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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지역에 인간에 의해 존재했던 인간의 철학에 불과합니다.(2)

차윤진 |2008.03.10 12:30
조회 77 |추천 3

 

 

불교에서는 무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자아와 현상의 확고부동함에 집착하는 것이라하며 자아에 대한 집착은 현실이지만 그 집착의 대상인 자아는 현실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모든 개체적자아는 비본질적이고 우유적인 부분에 있어 변화할 수 있으나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것과 구별될 만큼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절대자와의 인격적 관계맺음이 가능할 정도까지는 늘  존재의 고유성과 지속성과 실재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실재성을 부인하면 자아의 연장으로서 발생하는 자아의 윤리적 책임역시 물을 수 없게됩니다. 불교사상이  '악'의 문제에 대해 결국 '환상설'로 기울게 되는 것은 무아설의 자연스런 논리적 귀결입니다.

 

석가모니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통해 집착에 의한 고의 발생을 가르쳤지만 사회구조 자체에서오는 계급적 착취의 계속성 즉 사회환경의 결함에서 오는 고통의 존재에 대해서는 외면했습니다.  저 아프리카에 사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의 고통이 그리고 저 시골에 사는 순박한 농부의 고통이 집착과 탐욕에서 비롯되고 있는 거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석가모니는 12연기설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이 죽는 원인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을 단순히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상적으로 볼때 죽음의 원인은 노쇠와 질병 그리고 사고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쇠와 질병 그리고 사고의 원인은 신진대사와 바이러스와 신체적기능의 이상발생 그리고 인적물적외부환경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존재의 궁극적원인을 '무명' 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지적인 한계를 드러낸 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인을 모른다는 말과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무명' 에서 행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러한 설명은 행의 직접적인 작용.존재.형상인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말해주지못합니다.

 

석가모니는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며 우주만물을 창조한 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런 말을 했다면 불교는 스스로 무너졌을 것 입니다. 불교는 힌두교의 신개념과 우주관을 차용하고 석가모니 이전에 존재하던 사상들을 비판적을 흡수하고 개조수용하여 중관적 입장으로 종합하여 나타낸 사상입니다.

 

석가모니는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영혼이 단순소멸된다고 말하면 자신의 가르침인 '행업의 차이에 의한  윤회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고 영혼이 타력에 의해 계속된다고 말하면 누구나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할 수 있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부정하게 되기때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인도사상의 성숙기에 나타난 그 시대의 인간적,지역적, 시대적 한계안에 놓여있는 한 인간의 사상이고 철학일 뿐입니다. 석가모니는 우리에게 고통의 문제에 달관하는 방법을 전하여주었습니다. 집착을 버리고 잘못된 말과 행동이 일으키는 업연을 막고 만물을 평등심으로 대하고 자비희사의 삶을 살며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나아가는 삶을 살므로 그렇게 될 수있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석가모니가 그 시대 그 지역의 그 어느 다른 사상가보다 지혜로웠고 인간미를 지녔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구원의 길인 예수그리스도께서 강생과 구속사건과 부활을 통해 나타나신 지금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인간이 구원을 얻기위해 궁극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오체투지할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못하던 시대의 잘못은 하나님이 용서하실지라도 성경의 계시와 유대교의 역사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지금 교만과 무지와 악함 속에서 하나님을 부인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죄는 참으로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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