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남미여행 (07.12.17 ~ 08.01.10)
1/7 : 피스코에서 당한 일격
[10:30am]
어제 보드타고 난 이후 너무 피곤했나 보다. 거하게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입신(ㅡㅡ^). 밤 사이 우리를 급습한 모기떼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보니 온 몸이 울긋불긋. 쓰라린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가 아침 느즈막히 일어났다. 숙소 정원으로 나오자
맑은 햇살이 비춘다.
예전에 읽었던 한비야의 '바람의 딸' 시리즈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남아있는데...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ㅜㅜ 그 때 분명히 남미 파트도 있었을테고
그렇다면 이번에 내가 갔던 곳들 이야기도 적혔있었을 것이다.
당시 내용과 비교하며 여행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미리 생각했으면 빌려서라도 가져올 것을. 나중에 한국 들어가면
찾아봐야겠다.
[11:30pm]
피스코에서 '불의의 일격'의 당하고 바로 리마로 이동했다. 근 1달
만에 돌아온 리마. 그 사이 내가 페루 사람이 다 된 걸까. 처음 도착
했을 때 실망스럽던 리마가 지금은 대도시같이 보인다.ㅋ
와카치나에서 점심을 먹고 피스코로 갔었다. 애초 계획은 피스코에
서 하루를 머무는 것. 그러나 도착하는 순간부터 뭔가 안 좋은 느낌
이 온 몸을 감쌌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주변 모습들.
건물은 성한 것보다 무너진 것, 부서진 것들이 많았고 일부 블록은
아예 공사판처럼 변해있었다. 아르마스 광장도 울퉁불퉁, 거리엔
트럭들이 잔뜩 오갈 뿐이었다. 피스코에서 섬 투어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래가지고 투어는 커녕 숙소나 잡을 수 있을까 걱정됐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을 바로 그 때.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는데
갑자기 오른발이 땅으로 푹 꺼지며 균형을 잃었다. 다행히 넘어지거
나 발목을 접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콘크리트에 긁혀 종아리 쪽에
타박상을 입어 피가 났다. 인도 중간에 구멍이 뚫려 공간이 파여
있던 것을 못 본 것이다. 그나마 종이 쓰레기들이 쌓여있었기에 망
정이지 그거라도 없었으면 봉변당할 뻔한 순간이었다. 씁쓸한 기분
으로 숙소를 찾아가니 문은 잠겨 있었다. 내 뒤로는 내가 넘어지려
던 모습을 본 두 꼬마애가 계속 따라오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 옆
건물에 있어야 하는 숙소는 아예 무너지고 없었다. 도대체 여기에서
무얼 할 수 있는걸까.
투어는 커녕 숙소도 잡지 못한채 마냥 거리를 걸었다. 급한대로
아르마스 광장에서 다친 부위를 응급치료할 찰라, 외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알고보니 이 사람도 피스코에 온 뒤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
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서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됐다. 얼마 전 피스코
에 강진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 건물이 무너지고 엉망이 된 이유
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어느 정도 지진이었기에 동네가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아니면 건물 자체가 약해서였을까. 일단 계획을 바꿔
바로 리마에 가기로 한 뒤 피스코를 떠났다. 머문 시간은 몇 시간
안됐지만 불의의 일격 여파로 오른 다리가 계속 불편했다.
10시가 다 돼 리마 도착, 숙소에 짐을 풀었다. 늦은 저녁을 먹는데
TV에선 페루와 베네주엘라의 여자배구 경기가 중계 중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티켓이 걸린 중요한 경기. 배구 인기가 생각보다
좋은지 주변 상점들도 온통 배구만 틀어놓고 있었다. 마침 경기는
대접전, 페루가 밀리는 듯 했지만 홈 팬들의 성원으로 4세트를 잡고
마지막 5세트로 넘어갔다. 1점을 딸 때마다 울리는 환호성, 점수를
잃을 때마다 들리는 탄식 소리가 리마를 매우 생동감 있게 해 준다.
이제 더 이상 이동할 일은 없겠지. 이틀 정도 푹 쉬고 텍사스로
돌아가면 되겠다. 한 것도 없는데 계속 쉬네. ㅋ 내일은 리마의
다운타운을 돌아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