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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우정의 유일한 기반이다

이재민 |2008.05.04 10:54
조회 161 |추천 0

 

 

이제 군생활을 시작한지도 1년 3개월째다.

육군이었다면 제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겠지만

해군...인지라 생각보다 앞이 잘 안 보인다.

그것보다는 일에 많이 치여서 그런 걸 생각할 틈조차 없다.

 

일에 치이든 아니면 탱자탱자 놀든

군대는 의무복무를 하러 온 대한민국의 모든 남아들에게

닫힌계(Closed System)이다.

소포, 편지, 그 외 생명 유지와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알아서 그리고 과업이란 미명하에 시행되지만

정작 난 내 몸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

내가 인생에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잠시 접어야 하고

내가 반드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 또한 잠시 접어야 한다.

내가 꼭 봐야 할 사람이 있다면...

뭐 그 정도는 간간히 나오는 외박과 휴가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밖에서만큼 내가 사람을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 내지 여유는 없다.

 

닫힌계가 가장 와닫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도 자유롭게 볼 수 없다는 것.

장래든 여행이든 결국에는 사람 일로 귀결되기 때문에

닫힌계는 인간교류 자유 제한이란 표현으로 상징된다.

물론 그 안에서 사귀는 사람 때문에 상관없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마치 목봉체조의 같은 조가 된 인연으로 아는 사람과

부산에서 부르면 서울에서도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은

천지 차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내가 군대 와서 잃은 것 중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사람이다.

군대에 와 있는 1년 3개월 동안

나는 내가 알고 지내던 수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뭐, 핸드폰 번호도 지웠고 일촌도 뺐고

연락 안한지도 1년 넘어간 사람 기준으로 하니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모를까 아니면 이건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얼굴이나 한두 번 보고 얘기나 조금 하고

술자리에서 어쩌다가 합석해서 본 사람 잃어버린거야

'아, 내가 어설프게 대하다보니 사람 놓쳤구나...'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정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혹은 중요한 사실을 공유한 사람들조차도

내 곁을 떠나갔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했건 아니면 상대방이 잘못했건(난 내 잘못은 30%정도라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처음에 서로 만나서 얘기하고 그 사람을 파악해갈 때도

과연 저렇게 허무하게 헤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했겠느냐는 것이다.

여친 혹은 남친을 사귈때는 '언젠가는 헤어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사귄다.

결혼할 때 아닌 이상 어차피 90퍼센트 이상의 사람은 다른 이성을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게

남자든 여자든 당연한거다.

새 여자 마다할 남자 없고 남자 잃고 엉엉 울던 여자도 2~3달 지나면 다른 남자에게 열정을 다한다.

순수한 연애가 목적이라면

언젠가는 헤어지겠구나 하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묘미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인간관계 말고

형오빠누나언니동생 혹은 친구라는 관계에 있어서는 그런 부담이 없다.

처음에는 그냥 면식있는 사이로 시작해서

점점 상대방의 깊은 구석을 공유해간다.

물론 면식만 있고 그 이상 진전이 없을수도 있다.

그 때는 '아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깊은 관계로 발전하면 '오 이 사람 이런면이...!'하며 신뢰가 싹트고 커지기 시작한다.

전자는 굳이 헤어지겠지 하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가 없고

후자는 굳이 헤어질 이유가 없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 다 헤어진다는 생각은 하질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하다가 어느 한쪽 혹은 양쪽의 환경이

더 이상 교류를 지속할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군대, 유학, 공부, 일, 그 외 꼭 인간교류 자유 제한이 필요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한 번 씩은 발생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은밀한 구석을 공유하던 예전의 신뢰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환경이 바뀌었고 둘의 공유영역이 사라지면서 은밀한 구석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떨어져간다.

점점 교류는 사라지고 둘 중 한명 이상은 이 사태에 대해 불안감 내지 불만을 느낀다.

그래서 연락을 시도해 보지만...미친듯이 졸린 상황에서 잠 깨려는 노력과 별 다를바 없다.

결국 연락이나 만남은 깨지고 그 자리엔 불신의 그루터기만이 남아

예전의 추억을 일깨워준다.

 

처음 호기심이 왕성하던 그 시절의 신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절교가 아닌 이상 어차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멀어짐도 시나브로 일어난다.

Heartbreaking은 (물론 그 전부터 눈치챌 수는 있지만) 단시간에 일어나는 반면

헤어짐은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 삶아지는 개구리와 같이) 시간을 두고 일어난다.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그 사람과 관계가 깊어지면

옛 사람에 대한 신뢰의 의지는 잊혀지고 만다.

 

인간교류 관계 제한이 신뢰를 약하게 할 수 있는건 맞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대박을 터뜨리고자 한다면

그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핑계는 될 수 없다.

진정한 신뢰를 갖고 있다면 상황이 끝나면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여유가 있다면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할 거고

결국 주위에 남는 건 그 그루터기 뿐이다.

 

신뢰는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는 우정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두발로 땅을 디디고 서는 절대적인 기반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무심함으로 잊혀진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되살려보자.

상대방이 연락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그때도 먼저 연락해보자.

연락은 하지 않고 있지만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사진 한 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절대로 놓치기 싫다면

이미 당신의 머리는 그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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