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해, 미국은 물론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 8년 동안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지내면서 남편의 스캔들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상원의원으로 변신한 그녀는 인기도 상당하다.
ABC 방송에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41%가 힐러리의 대통령 출마를 원하고 있으며, 민주당원 사이의 호감도도 7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의 아버지는 해군하사관 출신으로 커튼 원단 제조업자였고 그녀는 안정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간해서는 딸을 칭찬하지 않았다. 힐러리가 전과목 A를 받아 와도 "네가 다니는 학교의 공부가 쉬운 것뿐이다. 기준을 더 높여라"라고 말했을 뿐이다. 또한, 어머니는 딸이 나가서 맞고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할 정도로 힐러리를 강하게 키웠다.
또래 친구들이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당시에도 그녀는 공부만 했고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공화당 지지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힐러리 역시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모의토론을 하면서 그녀의 생각은 바뀌었다.
그녀는 토론에서 존슨 대통령의 역할을 맡으면서 마틴 루터 킹 암살사건을 알게 되었고, 이후 대학 때부터는 민주당 지지자로 변모했다. 모범생답게 힐러리는 미국의 명문 웨즐리 여대를 거쳐 예일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75년 예일대 로스쿨 시절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빌 클린턴을 만나 결혼했다. 클린턴은 만 32세로 최연소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되었지만, 재선에는 실패했다. 그 후 힐러리는 본격적으로 남편의 참모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마침내 빌 클린턴은 1982년부터 10년 동안, 아칸소 주지사를 역임하고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노력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힐러리는 미국의 다른 영부인이나 새계 각국의 정상 부인들과는 달랐다.
클린턴이 대선에 승리한 뒤,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의 주방에 앉아 파이나 굽고 파티나 여는 일상을 보내면서 주말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나 가는 것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이라면 차라리 지금 이대로가 낫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성격이었다. 하지만 1998년 터진 빌 클린턴의 성추문 파문은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가장 큰 충격이었다. 힐러리는 남편의 배신에 몸을 떨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클린턴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면서 당시의 감정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용서했고 많은 사람들이 힐러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큰 야망을 품었을 때, 커다란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다.
힐러리는 미국 명문대를 나와 변호사 시절에는 수입이 남편보다 5배나 많았고, 1991년에는 미국의 법률잡지 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 100인' 중의 한 명으로 뽑일 정도로 실력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평생 지켜 온 삶의 원칙처럼 매사에 열심히 일하고, 그 일이 이뤄질 때마다 성취감을 느끼는 생활인이기도 하다. 매사 모든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힐러리 역시 한때는 공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었고,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까지 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시련을 이겨냈다. 그녀의 야망은 크고 그것은 반드시 큰 결실을 맺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두 사람이 주유소에 가서 나눴던 대화는 힐러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부부가 주유소에 갔다가 힐러리는 우연히 옛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는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기름을 넣고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말했다.
"여보, 당신이 그 남자랑 결혼했더라면 지금쯤 아마 주유소 사장 부인이 되어 있겠지?"
그러자 힐러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바로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걸."
- 힐러리 로댐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