 싫어하는 나로선
괜히 온듯한 마음에 짜증났다.
옆은 도로에 꽉막힌 차들...
앞에는 인도에 꽉막힌 사람들...
이라고 할까?...
↑ 인간적으로 짜증났다. 길 양쪽에는 상점때매 더더욱 길을 좁게 했다. 그래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가장 사람 냄새가 나는 장소라고 생각된다.
#13 남대문 시장 옆 명동.
그렇게 인간냄새에 질식할지도 모르는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 보니...
또다시 백화점들의 향연이었다.
방금 전까진 길거리에 노점상들이 즐비하고, 아줌마의 에누리가 들려오던 남대문 시장에서 멀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고급 외제 자동차들이 주차장을 들락날락대고, 하나같이 비싸보이는 옷들...
표지판을 바라보니 명동이란다.
내가 아는 명동과는 좀 다른 곳이었지만...
어딘지도 잘 모르면서...
화장실이 급해, 지하쇼핑몰로 뛰어들어갔다.
↑ 아직도 나는 이 곳이 명동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남대문 시장이랑 정말 가까운 곳에 극과 극이 펼쳐짐에
아이러니해 했다.
이 곳도 사람냄새가 많이 났다.
특히... 젊은 향수랄까... 그런 맛이 났다.
한겨울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다니는 젊음이랄까?...
나름 취했었다. ㅋㅋㅋ
그러다가 화장실 55m라고 써있는 표지판에
내 상황을 알게되었고...
나의 극한을 체험하기 싫었기에
미친듯이 달려갔다.
화장실에 도착했을때는 가관이었다.
길게 늘어진 줄...
'나는 죽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자화장실 줄이었다.
롯데월드에서 자이로드롭 줄길이쯤 된거 같다.
음... 나는 그쪽 사정 잘 모르니까...ㅋㅋㅋ
바로 남자화장실을 들어갔는데,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눈빛이 좀 부러워하는 듯 했다.
(이건 나만의 착각일테지만...)
남자화장실은 한산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웃기다.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뭐하는데 그렇게 길까? ㅋㅋㅋ
남자들은 줄서서 화장실 기다리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말이다.
↑ 승리의 한컷. 나도 모르게 이긴 기분에 한컷 찍었다.
장소는 명동 지하상가 남자화장실.ㅋㅋㅋ
#14 돌아가야지...
한 마리 짐승 같이 뛰어다니던 내게
이성이라는 것이 찾아오는 과정을 거치자...
다시금 무언가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성을 찾기전에 바라본 한국은행이 떠올라서,
다시금 짐승이 뛰어다니던 거리를 거쳐 돌아갔다.
↑ 한국 은행. 생긴게 마치 구서울역 같아 이유 없이 아쉬웠는데, 아직도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마냥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한국은행은 마치 구 서울역 처럼 생겼다.
알고보니 일본에서 만든거라 한다.
서울역과 한국은행이 1900년대 초의 일본 건축디자인과 건축술에 대해 가늠하게 해준다고 옛날에 들었는데... 정말로 너무나도 닮았다.
유럽 한가운데에 있을 총독관저 같이 생겼다.
그 앞에는 분수대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조형물은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디자인을 유도했다.
유럽풍 스타일이랄까?
↑ 청동으로 이루어진 동상. 유럽에서나 볼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일본이 막 개방하면서 유럽을 밴치마킹 하면서 그들의 문화까지 흡수하고자 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1900년대 초에 있던 우리나라 선비들은 이런 건축물 동상을 보면서 뭐라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났다.
당시 조각이라 해봤자 돌부처들만 보던 조상들은 일본이 만든 그 건축물이 흉물이라 했을까? 아니면 멋지다 하며 박수를 보냈을까?
혼자서 문화적 충돌에 대한 조상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다시금 명동 지하상가에 붙어있는 명동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5 서울은...
멍하니 도착한 명동역은...
아...
이젠 말하기도 싫다.
같은 멘트...
처음에 어디가 조용하고 어디가 분주하고를
따지던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서울은 다 시끄럽고 바쁘다."
정말 더럽게 사람많고 시끄럽고 바쁘다.
천안역에서 느낀 여유로움이 없다.
