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아주 우연히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책을 꺼냈습니다.
책장 속에 가만히 놓여져 있던 책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쑥 넣고는,
오고가며 읽으려고 그렇게 넣어두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펴든 순간,
떨어지는 종이 한장.
예전,
우리가 사랑할 때,
당신이 나에게 써준 편지였습니다.
장난스럽게 나를 부르던 애칭도,
당신이 즐겨 사용하던 당신만의 이니셜도,
꾹꾹 눌러담은 글씨까지,
우리가 예전 사랑하던 그때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편지 한장.
아니 지금은 그냥 종이 한장.
종이 한장이,
하루종일 나를 이렇게도 어지럽게 만듭니다.
그냥 우연히 나는,
책을 펴든 것 뿐이었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가방에 쑥 넣은 책 한권에서,
그 많은 시간들이,
그 많은 기억들이,
그 많은 추억들이,
쏟아져내렸습니다.
내 인생에서 짧은 한 순간,
당신을 사랑한 그때가,
고스란히 쏟아져 내린 오늘은,
이겨낼 수 없을만큼의,
아픔과 슬픔과 무력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오늘이 다 지나가면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편지를,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을,
아직도 다 버리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미워서,
또 그렇게 무너지고 맙니다.
내가 이렇게 오늘 하루를 힘들게 보냈는데,
당신은,
그때의 당신을 잊은채,
오늘의 당신으로만 살아갈테죠.
이미,
그때의 당신은 추억으로 보내고,
지금의 당신으로만 살고 있겠죠.
그래서,
그 추억에 힘들어하는 나만 바보인거겠죠.
우연히, 아주 우연히,
꺼내든 책 속에서 쏟아진 당신과의 사랑이,
오늘 하루 나를 너무 어지럽게 합니다.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