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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맛1-천국의 주인(막 2:18-22)

김영민 |2008.03.19 11:00
조회 111 |추천 1
 

                                            천국의 주인

                                                         막 2:18-22

우리는 하비스트교회의 천국의 맛이라는 간증과 체험, 은총의 물붇는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2008년도 한해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서의 천국의 맛을 볼 수 있는 복받는 인생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사업터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천국의 진정한 맛을 보아야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몇주에 걸쳐 계속적으로 천국에 대한 성경에서의 비유의 말씀을 중심으로 천국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그 맛이 나타나는 지를 함께 나누어보기를 원합니다.


1. 천국은 예수님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들을 말씀하게 된 동기가 18절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비난조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안합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금식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의 표현, 그래서 하나님께 의지함을 표현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하는 의미로 금식을 했습니다. 완전한 의를 얻으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은 아예 일주일에 이틀은 금식을 해야 하는 것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구약성경에 이틀 금식해야함을 명확히 법으로 정한 것은 없지만 바리새인들은 구약성경을 해석해서 일주일에 이틀은 꼬박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금식을 해야 된다고 법으로 정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이상을 성취하려고 하나의 경건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성전에서 제사들 드리는 제사장들이 아닌 평신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레위기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을 위해서 주어진 여러 청결의 법을 지켰습니다. 손을 씻어야 되고 목욕을 해야 되고 죄를 지었으면 어떻게 제사를 해야되는 청결의 법들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자기들도 꼭 레위기법에 제정된 제사장들이 청결하고 의롭게 몸가짐을 할려고 했습니다. 자기들만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전체가 모두 이 청결법을 지켜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제사장들의 왕국의 이상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별원칙과 청결의식, 의를 강조하여 금식을 철저히 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의 금식을 철저히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해 회개하고 거룩성과 순결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부흥운동을 하였습니다. 그 회개의 표는 목욕이며,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씻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세례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막에서 낙타의 가죽 옷을 입고 자연식을 하면서 금욕적인 운동을 가르치고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세례운동, 회개운동, 부흥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식이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에 대한 겸손한 의지함의 표현이며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의 표현입니다. 요한의  회개운동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많은 사람들도 그에 동참하여 바리새인들 못지않게 철저하게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금식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가르치면서 회개운동을 통하여 천국이 가까웠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운동에 동참했던 이들은 모두 금식을 통해 철저하게 회개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쿰란의 공동체도 금식을 통한 회개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마 11:18-19에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금욕주의적인 금식을 많이 강조하는 회개운동을 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이렇게 즐거운 잔치를 많이 베푸니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여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금욕주의적인 금식을 가르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천국복음의 핵심은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경건한 유대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너무도 저주하고 멀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오히려 먹고 마셨더라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의 운동의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그것은 탐식가이고 먹기를 탐하는 자이고 포도주를 즐기고 죄인들과 세리들의 친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오히려 즐겁게 먹고 마시며 천국의 맛을 보여주시었습니다. 세상은 금욕을 떠들고, 세상은 회개를 떠들 때 예수님은 아랑곳 않고 먹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을 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이르리니 그 날은 금식할 것이니라. 이 혼인잔치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고 하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이 천국의 주인임으로 자신이 있는 동안에는 함께 잔치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한국은 결혼식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손님들과 더불어 식사가 있습니다. 피로연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유대관습은 결혼식과 피로연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피로연이 결혼식의 전부였습니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에 당도하면 거기에 모여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함께 잔치를 열고 함께 먹고 마시며 피로연을 여는 것이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의 중심은 식사였습니다. 함께 즐겁게 먹고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에서는 굉장히 시끌벅적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상당히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어느 집에서 결혼식이 열리면 오래동안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잔치가 시작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신나게 먹고 즐기며, 마시며 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혼식이라고 받은 날이 바리새인들이 정한 금식의 날과 겹치면 할 수 없이 그날은 금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금식을 강조했던 바리새인도 아예 예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금식의 날이 결혼식 날하고 겹치면 금식을 하지 말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관행과 법에 대해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혼인집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지금 왔는데 어떻게 금식을 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쿰란의 에센파, 세례요한까지도 종말에 있을 메시야가 올 바로 그때 시온에서 하나님의 큰 잔치가 벌어질 것을 고대했습니다. 그 잔치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며 금식운동을 펼쳤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그 고대하던 잔치가 바로 오늘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 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당도했다. 시온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그 때의 구원이 큰 잔치이다.’ 구약에서부터 그려지고약속된 그 구원이 이루어질 때가 바로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대하고 준비했던 시대는 이미 끝나고 오늘이 바로 그 고대했던 잔치날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주장인지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의 청중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때까지는 유대인들이 항상 종말에 있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해서 금식하고 경건하게 준비해야 된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 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도 있고 쿰란공동체도 있고 요한의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엊그제까지 요한의 공동체에 동참했던 예수님께서 드디어 바로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임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부터 예고된 시온에서의 그 잔치의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바로 이 잔치의 주인공이며 신랑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잔치의 신랑으로 비유를 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을 펴셨습니다. 막 2:10에 ‘인자가 땅위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5절에 ‘소자야 네 죄사한을 받았느니라.’

