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
(*Approach. 실제 건축물로 들어가기 이전에 방문자들은 길을 따라서 출입구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는 건물이 가지는 순환 체계의 첫 단계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건물과 장소를 보고 느끼며 그것을 사용할 준비를 한다. 이 부분은 독자가 사건과 진실에 접근하는 단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것을 최고라고 오해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지만, 현재 속에 흐르는 시간은 자만하는 세월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때는 말 없는 마차와 연기를 내뿜는 기차가 이미 일상 속에서 사람의 발이 되어주고 날개 달린 비행기의 발명을 목전에 둔 시대였다. 동력과 신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덕분에 여행자들은, 이동 과정 중에 발생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과거에 바다 물결을 용감하게 헤치고 전진하는 위풍당당한 뱃머리는 망망대해 위에서 초라해져만 갔고 80일 간의 세계 여행은 더 이상 꿈과 환상에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이동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세상은 점점 작아져갔고 그에 따른 공간의 개념도 계속 바뀌어 갔다. 그 변화의 시절 한가운데에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때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내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마스터를 따라서 진귀한 경험을 누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 기계는 하늘을 난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았다. 하늘을 떠다닌다고 하니 새의 형상을 해야 정상이겠지만, 새처럼 날개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표표히 부유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위치 이동을 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전부였다. 그 생김새는, 커다란 타원형의 풍선이 주를 이루었고 그 밑에는 풍선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객실의 몸체가 붙어 있어서 마치 배의 갑판이 풍선의 밑바닥에 밀착된 것처럼 보였다. 객실의 후미 부분에는 날개라는 느낌이 들지도 않는 작은 꼬리가 상하좌우에 하나씩 붙어 있었고 꼬리보다 작은 프로펠러가 두 개씩 양편에 붙어 있었다. 지상 아래에서 떠 있는 그것을 본다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덩치 큰 하얀 새 혹은 유유히 창공의 흐름을 타는 배부르고 굼뜬 물고기 정도로 보일 것이다.
마스터는 지나가는 말투로, 자연의 거스르지 않는 흐름처럼 비행선의 형태도 계속 진화해서 언젠가는 커다란 풍선이 없어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다빈치의 하늘을 나는 기계를 미처 떠올리지도 못하고, 기계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공기보다 가벼운 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고집을 속으로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머잖아 실제로 더 빠르고, 움직임이 더 자유로운 비행기가 출현했고, 그 형태는 마스터의 말씀대로 거대한 풍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대신 새처럼 활공하듯 날개를 편 모습이었다. 어느 두 형제의 실험이, 하늘을 나는 기계에 관심이 없거나 그 결과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역사가들은 그 몽상가들의 비행으로 인간의 발목을 붙잡던 땅의 쇠사슬이 끊어졌다고까지 말했다.
각설하고, 모양이 볼품없이 생기긴 했지만 나는 첫눈에 기대감과 흥분감에 부풀어 있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 위로 뜬다는 막연한 예감은, 전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더욱이 인간이 과거에 언제 하늘을 날았던가하는 물음이 갑자기 밀려오니, 눈앞에 보이는 그 거대한 기계는, 인간에게 굴레 지워진 운명을 배신하려는 악마적 수단이라고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가 아닌 이상 지상의 동물은 땅의 족쇄를 달고 태어난 존재였기에, 나는 이제 곧 운명을 거부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는 압박과, 과학의 힘을 빌려 새가 된다는 흥분 사이에서 나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탑승을 하기도 전에 사지가 축 늘어지는 피로감을 느끼고 말았다.
비행선의 이륙과 동시에, 마스터가 짐을 꾸리라는 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전날의 설레임이 되살아났다. 놀라움이 극치에 달한 것은 비행선이 하늘의 꼭대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상승할 때였다. 그동안 발붙이고 살았던 땅 위의 형상들이 멀어져 가면서 소인국의 광경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건물의 지붕, 도로의 격자 형태, 도시 속에서 듬성듬성 푸른빛을 발하는 녹지대처럼 여태까지 눈이 미치지 않은 범위의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행선은 하늘을 나는 놀라운 기계이기도 했지만 인간 세계라는 복잡다단한 부분의 전체를 인식하게 해주는 놀라운 도구이기도 했다.
비행선은 위도와 경도라는, 지구를 감싸는 가상의 그물 위를 날아갔다. 바다는 겨우 푸른 쪽빛에 불과했지만, 망망대해 위에서 자연은 더욱 경이롭고 위대했다. 그 광경은 여태껏 내가 접하지 못한, 인식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신세계의 단면이자, 갑자기 감옥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틀에 대한 진실이었다. 자연은 위대했지만, 내 시야는 그 인식의 전환점에 이르기 직전까지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통찰의 탄성이 터지는 매순간마다 그러한 충격의 감정에 휩싸이리라. 그것은 인식하는 존재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또한 아픔이었다.
하늘 위에서도 지상이 그리워지는 간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던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신선한 충격은 서서히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는 구실로 애써 내 간사함을 감춰보기도 했다. 마스터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한 토막 이야기를 건지기 위해 여전히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무심한 비행선만이 편지에 적힌 주소를 향해 가까이 다가갈 뿐이었다.
지상에서 어느 호기심 많은 꼬마가 고개를 쳐들고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본다면 까마득한 철탑의 꼭대기와 함께 비행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뱃사람이 바다에서 그리운 뭍을 발견하듯 나는 그 흔적을 발견했다. 비행선이 도시 상공에 접근했을 때 내가 처음 본 것은, 그리웠던 지상의 형상들 사이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치수를 자랑하며 우뚝 솟은 거대한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 사각형 단면을 가진 석재가 꼭대기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꼭대기는 피라미드형이다.)였다.
주변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크기를 가진 그 오벨리스크의 전체적인 형태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가느다란 뼈대들로 구성된 철탑이었다. 그 생김새는 네 개의 철 기둥이, 지면에서 중간에 조금 덜 미치는 높이까지 곡선의 형태로 수렴하다가 상부에서는 하나의 기둥으로 합쳐지면서 가늘어졌다. 하부는 네 개의 반원 아치(*석재, 벽돌 등의 조적조에서 발달된 구조로 개구부 상부를 반원형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는 구조를 말한다.)가 네 기둥을 서로 끌어 당겨주어 안정된 구조를 취했으며, 꼭대기는 신사용 모자가 얹어진 듯한 모양을 취했다. 기둥은 말이 기둥이었지, 수많은 철 막대가 눈(雪)의 결정체인 듯한 형태로 연결되어 기본적인 단위를 이루며 층층이 쌓아 올려졌고, 철 막대 사이에는 새장처럼 휑한 구멍만이 뚫려 있어서 내 눈에는 미완의 철 구조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재 사이로 뚫린 구멍들은 비행선의 위치가 이동함에 따라 구멍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또 그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다. 오벨리스크가 인간의 이상과 활동을 상징하는 기념비이자 후대에 남겨질 유산으로서 건설된 피라미드라고 한다면 그 철탑의 상징은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 눈에 그것은 하나의 거대하고 흉측한 괴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