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전 초등학교때 학교에선 군인아저씨를 위한 위문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당시 상당히 아득하고 멀게 느끼지던 군인아저씨라는 인물은, 매우 용감한 사람이지만 때론 매우 위험한 상황을 무릅써야하는 직업이며, 거칠고 일반사람과는 아주 다른 '선별된' 늠름한 전사일꺼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영웅을 주제로 한 만화 (슈퍼맨이라던가 배트맨, 혹은 변신로봇들)에 심취해 있던 난 "우리는 군인아저씨들에 노고로 인해 보호받고 있고 그들로부터 지켜지고 있기때문에 이렇게 학교에서 공부도 할수 있으며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 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왠지 맥이 탁 풀리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반달가면을 쓰고 레이저칼을 휘두른다고 해도 이건 아이들의 놀이일뿐인 것이고 정작 군인아저씨들이 우리나라, 지구를 지키는것이며, 우리는 군복을 입고 얼굴을 까무잡잡하게 칠한 구릿빛 근육 터프가이들에게 보호받는 나약한 미생물들 이라는 것 아닌가.
이런거라면 별로 멋있지 않잖아.
여하튼 잠깐 실의에 빠져있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곤 그래도 '강자'와 친해진다면 나중에 분명 어느 상황에선가 유리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 난 정말 만화를 많이봤던걸까, 초등학생이 이런 간신배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다니) 나름 열심히 그들의 노고를 기리며 위문편지를 썼던거 같다.
그리고 몇년후, 계속 나이를 먹고 커가면서 군인들의 역할이라던가, 지구를 지키는 것 따윈 이제 나하곤 전혀 상관없는 듯한 사춘기 시절을 '공부란 것에 대한 혐오감 + 날 달래줄 음악들 + 실없지만 모이면 즐거웠던 친구녀석들' 과 함께 보내던 와중 내가 고등학생이 되나서, 하나 둘 이어지는 친한형들의 군입대는 제법 큰 정신적인 데미지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정말 오지 않을것 같던 내차례도 절대 넘어가지 않고 역시 온다.
병무청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친절하게 우편물까지 보내 주시다니 언제부터 날 이렇게 챙겨주셨다고 정말 성은이 망극하다. 당장 입대하는것도 아닌데 병무청에 신검받으러 가는길이 어찌나 기분이 꿀꿀하면서 묘하던지. 가보니 모여있는 녀석들 역시 모두 나와 다르지 않은 그냥 철없는 스무살들, 어쩌면 내 친구의 친구일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였다.
다행히 재수에 성공해서 그해 당장 끌려가는건 면했지만서도, 주위 지인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군대 송별회와 먼저간 형들의 잇다른 제대는 맘 한켠에 누구나 '난 언제쯤 ..?' 이라는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졸업하자마자 가는사람, 대학생활,사회생활을 어느정도 하다가 느즈막히 가는사람, 날짜 받아놓고 착찹해 하는 사람 등등등.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란 이유로 나라에서 친히 불러서 20대 초반의 무지랭이들에게 똑같은 옷이 입혀지고 집을떠나서 난생처음 가보는 곳으로 끌려 간다.
어릴적 나혼자 마음대로 상상했던 '강자'따위완 거리가 멀어보이는 휴가나온 내친구. 거칠어진피부며 손. 휴가때 어떻게든 모자로 짧은머리를 감추려는 걸 볼때면 조금은 짠 한 맘이 든다.
고된 훈련과 고참들의 갈굼도 그렇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2년을 '사회와 격리되어있다는 것'에서 오는 그리움을 안고 힘들게 군생활 하고있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와 내 주변인들은 조금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어떻게 무슨수를 써서라도 현역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십자인대를 고의로 파열시키거나 어금니를 일부러 빼거나 한다는 술자리의 우스개들을 실행시키기엔 이젠 좀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이제 군인아저씨들이 지키던 군대는 아는형, 친구들, 동생들로 채워졌고, 나도 이제 그들을 따라갈 때가 곧 올것이리라.
며칠 후면 한달 전쯤 치렀던 공군 군악대 시험결과가 나오게 된다.
떨어지면 다른 군악대 시험을 또 알아봐야 하니까 상당히 귀찮아지기 때문에 꼭 붙어야 하지만 붙는다고 이걸 좋아해야 하는건지도 또 아이러니 하다.
그냥 끌려간다는 느낌이 다분히 드는 것 보단 그래도 지원하여 전공을 살려서 가는게 그래도 더 좋은거겠지 라고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