모두가 빠른것만을 원하고,
그 리듬이 틀린게 아닌거 마냥 휩쓸려 들어간다.
누가 뛰면 나도 뛰고
누가 떠드면 나도 떠드는...
형용할수 없는 빠른 리듬을 따라
모두가 발걸음을 이동한다.
모두가 다른 곳을 가면서 밀폐된 지하에서
같은 리듬을 타며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케리비안 해적에서의 소용돌이 전투씬을 방불케한다.
명동 역시도 서울이었다.
미친듯이 흔드는 로큰롤 부터 시작해서,
시끄러운 하드코어와 함께
빠르게 나불대는 랩까지...
내가 느낀 여행의 분주함의 끝이었던거 같다.
↑ 빠른리듬이라고 표현한게 역시 폰카라서 안되는가보다.
나름 흔들림의 느낌이 혼란케 하는듯 하다. 내가 사진을 찍을라 카면
모든 사람들이 더 빨라지는거 같다. 수많은 인파들은 이미 나보다 먼저 사라졌었다.
그 바쁜 흐름에 대한 나만의 생각에 빠져 툴툴대고
명동 역전에 도착했을 무렵...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툴툴대던 무리에서 멀어지지 않기위해
더더욱 모순적인 걸음으로
나의 그리운 지하철 풍경을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 명동 역전에 도착해서 바로 찍어버렸다.
아무 생각없이 찍은건데... 이 사진을 주목했으면 좋겠다.
정말 중요한 것이다. 나도 뒤늦게 보지만 화가 난다.
#16 망충대다.
아음...
하품이 나온다.
정신 못차리게 뛰고 그래서 그런지...
빈자리를 찾는 눈빛이 매섭기만 하다.
다음 역인 충무로에 도착했을때.
자리가 하나 생겼다.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그 곳을 향해 몸을 던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성취감에 젖어
주위를 돌아보고,
나에겐 애초에 경쟁자가 없었음을 알면서
고개를 숙여 쪽팔려했다.
그러다 몇 푼 안되는 단잠에
몸을 녹이다가,
"이번 정거장은 길음 입니다. "
이라는 짱구어멈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고...
길음이 어딘가?! 하며...
정신이 번쩍들었다.
평소에 학원다니면서 서울역 이후로는 안타본 4호선이라...
나는 길음이 서울역과 명동 사이에 있는데 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당고개에 다다르고 있었다.
서울에 자주다니는 친구한테 연락을 하니...
거기는 반대라고 한다.
아닐거란 생각에...
아까 찍은 핸드폰 사진을 보고 경악한다.
충무로는 진짜 반대쪽이었던 거였다.
아오...
다음 역은 미아 삼거리...
그곳에서 따뜻한 내 지하철 자리와
아쉬운 이별을 했다.
씨벵...
↑ 완전 빡쳐서 어이가 없었던 미아 삼거리...
덕분에 4호선을 많이 알게되었다. 라는 긍정적 핑계로 나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내리고 보니... 미아 삼거린 반대 쪽으로 건너가려면...
나갔다가 반대쪽문으로 넘어가야했다.
아쉬운 900원을 날리고...
혼자 망충댔다는 사실에 쪽팔려했다.
그렇게 1분도 안 기다렸는데
열차는 내 화를 식히기라도 한다는듯 빨리 도착했다.
다시 집으로 출발이었다.
#17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선...음
그래도 미아 삼거리가 당고개 근처라 그런지
자리가 많았다.
지친이들의 최고의 자리인
기둥옆자리를 택하고
기둥을 배게삼아 눈을 감았다.
명동을 지나... 서울역을 지나...
숙대 입구역에서 눈을 떴다.
아마도... 숙대라는 곳에 아는 친구들이 떠올라서일까?
물론 지금 그 녀석들은 알바하느라 바쁠테지만 ㅋㅋㅋ
어찌됫든 눈을 떠버리니 다시 감기지가 않았다.
나는 또 이스탄불 여행을 생각해내고...
터키로 빠져들었다.
멍하니 문화공존에 대한 이나미씨의 생각과
세밀화들을 관찰하던 도중이었다.
이촌에서 어느 자매가 들어왔다.
