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제도권 안에서 상처 받은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과거 모습이 어떠했든지 비슷한 형태의 신앙관을 가지게 된다.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그것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목회자의 예배 집도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성도의 마땅한 의무에 대해 터부시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다뤄보자.
첫째 상처받은 교인들은 목회자의 권위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들은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주장했던 만민 제사장설를 주장하며 목회자의 권위의식과 제도권의 부패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들은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기존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는 교회의 덕을 세우거나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목회자에 순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태도를 가진 교인들의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가 단순히 목회자에 대한 반발심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예배에 질서가 있듯이 교회 내에도 질서가 있다.(나는 목회자가 마치 교황이 주장하듯 무오류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목회자를 하나님처럼 생각했다. 물론 목회자가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에 대해 그런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태도가 옳은가?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교회를 공동체로 만드셨겠는가? 나는 목회자의 행동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목사라는 직책에 그만한 책임과 또한 그만한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질서와 은혜를 위해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분명히 유익한 일이다. 성경은 지체들이 자유함을 가지고 방종 하는데 쓰지 말고 서로 종노릇 하라고 말한다. 하물며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더 없이 순리적인 일이다.
목회자를 존경하지 않고 비난하게 되면 세 가지 영역에서 문제가 생긴다. 첫째는 은혜가 사라진다. 은혜의 주된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하는 자가 바로 목회자다. 그런 목회자를 존경하지 않고 비판만한다면 은혜를 누릴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한다. 말씀보다 내가 높아져 있으면 은혜가 흐를 수 없는 것이다. 둘째는 자녀들에게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 가정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를 통해 가정의 질서가 세워지게 하신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주인도 예수님이시지만 목회자를 통해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다. 때문에 목회자를 비판하게 되면 그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의 신앙에 악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권위와 진리 자체를 받아들이는 영역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비진리의 문제로 교회가 분열되기 때문에 목회자를 존경하지 않고 비난할 때 문제가 된다. 현재 교회가 분열되는 이유의 대부분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처럼 지금의 교회들도 당파를 나눈다. ‘목사파와 장로파’로 교회가 갈린다.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새로 들어온 신흥 세력’으로 교회가 나뉘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교회가 마치 정치판 같다. 그러나 교회는 십자가의 그늘 안에서 하나 되는 곳이지 권력을 중심으로 나뉘는 세속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의 진리로 하나 되게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자가 바로 목회자다. 따라서 신도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면 그들은 만민 제사장주의를 지나치게 왜곡해서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유진 피터슨은 이 점에 대해 통찰력 있는 지적을 한다.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만민 제사장설”이 받고 있는 심각한 오해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제사장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고맙습니다만, 나에게는 제사장이 필요 없습니다. 나 혼자서 예수님과 잘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가 교회의 개혁을 위한 기본교의에 만인 제사장설을 포함시켰을 때 의도했던 바는, 그러한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이 아닌 서로를 위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그 길을 걸으라]
만민 제사장 주의(베드로 전서 2장 9절에 근거한)는 서로를 위한 제사장을 말하지 결코 교회의 제도권 밖에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그들은 마땅한 성도의 의무를 터부시 한다. 그들은 주일 성수나 기도, 헌금과 같은 문제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마음 중심이 중요하지 제도나 형식은 무가치 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기독교를 믿고 있는 것이다.
주일 성수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되는 자세이다. 그것은 예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둔다는 신앙의 표현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마음만은 나도 그 곳에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릭 워렌의 말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와 헌금은 어떠한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헌금에서도 특별히 십일조를 경멸한다. 그것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구약 시대의 인습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겔 36:37)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눅11:42)
나는 도대체 그들의 주장이 어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다. 성경을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지양해야 할 태도다.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교회의 제도권 안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았다고 해서 교회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이까지 같이 버리려는 오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