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8일 한화 설악리조트에서 있을 한화그룹 승급자 연수에서
리더십 역량 부분에 '창의력'을 주제로 특강을 요청받았습니다.
비보이 등 청소년들의 다양한 문화를 중심으로 자기 가치에 대한
의미를 중심으로 창조의 발현에 대해 정리한 원고입니다.
그림이나 각주 등이 보이지 않으니 관심 있는 분은 관련 자료를
파일로 첨부해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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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가치에서 나온다1)
글쓴이: 정건희2)
길을 가는 이유
아버지는 자칭 시인이셨습니다. 글도 많이 썼었고 집에 책도 많았었는데 술을 많이 드신 어느 날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청소년기 어느 날 술을 많이 드시곤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계신 날은 밖에 나가 놀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10대 초반 위인전과 여러 동화책 등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강압 비슷한 권유로 “방랑시인 김삿갓”등 성인들 대상의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아주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김삿갓은 멋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목적지 없이 정처 없는 자신의 길을 찾아 갔습니다. 목적지 없는 정처 없음이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었는데 김삿갓은 목적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안의 성찰을 위한 아주 정확한 목적지가 가슴 안에 존재했습니다. 우리네 인생과 연계해 보니 참으로 배울게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갑니다. 모든 이들이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길을 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가 가기 위한 목적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험상 삶의 길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까지도 삶의 길에 대한 최상위 목적지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말은 번드르르 유창 했지만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어떤 가치가 있는 삶의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넓고 판판하며 편안한 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끝의 목적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편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큰집, 고액 연봉의 안정된 직장, 예쁜 아내 등의 일반적인 생의 안정성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 큰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가슴속에서 욕망하는 물질적 탐욕을 채우기에는 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으나 한계가 있었습니다. 군 제대후 지방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제대하고 들어간 학교이어서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또래 학생들 대상으로 자격증반 과외까지 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이후 사회는 성실한 노력에 대한 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취업 이후에도 제 안의 저는 저를 무척이나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근래 대학 도서관을 가끔 갑니다. 학생들이 행정공무원 공부를 많이 합니다. 거의 반수 이상이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고생들이 공부를 좀 하면 대부분 교사와 학부모들은 교대를 입학하라며 권유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야 하는 이유는 안정적이며 시집을 잘 간다는데 있다고들 합니다. 의사 중 근래 가장 각광 받는 분야는 성형외과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입니다. 산부인과는 잘 가려 하지 않는답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수입이 적어서라고 합니다. 직업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이 안정성만을 위하며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 그 안정성을 모두 바꾼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사가 안정적 직업과 결혼관을 위해 스승이 되었을 때 그 아래에서 배우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삶의 목적지는 자기 삶의 편안함에 있을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참으로 미진해 보입니다.
삶의 가치
길을 가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길은 목적지를 향해서 갑니다. 넓은 길, 포장된 안정된 길이 중요한 게 아닌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갈 수 있는 길이 중요합니다. 삶의 길에서의 목적지는 내 안의 가치입니다. 가치란 “어떤 사물·현상·행위 등이 인간에게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임을 나타내는 개념”3)입니다. 인간에게서 삶의 가치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삶의 가치를 놓고 생활 안에서 편안함을 찾기 위해 부던히 노력합니다. 가치가 생활에서의 일상적 편안함이 아닐진데 그러한 물질적 목적을 설정한 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스트레스는 가중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육적인 욕망을 만족시킬만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조용히4) 방황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철학책을 뒤적이던 차에 내 안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산다.” 10대 후반 참으로 그럴듯했습니다. 그래 모든 이들은 어차피 죽기 마련이지. 따라서 그 삶에서 후회 없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겠다. 될 수 있으면 자유롭게 살아야겠다. 뭐 그런류의 개똥철학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유치한지요.
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교사의 최상위 가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치라고 여깁니다. 그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전이됩니다. 같은 직종을 가지고 있어도 다릅니다. 어떤 이는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점으로 어떤 이들을 할 일이 없어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위해 즐기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그 안의 가치는 전혀 다르게 파급됩니다. 우리 안에 그 가치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는 한 우리네 삶의 방향은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의 길에 나침반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평화의 가치5)
근래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보이(B-boy)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광고 등 상업적으로 많이도 내 보입니다. 불과 몇 년 전 가수 뒤에서 춤동작을 따라하는 정도의 백댄서라 칭하는 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외국의 굵직한 최고의 비보이 대회에서 상을 독식하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업적 성장과 외국에서의 성공사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성인들은 할 일 없는 청소년들의 그저 그런 하위문화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이 현실입니다. 그런 비보이에 배어 있는 의미가 평화적이며 안식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창조성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뭄니다.