누구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죄 용서를 선포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시며, 성령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종말에 구원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삭개오에게 오늘 이 집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죄와 죽음의 세력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즐기며,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0절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은 금식을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의 시점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신랑 자신이 유대인들의 손에 붙잡혀서 로마인의 손에 넘겨져서 십자가에 죽음을 당할 그 시간이 있는데 그 기간에는 물론 잔치를 베풀 수 있는 기간이 아니고 금식을 하는 기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외에는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고, 지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통치를 선포하시며, 지금 그 구원의 통치의 힘과 구원의 힘을 구체적으로 병자를 치유하고 있으며,삭개오 같은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죄인들을 온전케 회복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금식할 것이 아니라 잔치를 베풀어야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지금이 천국의 맛을 볼 때입니다.

예수님의 이 놀라운 선언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천국의 최정상에서 기뻐하며 잔치하는 기쁨의 인생이 되어야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다시 만유의 주로 높임을 받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선포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금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금식은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작정기도를 할 때는 금식이 필요하겠지만 잔치가 시작되었는데 잔치를 즐기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한데 따로 금식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은 잔치할 때이며, 지금은 천국의 맛을 보는 것이며, 시온의 영광스러운 잔치의 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한 기본요소가 기쁨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즐김, 구원에 대한 기쁨,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가장 기본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고난 가운데서도 주 안에서 기뻐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로 기쁨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심지어 비기독교인보다 더 안절 부절하고 불안하고 답답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이 위대한 구원의 시작의 시대 앞에서 바리새인처럼 아직도 외식을 하면서 잘못된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구원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요한으로 종결이 되는 유대교는 헌 옷이고 헌 시대여서 유대교에서의 행동의 관행을 예수님의 성취의 시대의 사람들에게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는 유리병보다는 가죽부대에 포도주를 넣어서 발효를 시켰습니다. 새 가죽부대는 신축성이 있어서 포도주를 넣으면 포도주가 발효를 하면서 팽창합니다. 새 가죽부대는 신축성이 있으니까 함께 팽창해서 괜찮은데 낡은 가죽부대는 신축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새 포도주를 넣으면 새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팽창을 하면 낡은 가죽부대가 신축성이 없으니까 터져 버리게 됩니다.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더불어 새 시대가 임했습니다. 이는 이미 일어난 사실이며, 진실이며, 진리입니다. 예언의 성취의 시대, 하나님의 구원사의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기쁨으로 살아갈 복의 백성임을 믿어야합니다. 엡 5:18에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충만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19절에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께 찬송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와 찬미와 노래로 웃으면서 살아갈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찬송으로 기쁨이 넘치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나의 일을 사랑해야합니다. 붙타는 열정으로 일을 즐기고, 뭔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한 보람에 가득한 가슴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남을 비방하거나 남을 미워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난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사탄은 형제를 비난하는 자’라고 표현되어져있습니다. 실수와 흠, 실패 따위를 말하는 것은 천국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곳이 잔치 자리이며, 이곳이 천국인데 이곳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신자는 신앙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칭찬해야합니다. 칭찬은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와 같은 것입니다. 서로를 높여줄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이 땅에서 천국의 맛을 누려야하는 것입니다. 이민사회는 비판과 흠잡기로 참으로 힘들다고 말들합니다. 분명한 것은 잠재력을 믿어주어야합니다. 나쁜습관과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보여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판해서도 안됩니다. 당신에게는 위대한 모습이 있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성공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습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천국의 맛을 진정으로 보는 신자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태안의 기름유출사건을 보면서 선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천국이 임했는데, 내가 사는 이 땅이 천국인데, 내가 사는 이 곳이 곧 시온의 잔치상을 받아두었다면 할 수 있는 한 선한 일에 힘을 써야합니다. 과테말라에서 고아원을 찾아가는 일, 양로원을 찾아가는 일, 아버지가 없이 사는 힘든 현지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바로 천국의 맛을 보는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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