뭐 그렇게 이쁘진 않았는데
그래도 내 눈에 쏙 들어오는 자리로 들어와서
그리고 언니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일본 전통 화장을 하고 온듯이
새하얀 얼굴을 가져서... 눈에 확 들어왔다.
3/4도 안남은 책을 보며...
오늘 산 책인데 아껴 읽어야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자매를 지켜봤다.
그러다가 내 옆자리에 자리가 났고...
동생이 내 옆에 앉았다.
언니는 그 동생 앞에 서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나름 미인이었다.
(이놈의 ...근성이...끄알아아앍...)
수줍게 몇번 쳐다보고 그러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아 욱겨 ㅋ)
그냥 이뻐서 보기 좋았다.
그러다가 동생이
"언니 많이 피곤하지? 여기 앉아, 내가 서서갈께."
이러는 것이었다.
헉... 두가지 생각이 났는데
하나는 고도의 자리뺏기라는 생각과...
아니면 동생이 착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교본대로 "괜찮다"라고 대사를 읽었다.ㅋ
나는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음... 아... 음...
만화처럼 천사가 생각했다.
"자리를 비켜줘 찬희야, 어차피 너무 오래앉아서 엉덩이도 뜨겁고 그렇잖아 서서가면 어때?"
그러자 악마시키가
"너 힘들잖아 푹 쉬어야지."
뭔가 바뀐거 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나는 상록수까지 40분을 남긴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쳤다 ㅋㅋㅋ
아무말도 없이 그냥 일어났다.
말할 용기도 없었다.
뭐 좋아하는 애 앞에서도
고백 못하는 바보인데 오죽하겠나...ㅋㅋ
그랬더니 동생이 웃으면서 나를 본다.
언니라는 사람은 정말 피곤했는지... 털썩 주저 앉았고...
나는 어쩔수 없이 문쪽에 서서 책이나 읽었다.
↑ 동작가는 길 다리위에서, 이때 막 일어나 뻘줌함에 사진찍는 척이라도 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동생의 웃음을 봤다. 이잉...
다시금 책에 몰두했다.
가끔씩 처다보던 그 언니란 사람도 이젠 푹 잔다.
잘되었다 싶어, 계속 책에 빠져들려고 했다.
(속은 그렇지 않았다 연락처를 바라는 마음?!ㅋㅋㅋ)
그렇게 책에 빠지다보니...
어느새 차는 금정이었다.
그 자매는 아주 푹... 보통 푹이 아니고
긴 생머리가 바닥에 닿아도 모를 정도로 자고있었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나보다...
언니가 깨었다.
(나 스토커 아니다. 엠피가 없어서 저절로 들린거야...ㅋㅋㅋ)
그냥 계속 책을 읽었다.
아니 그땐 책 읽는 척이었을꺼다.
글귀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통화를 마친 언니님이 일어나셨다.
아마, 자매 앞에 7~9살 남매가 힘들다고 툴툴댔음에 그랬으리라...
그 남매를 앉히며 언니님은 그냥 일어나 서서갔다.
나는 은근히 그 남매가 거슬렸다.
그렇게 나는 책읽는 척을 하며
그 언니를 흘금 보다가, 그냥 생각의 정리를 한다는 핑계로...
밖을 보면서 멍하니 있는데...
그 자매가 내 쪽으로 왔다.
'헉... 이럴리가... '하는데...
알고보니... 다음에 내릴라고 문쪽으로 온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나는 밖을 계속 봤다.
방송이 나오고...
그녀들은 나갈 준비를 했다.
열차가 멈출때였다.
그 언니가 나한테 말했다.
"아까 고마웠어요^^ "
그리곤 그냥 가더라.
응?... 어... 음...
그럼 연락처라도... 아오!!
... 순간 얼굴이 초 빨게졌다.
ㅋㅋㅋㅋㅋㅋㅋ 아 욱겨 ㅋㅋㅋㅋ
생각도 하기 싫다 그때일...
아니... 부끄러워서 이런 말 쓴거다.
나름 좋아 죽었다.
아니 나름은 개뿔
나는 엄청 좋아 죽었다.
어쩔수 없는거다. 나란 놈은...
수줍음을 타던 나한테 뭔가를 바랬던건가...
