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에서 지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나는 '소인'이 아니라
'나'로 살았으며 행복했습니다.
나를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깨뜨리고
나를 느끼는 일은 설레지만
두렵고 심장이 뜨거워질 만큼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나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보살피며 사는
박애가 무엇인지, 나의 자유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떠나면서 내 머리를 빗기고 싶어했던 것을
거절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미련을 가질까봐 그랬지만
그 정도의 미련도 없다면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왜 그 때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나도 모르게 당신은 프랑스인이고 나는 조선이라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남자와 여자였을 뿐인데 ..
이제 나 리진을 내려놓고 자유로우세요.
그래야 나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당신의 후두염이 염려되겠지요.
당신은 나를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내 머리를 빗기고 싶겠지요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여깁니다.
강연이 반촌의 벽장에 쌓아 놓았단 마지막 서찰엔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에 견주려 하나
그래 볼수록 이 세상이 좁아 마땅히 견줄 수 있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씌어 있었다.
- 리진, 신경숙
너무너무 잔잔하고 가슴이 슬펐던 소설.
다 읽고 나서 혼자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역사와 사랑 두가지 내용이 자연스레 조화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