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계는 항상 그래왔다. 1948년 제1공화국이 수립됐을 때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여당과 야당은 항상 대립해왔고, 그러면서 서로 주고받으며 정권을 잡았으며, 실세를 견제하고 반대하는 것이 야당의 몫이었다. 이 아슬아슬한 이념의 밸런싱은 민중들의 신성한 참정권을 통해 결정됐으며, 국민들은 어떤 시절에는 여당에 몰표를 주어 정부의 정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도와주었고, 어떤 시절에는 야당에 힘을 실어주어 힘의 균형을 맞추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역대 최저라는 어제의 총선 투표율을 보면 이 대의제란 것이 얼마나 모순덩어리고 실효가 없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뽑을 후보가 없어서..’, ‘어차피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내세우며 정치에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유권자들을 보면 그동안의 정부가 얼마나 국민을 질리도록 못 살게 괴롭혀왔는지를 실감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가며 끝까지 쿨 한 냉소를 잃지 않은 그들을 옹호할 마음도 별로 없다.
아무래도 ‘설마.. 나 사는데 뭐 지장 있겠어?’라는 정서가 대중들에게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정부의 힘이 국민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수많은 광주 사람들을 실제로 죽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를 일으켜 온 국민들에게 좌절을 맛보게 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는 강남 지역 집값이 1억씩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한 정권의 정책은 국민의 실질적 생활에 꽤 깊은 관여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생사를 가를 만큼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투표는 신중히 행해져야할 국민의 중대한 권리이자 의무다. 아무리 정치판이 더럽고 딱 그만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모여 희희낙락하는 꼬락서니가 우습다지만, 이런 현실을 그냥 침묵으로 방관하는 태도는 결국 그들을 더욱더 살찌우게 하고 뻔뻔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보수와 진보 중 뭐가 더 나은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기 마련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혹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룰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며 종전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했던 프랑스 시민들이 믿었던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 정치 안에서 끔찍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듯 좌파 역시 기득권층이 됐을 경우 우파의 악습을 그대로 반복했다. 결국엔 그 놈이 그 놈이란 말이다.
그러나 현 프랑스의 모습을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혁명을 바탕으로 세워진 역사 때문인지 자국의 법체계와 정책이 국민들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 된다고 한다. 정부가 국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말이 많은 국민은 다루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뭘 추진하든 사사건건 시비가 걸려오고 자칫 잘못하다간 데모와 혁명으로 이어져 정책을 발표하기가 조심스럽고 신중해진다. 반면에 말을 하지 않는 국민들은 다루기가 쉽다. 정부가 아무리 잘못된 정책을 내놓아도 속으로만 욕하며 계속해서 받아들인다면 사회적 시스템은 점점 한 쪽으로만 치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대중은 정치적 힘을 잃어 결국 우매해지게 된다. 우매한 대중은 정말로 무서운 존재다.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쉽고 자신의 생각이 옳고 그른지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일어난 몇 몇 해프닝들을 보면 아직도 이 신성한 권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부족하단 느낌이 든다. 부산에서 어떤 70대 노부부는 투표소에서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 큰 소리로 상의하다 선거사무원의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할머니가 투표를 먼저 한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몇 번을 찍으면 되능교?"라고 물었고,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00번 찍으면 되지 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정도면 양반이다. 고려대학교에서는 한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교수가 이유를 물었더니 “잘 생겨서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어떤 유권자는 자기랑 이름이 같은 후보가 나와서 지지한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투표에 대한 의식이 이토록 낙후된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국민이라면 투표는 꼭 해야 한다. FTA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든, 종부세 완화든, 한반도 대운하 추진이든, 뭐든 간에 찬성하면 여당을 찍고 반대하면 야당을 찍으면 되는 거였다. 이 단순한 명제를 두고도 사람들은 ‘귀찮아서..’, ‘뽑을 사람이 없어서..’, ‘바빠서..’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며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저 쪽 세계는 원래 그런가보다.’하고 시니컬한 침묵을 지키며 넘어가는 사이 국민들은 정치적 기득권층에 의해 평등성을 잃고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높은 현 상황을 봤을 때 정치에 대한 자신의 침묵이 그냥 중립을 지키는 침묵이 아니라 현 정권을 지지하는 쪽으로 힘이 실리게 된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할 것이다.
어쨌든, 아무런 민간보험에 들어놓지 못한 난 정말 이번에 ‘살기 위해’ 투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