어찌되었든 용기없는 숲속의 순진한 원숭이 한마리는 멍하니 있다가 그 자매를 놓치고 지하철 흐름을 따라 그대로 갈길을 갔다.
대야미의 그녀라고 불러야되나?
다음엔 대야미나 여행갈까? ㅋㅋㅋ
#18 순수함 그 깨끗한 아름다움.
그렇게 몇분간 그 언니의 생각에
피식대다가...
문득 그 언니를 쫓아낸(?) 남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리다보니 무지 시끄러웠다.
책을 이제 20페이지도 안남기고 있었고...
아낄겸... 그 남매 앞으로 갔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고있었다.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시는 분이 계셨는데
나 옛날에 신문배달 할때
동아일보 배달하시는 아주머닐 닮으셨다.
아마도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하는 공연을 보고 오시는 길 같았다.
아이들에게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까 보고온 공연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 사진을 지울줄 모르셔서 하나 둘씩 눌러 보시는 자매의 어머니와 남들 상관없이 순수하게 노는 자매.
아주머니꼐선 아이들한테 사진 지우는 법을 결국 물어보셨다.
누나인듯한 아이가 어머니께
"이거 이거, 엄마 이거 누르면 되..."
하더니만... 사진이 여러장 지워졌나보다...
"야~ 다 지워졌잖아~"
(이때 진짜 웃겼다. 어머니 말투가 귀여우셔서 ㅋ)
"아 엄마는 그거두 몰라? 이렇게 하는거야! 봐봐"
하더니... 잘 지웠나보다.
"아~ 이렇게 하는거구나..." 하며 어머니는 딸에게 감탄한다.
하하하
우리어머니께선 나한테 물어보시곤내가 해결하면 감탄은 커녕 겸손치 않다고 화내시는데
아이들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칭찬과 함께 재밌는 멘트를 날리시다니...
새삼 우리 어머니의 딱딱함에 대한 아쉬운맘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아쉬움도 사그라들었다.
계속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무서운 표정을 지었는데.
동생인듯한 남자애가 나를 보더니 누나를 푹 찌른다.
"누나 저 형이 나 쳐다봐."
라고 들으라는건지 속삭이는건지...
"니가 시끄러워서 그렇잖아!! "
라며 속삭임에 대한 답을 큰 소리로 한다.
"아! 왜 크게 말해!!"
하며 누나에게 푸슉~ 이라고 외치며 장난을 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웃었다.
#19 아이들의 순수함. // 나의 생각. (수필에서 벗어남.)
그 웃음은 내가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동경이 서려있는 웃음이었다.
적어도 10년 전에 내 모습도 저랬으리라...
벌거벗은 태초의 원숭이들처럼...
마음것 뛰놀고, 세상 모르고 떠들던 그 순수함.
그 순수함을 가지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그때의 비현실적이던 나의 꿈을 다시금 그리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
"그건 안되" 라고 말할때마다 하나씩 잃어가던 순수함과 이상...
시간이 갈수록 할수 없는게 많아지고...
나는 우리에 갇힌채 모두가 할수있는 것만 하게되었다.
누구나가 그렇듯 자신의 꿈은 그렇게 접혀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불현듯 나의 어릴적 꿈이 떠오른다.
어릴적 나의 꿈은 '경찰관'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데...
그 때는 경찰놀이가 유행했을 때다.
나는 경찰 놀이에서 경찰로 도둑을 잘 잡았다.
그러한 이유가 나의 꿈을 경찰로 만들어주었다.
하하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다.
꿈이란거의 기준이 돈도... 명예도 아닌
어린나이에 경찰놀이에서 도둑을 잘 잡아서라니...
하지만 그런거 같다.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처럼...
누구나가 가진 꿈이란건...
목적과는 사뭇 다르다는걸...
목적은 조건과 가능성을 바라본다면...
꿈이란 어떠한것도 없는 이상을 뜻하는게 아닐까?
아마도 아마...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린 나이에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꿈을 심어주고, 너는 나보다 잘나야되 라는 부모근성이 아이에게 꿈과 목적의 구분을 못하게 함으로써... 그 천진난만한 순수함을 없앴음에 틀림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