제가 아는 비보이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1970년대 말의 뉴욕의 뒷골목은 흑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뒷골목에 남미의 경제 불황으로 먹고 살기 위해 불법 이민을 온 히스패닉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흑인들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세력다툼으로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브레이크댄스를 할 때만큼은 서로 간 휴전을 맺고 공격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레이크 댄스를 하면서도 고난위의 춤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승리를 맛보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더욱 고난위의 춤동작을 만들어 상대에게 보이고 승패가 갈리게 되었고 배틀(battle)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비보이 팀 간 기술을 보이며 승패를 결정짓는 명칭을 배틀(전투)이라 합니다. 이러한 비보이 정신은 주체적이며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롭기 때문에 어떠한 구조적 틀이 있을 수 없으며 무대도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춤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함께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지하철 역, 거울이 있는 건물 로비, 불빛이 비추는 공원 등 어느 곳이나 그들의 무대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바로 그 곳이 그들의 문화를 발산하는 세상의 중심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흑인과 히스패닉계 젊은이들의 배틀로 성장한 젊은이들의 춤을 우리 민족의 청소년들이 세계 최고로 성장하리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청소년들이 열광하며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사회적 환경에서 간단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입시 경쟁체제에서 자유롭게 무엇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여기저기 모두 막혀 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입시에 성공하라며 강요 하지만 그 성공의 최상위 대학이 그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는 맞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친구를 경쟁상대로 힘겨운 일상사에 직면해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막연하고 불안한 미래가 예전 미국의 뉴욕 뒷골목의 청소년들의 갈등관계와 유사하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요? 한 가지는 닮았습니다.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린다는 것...이러한 막막한 환경에서 비보이(B-boy)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우리 청소년들은 그 안에서 열광합니다.
우리 비보이의 가장 큰 특징 한 가지는 성인 중 그 누구도 청소년들에게 교본따라 가르치지 않았고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기술과 내용을 채워 왔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 그대로 따라하고 달달 암기하여 모방하는 문화가 아닌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춤동작과 기술들을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자발성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내 세계 제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보이를 위한 지역사회 공공기관의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간혹 청소년문화의집이나 수련관 등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있으나 매우 드문 현실입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에서 이러한 비보이를 현재 우리 성인들은 마음대로 이용하기만 합니다. 지역의 축제와 이벤트에서 섭외 일 순위를 달리며 매번 메인 무대에 올리기 급급합니다. 또한 상업적으로도 많이도 부각시키며 활용하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환경을 비보이들은 좋아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재즈댄스나 현대 무용 등의 예술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속적인 활동 공간이 없다는데 있으며 상업적 코드가 성장하여 비보이 정신이 퇴색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화려한 동작이나 외모중심이 아닌 비보이의 자유롭고 평화중심적인 기본적 창조정신이 소멸되어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뒷골목의 힘겨움에서도 춤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정신(가치)은 평화와 자율에 따른 창조성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말입니다.
차이의 인정
제가 지금까지 말씀 드린 비보이의 기원이나 가치는 또 하나의 억측6)일지도 모릅니다. 청소년들을 만나며 그들의 문화를 접하고 함께 한 이후에 제 안에서 정리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그저 브레이킹 댄스가 좋아서였다는 한마디면 모든 게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재밌다. 좋다.” 한 두 단어의 말이면 모든 게 정답일수 있습니다. 근래 청소년들의 핵심 키워드는 재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제 안에서 정립한 개념이니 편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청소년에게 물어 본 후 상의합니다. 아이들은 묻습니다.
“재밌나요?”
대다수 청소년은 재밌으면 행(行)합니다.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재미의 가치는 주동적 참여에 있습니다. 참여는 주체성을 의미합니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적 욕구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비보이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면 “단순히 비보잉을 재미있어 했으며, 좋아했고 열심히 해서 다른 나라 청소년보다 잘했다.” 그래서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의 문화도 접목해 보았다. 그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긍정적 창조의 핵심은 기본적인 내안의 최상위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매우 원초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자신의 표현은 긍정성을 발현할 수 있는 매우 원초적인 무기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개개인의 다양성에 의해 다르게 표현됩니다. 다양성은 창조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우리 삶의 핵심 가치일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은 다양성이 존재 합니다. 쌍둥이일지라도 60억 인구 중에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후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며 강조하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성의 억압에 의해 기계화 되어가며 획일화 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창조성이 말살되어지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우리는 군사독재의 환경을 접하며 수 십년간 억압받으며 살아 왔던 경험이 있습니다. 수백년간 조화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있었습니다. 유교적 조화의 중시는 다른 것을 인정하며 살자는 제 안의 가치와는 조금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문화일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의 문화는 획일성을 강화합니다.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옷, 똑같은 답을 요구합니다. 입시기계를 양산합니다. 다른 것을 인정하며 창조성이 발현되기에는 억압적 환경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틀을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 내 삶에서 직장인이 된 후 창조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쉽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첨부파일 : 창조는 가치에서 나온다(정건희 원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