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내가 겪었던 일이다.
중국에 온지 며칠 안돼 핸드폰을 사러 갔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전문쇼핑몰에서 제품을 골랐다. 그런데 핸드폰 개통까지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운데 둥그렇게 매장이 있고
그 주위를 두르는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건물 가장자리에도 소규
모 매장이 저마다 들어서 빈틈이 없었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전화를 골랐다. 점원은 저~쪽에 보이는 '차이나 텔레콤' 사무소에
가서 번호를 받은 뒤 다시 오라고 했다. 매장의 위치는 쇼핑몰 입구
기준으로 5시 방향. 10시 방향에 있는 '차이나 텔레콤' 영업점에
가서 줄을 섰다. 내 앞에 10명이나 있었을까. 1시간을 기다려 내 차
례가 되었다. 안되는 중국말에 손,발 섞어가며 핸드폰 개통을 하고
싶다 말하니 전화기를 보여달란다. 아줌마가 여기서 먼저 번호를
받아오랬다고 말하니 빠른 중국어로 뭐라 막 말을 했다.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물어물어 이해한 결과 기기를 먼저 가져와야 SIM
카드를 꽂을 수 있단다. 1시간의 기다림으로도 지쳐가는데 이게
또 뭔소린가 싶었다. 결국 기기를 얻으러 다시 매장에 갔다. 그러자
여전히 아줌마는 뭐라 딴소리를 한다. 알고보니 입구 기준 12시
방향에 있는 계산소에서 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아오라는 것이
다. 결국 계산소에 가서 돈을 냈다. 영수증을 받아 다시 10시 방향
영업소에 갔다. 그러자 이번엔 영수증에 도장이 없다고 난리다.
다시 12시 방향 계산소에 가서 어렵사리 도장을 받았다. 매장으로
가니 이번엔 무슨 종이로 바꿔주면서 11시 방향에 위치한 곳으로
가란다. 그 곳이 핸드폰 기기를 주는 장소란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가라고 할까' 생각하며 11시 방향으로 갔다. 매장에서 받은 종이를
내미니 비교적 순순히(?) 핸드폰을 내놨다. 막상 핸드폰을 받고
나니 그 다음 행선지가 생각나지 않았다(-_-;). 몇초간 기억을
더듬은 끝에 10시 방향의 영업소로 컴백. 의기양양하게 기기를
내밀었다. 나보다 몇 살은 어려보이는 종업원이 씨익 웃으며 아는
척을 해왔다. 마음에 드는 번호를 고르고, SIM카드를 꽂아 확인을
마친 뒤 쇼핑몰을 나왔다. 핸드폰 하나 만드는 데 4시간 가까이
걸릴줄은 꿈에도 몰랐다. 쨍쨍하던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위에 적은 이야기는 'piece of cake',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집에 인터넷이 고장났었다. 담당자에게 말하니
알았다고 해놓고 한동안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재차
문제를 제기하니 A/S 담당자 일정에 맞춰야 한다며 이상한 소리만
해댔다. 내가 중국와서 처음 머물렀던 방은 세탁기가 고장나 있었
다. 우리를 도와주는 중국 학생에게 말하니 며칠 뒤 기술자가 왔다.
대충 훑어보더니 뭔가 부품을 갈아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가져왔
다며 그냥 가버렸다. 부품 가지고 다시 오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긴
하였으나 그 분을 다시 보지 못했다.우리는 며칠 뒤 다른 방으로
옮겼다.
우리나라에서 핸드폰 하나 만드는데 몇 분이나 걸릴까. 만약,
누군가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랐는데 저 쪽 매장에 가서 도장을
받아 확인증을 교환하고 길 건너 직영대리점에서 등록절차를
밟으시라 하면 반응이 어떨까. 인터넷이 고장나 대리점에 전화하니
요즘 수리자가 바쁘니까 그냥 며칠 더 고생하고 참으시라 하면
그 인터넷 회사, 무사할까. 세탁기 고장났다고 A/S 불렀더니 부품
안 가져왔다며 약속없이 가버리면 그 회사, 세탁기 한 대라도
더 팔 수 있으려나. 그 직원, 밥이나 벌어먹고 살 수 있으려나.
두어 달 남짓 겪어본 바에 의하면, 중국은 '노동자 중심의 all-stop
행정' 체계를 갖춘 것 같다. 모든 것은 노동자 중심으로 프로세스가
짜여진다. 사용자는 그런 노동자들의 편의를 위해 몸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사무실 직원은 왠만해선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타 부서에서 처리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두리뭉실' 설명해주고 끝이다. 사용자는
보물찾기하듯이, 새로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롤플레잉 게이머
처럼 다시 모험에 나선다.
중국인들은 이런 서비스 체계에 불만이 없을까. 아쉽게도(?) 별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내가 매번 이 친구들에게 서비스 정신이
어떻고 선진국의 사례는 어쩌네 하면서 이야기할 수도 없는 일.
그저 이 나라의 생활 방식, 문화에 적응하며 생활하려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낯선 땅에서 생활하다 보면 초반에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을 겪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무슨 일을 처리할 때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조금 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시작하면 별 탈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에선 발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중국이다.
경제기조의 변화로 들어온 것은 외국의 자본 뿐 아니라 문화도
일부 포함되며, 이에 따라 자연히 서비스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식당을 포함한 서양요리 전문점 등에 가면 과도한 친절 서비스
때문에 민망해지는 경우가 보인다. 일부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고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제력 뿐
아니라 행정시스템과 서비스가 하루빨리 개선되어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한다 (식당에서 그랬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
그래서일까. 처음엔 이래저래 불편하고 아쉬움이 많던 중국이었지
만 시간이 갈수록 많이 적응되고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던 중국의 새로운 면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히려 가끔은 중국대학의 시스템이 한국대학의 그것보다 편리할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 우리 대학의 현 주소는 어느 수준일까.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가 누구인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국가 아닌가. 또 '남들이 하더라', '뭐가 좋다더라'
싶으면 기를 쓰고 따라하는 민족 아닌가. 눈부신 경제성장, 그리고
외환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많이 발전하고 좋아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여전히 관료주의적 형태를 지닌 행정서비스나 너무 가식적인
서비스를 지켜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것이
별건가. 이런 것들만 고쳐져도 국가경쟁력은 강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변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게 아닌가.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해 볼 일이다. ^^;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핸드폰을 해지하러 가면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과연 그 사이 중국의 핸드폰 개통/해지 서비스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을 것인가. 한 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