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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랑가니 섬

김명민 |2008.04.03 19:16
조회 55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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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가니 섬 노인의 억센 삶의 질곡은 거친 비, 바람과 농무가 짙은 풍랑을 만나 허우적 거리며 지쳐버린 바닷새와 조우한 뱃몰이 꾼의 긴 항해 여정을 대변하는것 처럼 보였다. 깊고 길게 드리운 얼굴의 주름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듯.... 뱃사람의 노련미로 보이는 그의 단단한 얼굴 표정은 휴~ 하고 내뿜은 담배 연기와 흡사 닮은듯 하였다.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 자신의 아버지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차츰 털어놓기 시작한 노인의 첫 마디는 대뜸 이랬다.

 

50년 세월의 진실을 묻어둔 삶 자체는 질곡이었네..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었고 풀지못한 한이었지...

그 한을 풀기도 전에 무거웠던 짐을 내려 놓을려는 내심정을 헤아려 주시게나.?

 

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말하는 젊은이를 바라보던 노인은 담배 한가치를 다시 꺼내어서 물었다.

 

젊은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보템이 된다면 이제 지나온 그역사를 더듬어 내 시원하게 털어나 봄세. 허나 한가지 청이 있네.

 

네! 그게 뭡니까?

 

옛날 얘기부터 먼저 전하고 난 뒤에 다시 말하도록 함세.

 

네 알겠습니다.그렇게 하십시요.

 

 노인이 전해준 이 이야기의 시작은 6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다나오 군도, 중앙 고지대 남부에 필리핀 최고봉의 활화산인 해발 2,954m의 아포산이 있었고 그곳에서 내려다 보면 민다나오 남쪽 전체를 끼고도는 셀레베스해에 큰 만과 포구를 안고있는 제너럴 산토스 해안이 드리누워 있었다.그 곳에서 남동쪽으로 약 210Km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느섬, 무인도에서도 깊숙히 패여있는 만이 있었고 그 만은 다시 제너럴 산토스를 향해 두 다리를 쭈~욱 뻗어있는 모양새를 뛰고 있었다. 그 섬,무인도의 이름을 사랑가니 라고 이름 붙혀졌다.

그 당시 필리핀은 전쟁의 포염속에서 일본군에게 주권을 이미 상실한 때였고 사랑가니 섬에는 야키모토라는 일본군 장교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2차 대전 전란의 말미에 진급을 한 대좌 야키모토는 제너럴 산토스 지역의 작전 지휘관으로 부임하여 꼬박 2년반을 지낸 일본군 장교로 남다른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부임하여 2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젠산(제너럴 산토스)의 항구에서 군락선으로 5 시간을 이상을 들어가야 하는 곳에 풍랑이 심하여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짙은 안개에 가리워서 더욱더 신기루에 가까와 보이는 어느 섬을 찾아가고 있었다. 남 태평양의 난 바다에서 깍아지른 듯한 양쪽의 절벽과 마치 방패처럼 생겨 먹은 계곡길이 2Km 나 늘어져 있는 섬이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요새와 다를바 없었다. 그 끝의 안쪽은 빽빽한 갈대와 우거진 숲으로 이루어진 분화구 모양이었으나 물이없는 큰 평지였다고 하며 그 평지 한가운데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서 심어 놓은듯한 나무 한 그루가 우뚝솟아 있어 그야말로 인상적인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곳은 훗날 누군가에 의해서 찾아오게 하기위한 안내판이자 도구로서 아주  적합한 이정표 였다고 한다. 야키모토는 그 곳 사랑가니섬 분화구에 나무 한그루를 이정표 삼아 근처에다 땅을 파게하고 굴과 터널을 만들 계획으로 여러날 준비하고 있었던 게였다. 

