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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1
보상, 속죄, 죄값 2 [the Atonement] 그리스도의 속죄
make atonement for …을 보상하다 어톤먼트 : 속죄
탁탁탁탁 탁탁탁탁. 따라라락.
초등학교 6학년. 13살. 나에게는 내 또래 아이들이 별로 관심없어 하던
혹은 흔히 가지지 못한 소중한 것이 있었다. 바로 타자기.
한 글자한 글자 '톡톡' 흰 종이에 글자를 찍어내고 다음 줄로 넘어 갈 때는 옆에 있는 동그란 봉을 돌린다.
지금의 컴퓨터처럼 backspace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찍은 글자는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신중히 탁탁탁.
노즐을 만지다가 손에 검은 잉크가 묻기도 하지만, 난 타자기로 탁탁. 무엇인가 적어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마니또'를 하게 되었는데, 마니또의 규칙이 무엇보다 발표날까지 발각(?)되지 않는 것이
포인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마음에 나의 보물 타자기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는지 타자기로 예쁘게!
편지를 적어 나의 마니또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반 아이들은 다 그 편지를 돌려보며 말했다.
'어, 민호야 니 마니또 미경인가봐'
타자기를 가지고 놀던 유일한 아이였으니 당연히 쉽게 알지. 왜 그리 유치했는지.
지금도 난 변함없이 유치하지만 (-_ㅡ;
탁탁탁탁 탁탁탁탁.
단발머리 한 소녀가 타자기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두 개의 검지 손가락으로 탁탁.
The End를 치고 있는 소녀. 영화 어톤먼트의 첫 장면이다. 풍부한 감성을 가진 브리오니.
창 밖의 세상을 창 밖에 뛰쳐나가서가 아닌 창 안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그녀의 세계는 늘 상상안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는 외롭다.
그리고 질투한다. 자신의 상상의 세계와는 다른 세상 밖을.
탁탁탁탁 탁탁탁탁.
창가 앞 책상에 앉아 한 청년이 열심히 타자기를 쳐 본다.
음악을 들으며, 담배를 한 개피 피우다가 다시 타자기 앞에 앉는다. 그리고 다시 탁탁탁.
'In my dream, I kiss your cunt. your sweet, wet cunt.'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지 않을 편지의 내용. 로맨틱 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가장 솔직한 욕망의 고백.
그는 멋쩍은듯 웃는다. 그리고, 다시 탁탁. 그녀에게 보낼, 보내졌어야 할 로맨틱한 문장의 편지.
'난 그대 때문에 바보가 되었소.... 용서해 주겠소?'
하지만, 그가 손에 들린 것은 첫번째 편지.
탁탁탁탁 탁탁탁탁.
전쟁 중에도, 늙은 나이에도 타자기 앞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무엇인가를 적어내려가고 있는 브리오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마지막 속죄.
만약, 로비가 그 편지를 제대로 전하기만 했었더라도
만약, 브리오니에게 전하지 말고 직접 전했었다면
만약, 장난으로라도 그 첫번째 편지를 적지 않았더라면
만약, 브리오니가 떨어진 귀걸이를 보지 못했더라면
만약, ....
만약, ...........
하지만 인생에는 만약도 없고, 인생은 돌이킬 수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만약의 가정들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그리고 브리오니의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병만큼이나
뒤늦은 속죄는 힘없고 더 이상 손 쓸수 없이 부질없어 보인다.
.
.
.
.
탁탁탁탁 탁탁탁탁.
지금도 적혀지고 있는 우리의 인생과 매 순간들. 타자기처럼 지울 수도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슬프고 공허하기도 하다. 오해하고 미워하고 질투한다.
오직 사실만을 운율도 꾸밈도 없이 쓴 브리오니의 마지막 작품 '속죄'처럼 우리의 인생은
운율도 꾸밈도 없이 쓰여져가고 있다. 그 속에는 수 많은 뒤늦은 '속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덧없는 속죄 속에서 내가 발견한 진정한 속죄.
예수의 십자가 죽음.
영화를 보다, 내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은 그 속죄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