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못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못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이후에 모내기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에 모내기가 들어온 것이 조선시대 초기라고 배웠습니다.
모내기는 참 오래된 벼농사 방법인 셈입니다.
모내기가 없었을 때는 그냥 논에 볍씨를 뿌렸을 겁니다.
논에 영영분도 부족하고 볍씨가 골고루 나지 않아 수확이 적었겠죠.
그래서 논에 못자리를 만들어 모를 길러내서 다시 논에 심는 방법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내기가 훨씬 안정적인 농법인 셈입니다.
4월 중순에 볍씨를 담그고 소독해서 1주일 정도 싹을 틔웁니다.
그리고 나서 모판에 파종을 하고 다시 1주일 정도 지나면 못자리를 만듭니다.
못자리는 위탁영농을 하는 형님네 많은 못자리에 얹혀서 함께 만듭니다.
덕분에 우리집 못자리는 편하게 할 수 있고, 동네 형님도 부모님과 제가 일을 함께 도움으로써 서로 품앗이를 하는 셈입니다.
못자리 만드는 일에 동네 어르신 열 분이 모였습니다.
일할 분들이 부족해서 형님이 인력에 연락해 남자 두 분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농촌의 현실인가 봅니다.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쌀집아저씨가 동네에서 가장 젊은 인부라서 다른 한 분과 함께 모판을 받아 못자리에 앉히는 일을 했습니다.
12시가 넘어 점심 때까지 일을 마쳤는데 모두 120마지기 정도 일을 했습니다.
1마지기가 200평이고 모판은 15판 정도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못자리에 앉힌 모판수가 1,800개 남짓 됩니다.
저와 다른 한 분이 모두 앉혔으니 쌀집아저씨가 논에서 900번 정도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 셈입니다.
못자리를 만들다 두 번 쉬었습니다.
새참이 맛있었습니다.
쌀집아저씨는 원래 일을 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 쉴 때 맥주를 한 잔씩 했습니다.
안주는 돼지머리 누른 것을 가지고 왔더군요.
몇 점 먹었는데 제법 맛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온 몸이 묵직하니 아픕니다.
발이 빠지는 논에서 900번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으니 조금 무리하게 운동을 한 셈입니다.
절에서 108배 하고 나면 제대로 걷기 힘들다고 하던데 쌀집아저씨는 108배를 8번이나 한 셈이니 극락에 갈려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