 당시 일본군은 전세의 불리함을 깨닳고 철수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 히로히토 일왕의 친동생 치치부 왕자는 1945년 6월 루손섬에서 지연 작전을 펴고 있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에게 전쟁중에 약탈한 동남 아시아 12개국의 모든 보물과 황금을 은닉할 굴과 터널을 만들라고 지시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 지시는 다시 젠산에 보관 되었던 군사 비행장 옆 천연 터널안의 황금까지 운반 하라는 야마시타의 명이 야키모토에게도 떨어졌던 때였다.  일본군 필리핀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명령은 젠산의 군사 비행장옆 천연터널에 보관 되었던 황금을 신속히 루손섬의 인공터널 황실 황금보관소로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키모토의 계획은 그중 일부를 루손섬이 아닌 이곳 사랑가니 섬으로 몰레 빼돌리려는 것으로 전란 말미의 혼란을 틈탈수있는 기회를 이용할 생각 이었다. 그것은 상관인 야마시타 명령에 불복하는 항명이었으며 일본군부에 반역하는 엉청난 음모였다. 어쩌면 전란 말미의 전세를 정확히 파악한 야키모토의 선견 지명이 빛을 발휘하는 사건이 될수도 있었을 것이었으나 지난 몇 년간의 전란동안 일본군의 만행에 앞장서서 수행 해야만 했던 자신의 보상심리가 앞서는 야욕 이기도 했다. 그 욕심은 자기 계획에 동원 시켰던 수석 엔지니어와 수 많은 한국인 징용자와 필리핀 현지인 들을 몰살시킨 또 하나의 끔찍한 만행을 저지런 결과를 낳고 말았다.

 수석 엔지니어와 징용자들이 함께 승선하여 돌아오는 배에 폭파물을 설치하여 도중에 점화시켜서 바닷물에 수장시켜 버린 것이다. 게다가 1945년 8월로 예견하고 있었던 어느날 본국의 패전소식을 들을수 있었지만 이상한 일도 함께 발생 하였던 것이다. 사랑가니 섬에 묻어둔 황금 보관소에서 돌아온 후 황금 운반에 참여하여 지휘관의 명령을 받고 그들을 직접 죽였던 부관과 병사들이 영문도없이 하나 둘씩 시름 시름 앓다가 일주일 혹은 10여일만에 죽어갔다. 그리하여 모든 증인들이 몰살되고 사랑가니 보물창고는 은폐되어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단 한사람, 어느 여자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는 비밀 창고가 된 것이다.

  병사들이 죽어간 그로부터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52년 이른 봄에 필리핀을 찾아 젠산의 땅을 다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50대 중반의 구리빛 얼굴에 제법 단단한 표정이었으나 지난날을 회상하는듯 왠지모를 어두운 표정이었다. 과거 직육면체 공간의 비밀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장본인 이었기에 7년이 지난일 이라지만 다시 찾은 땅은 그때의 일을 기억 하는지 그의 생각을 들추어내고 있었다. 7년전 히로시마 원자탄 투하에 의해 무조건 항복이라는 일왕의 메시지를 군사 라디오로 전해 들었던 그날은 유난히도 더웠기에.....

 1945년 포로의 신세로 패망한 일본국에 송환되어 미 군정에 의해 실시된 전범 재판에서 다행스럽게 징역으로 살아남아 곧 석방되어 젠산을 다시 찾은 야키모토에게는 지난 10년전 세부가 고향인 필리핀 현지인 여자를 만나 정을 주었던 여자가 한명 있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미셀이었다. 그녀는 고향인 세부에서 당시 군사 요충지였던 젠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장교들을 위한 위안부로 차출되어 왔던 여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유난히 피부가 곱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는 현재 처해져 있는 자신의 운명을 현명하게 받아드릴줄 아는 여자로 스페인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특유의 정열적인 몸놀림과 21살의 꽃다운 농염한 육체의 성숙함을 겸하여 서구적인 마스크의 이미지를 더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지휘관 이었던 그에게 있어서 또하나의 보물이 될수 있었던 것으로 미셀과 야키모토 이 두사람은 전쟁의 참상이 가져다 준 기형적인 사랑을 간직한 전쟁 실화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은 야키모토 그의 양심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밤이 찾아주는 여인의 평안에 위로 받음이 유일한 피난처였을 그에게 그녀는 작심한듯 진심어린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는 이 여자에게 믿음을 줄수 있었으리라.  결국 떠나는 날 마지막 밤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할수 없는 사안의 진의를 뒤로하고 조심스레 입을 연 것은 조그만 철제함을 넘겨주며 잘 간직해 달라는 부탁 이었다.  반듯이 돌아 오겠다는 말로 무언의 언약식이 되어버린 두사람에게 서로를 꼭 껴안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을 볼수 있었다. 아름답게 수놓아진 철제함을 받은 미셀은 그것이 사랑의 징표인줄로만 알고 그것을 다시 만나는 날 까지 고히 간직할 생각이었으나 야키모토의 야심은 그리 순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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