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미국에 살 때 일이다(14살 때). 우리 반에는 유독 외국인 학생이 많았다. 공립학교이지만 평판이 괜찮은 학교이고, 부모가 길 건너에 있는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 살 위였던 친구 중에 티벳에서 온 텐진(Tenjin)이란 친구가 있었다. 영어가 서툴렀지만 항상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는, 말은 없어도 존재감은 있는 그런 친구였다.
텐진의 얼굴에 웃음기가 없는 날은 오히려 보기 힘들었지만, 단 하루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는 것을 본 일이 있다.
7학년 인문학(Humanities)수업은 동아시아의 역사, 사상, 지리, 사회에 대한 공부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나는 나름대로 우리나라 역사를 설명할 기회도 주어지는데다(청나라때 한반도가 청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어서 나는 수업 중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료의 정정을 요청했다.), 중국에 관해서도 미국학생들보다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성적 따기도 손쉬운 과목이었다.
중국 근대사에 대해 공부할 때였다. 일본의 패망과 중국공산당정권의 수립을 공부하면서 공산당군의 소수민족 거주지 점령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는데, 수업자료는 그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텐진은 시청각 자료가 끝났을 때 발언권을 요청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텐진은 서투르지만, 진정어린 목소리로 자신이 아는 모든 어휘를 쥐어짜듯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앉은 여러분은 티벳에 대해 어떤 이야길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티벳이란 단어를 들으면 승려들이 붉은색 옷 걸치고 다니는 풍경이나 산 속에 박힌 사원 따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시간 끝나고 나면 저는 많은 질문을 받을겁니다. 어떻게 아느냐구요? 이미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죠. 아마도 그 질문은 '티벳은 중국의 일부인가(Is Tibet part of China)?' 하는 것일겁니다. 저는 같은 질문을 수없이 들어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대답은 항상 단호합니다. 대답은 NO입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실제로 NO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티벳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라서? 아닙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어이없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친구는 제게 중국어를 할 줄 모르냐고 물어보던데요(사실 이건 내 이야기였다. 나는 그에게 일전에 티벳도 중국어를 쓰지는 않더라도 한자를 쓰기는 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물어본 적이 있다.), 그것도 대답은 NO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대답이 뻔한 질문인데, 왜 저는 이렇게나 대답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잘 모르는 이야기가 제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는 많이 있습니다. 슬픈 이야기들이에요. 왜 우리는 사원에다 화려한 우리 깃발을 쓰지 못하고 붉은 공산당 기를 걸어야 할까요? 왜 달라이 라마는 라싸에 계시지 못하고 이웃나라에 가 계시는 걸까요? 왜 우리는 올림픽에 티벳대표팀을 보낼 수 없는걸까요? 저는 중국인들... 제가 "중국인"이라고 하면 저기 지도에 표시된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겁니다. 그 중국인들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저는 싸우기 싫어요. 하지만, 누군가 저를 "중국애(Chinese boy)"이라고 부른다면 저는 먼저 친절하게 그에게 호칭이 틀렸음을 알릴 것이고, 그래도 그렇게 부른다면 망설임 없이 싸울겁니다. 제겐 그럴 이유가 충분합니다. 저는 중국인이 아니니까요."
친구들은 다들 조용히 듣고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는 지나친 평화주의자였나보다. 남들이 나를 chinese boy라고 불러도 나는 그것이 나의 호칭임을 받아들였다.(동양인이면 chinese 아니면 japanese라고 생각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데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선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티벳은 반세기만에 다시 화염에 휩싸였다. 아마도 진압은 곧 끝날 것이다. 티벳에 대한 오늘의 기사를 읽을때 마다 그때 텐진의 조용하게 잠긴 목소리가 기억나곤 한다. 그도 저 속에, 화염 속에 있을까? 혹시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을까? 티벳 국기를 몸에 두르고 전진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여러 장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의 조용했던 모습도 그 속에 겹쳐 보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텐진의 온화했던 웃음이 생각난다.
10여년 전 나의 침묵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