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에 대한 추억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곽경택 감독은 영화 '친구'의 흥행과 함께 개인적인 시련을 겪어야 했다. 법정다툼까지 일일이 기사화되면서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고 만든 영화라서 그런지 내가 감상한 '사랑'이라는 영화의 전체적인 총평을 한다면 꽤나 감독의 마음이 심란하고 어려웠음을 드러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영화 전반부 부터 시작해서 끝나기 까지 이 영화는 내내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지독하게 따라다니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인연을 따라가고 또 따라간다.
영화 '친구'의 흥행을 기대하면서 이 영화를 무작정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했다가는 개인적으로 적잖은 실망을 하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보는데 흥행면에 있어서도 이 영화가 남긴 성적표는 초라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배역 캐스팅, 암만 생각해도 오류
이 영화에서 선택된 주연배우 둘은 주진모와 박시연. 우선 영화 내내 대사에서는 부산풍 사투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닌다. 영화의 배경 역시 부산임을 추측할 수 있는 항구나 거리가 많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것이 곽 감독의 부산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사투리를 잘 소화해내지 못하는 두 배우의 캐스팅을 오류로 지적하고 싶다. 특히 여배우인 박시연의 대사는 초반부에는 어느 정도 사투리를 흉내내긴 하지만 중간에 일본으로 건너가 기생 역할을 하면서 다시 만나는 주진모와의 대화신 부터는 어느 새 그녀가 상당한 서울말이 섞인 어설픈 사투리를 소화해내고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연기에 대해서는 구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이 사투리 연기 하나만 지적을 했는데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글이 어디까지 길어질지 나로서도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만큼 이 영화의 분위기나 모티브, 구성 전체에서 볼 때 배역의 캐스팅은 그렇게 들어맞지 않았던 것 같다. 꼭 흥행과 연관을 짓는다고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구성 및 줄거리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이 어둡다. 낮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장소가 밤에 불을 피워놓은 공사판이나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는 배수관 통로나 일본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기생집이나 호텔 등 불을 켜놓은 상태에서 영화의 상당부분이 촬영된 것 같다. 나름대로 어두운 배경을 전체적으로 설정하기 위해서 밤에 촬영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지만 어찌보면 이러한 구성은 줄거리를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쉬운 복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하면 다소 무리일까?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 첫 사랑을 시작한 주진모와 박시연의 만남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시절과 성인으로 성장해서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는 한 남자와 여자의 우연에 가까운 '인연'을 줄거리로 사용한다. 영화 내내 비추어지는 박시연을 따라다니는 우울하고 슬픈 팔자(?)에 공감하고 함께 안으려는 주진모의 연기에 그나마 점수를 주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는 박시연을 지키기 위해 조직 폭력배의 중간보스를 칼로 찌르고 때론 싸우기도 하고 결국 교도소행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줄거리는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감독이 이 영화의 제목을 별다른 수식어 없이 '사랑'이라고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운명을 자신 홀로 안으려고 하고 그것을 못보는 남자의 태도가 전형적인 우리내 영화의 스토리가 아니었던가? 욕설을 비롯한 자극적인 대사가 다소 많이 나오는데도 이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나름 의외로 생각되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업소의 기생으로 취업하여 한국에서 큰 사업가로 변신해 무역을 하는 주현의 시중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만 박시연과 역시 업무상 주현의 뒷처리를 하는 역할로 취업한 주진모의 우연에 가까운 만남. 하지만 그 중심에는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주현이 있고 이 늙은이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결국 알아내고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하고 만다.
그래서 결국 박시연은 주현에게 용서를 빌고 자유로운 몸이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비극을 듣고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부산 앞바다에 뛰어들고 만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주진모는 죽지 않았는데 후에 박시연이 바다로 뛰어들어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이없이 뛰어들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다소 안타까움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자 한 것 같지만 내게 있어서 그러한 결말은 다소 예정된 결말이기는 했지만 깔끔하지 못했고 허무했다.
허무했던 이유를 하나만 들어본다면 지극히 불행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설정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로미오가 죽은 줄로만 알고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줄리엣과 그런 줄리엣을 보고 함께 생을 마감하고 마는 로미오의 모습을 영화 결말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해주고 만 꼴이니 말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영화의 제목이 '사랑'인만큼 처음에 볼 때에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줄거리가 다소 지루하고 난잡해서 비디오 리모컨을 돌려서 볼 정도로 영화의 러닝타임을 진지하게 소화하지 못한 나 역시도 이러한 영화평을 쓴다는 것이 어찌보면 어이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것은 한 여자에게 향한 한 남자의 희생과 그 희생을 자살로 마감하고 만 극단적인 사랑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고 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히 흉내내기도 어렵고 정말이지 영화의 소재 이상으로 보여지기 어려운 사랑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과 관련해서 이 영화는 주현이라는 배우를 통해서 남자의 소유욕과 집착을 나름대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이것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잘 잊혀지지 않는 잔상을 추억해보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보통 영화가 비극으로 끝나면 잔상은 오래 남지 않는가?) 박시연에게 있어서 주현은 매일밤을 모실 수 밖에 없는 존재 즉 주현에게 있어서 박시연은 조선시대의 애첩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주현을 생각해보라. TV에서 꽤나 거칠면서도 힘들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 역할로 많이 나오는데 깡패를 거느리고 있는 보스의 모습으로 나온 그의 이미지를 깨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큰 사업을 하고 있는 돈이 많지만 늙은 중년의 남자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손길은 그야말로 그 자신이 이룩한 성공신화라든지 쌓아놓은 부의 양만큼 붙잡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을까. 매일밤을 끌어안고 잘 수 있는 여자에 불과했지만 그 여자를 흠모하는 젊은이가 있었고 그 젊은이가 자신의 심복이라는 사실을 캐내자 태도가 돌변해 버리고 마는 어찌보면 본능에 매우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영화는 스케치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스토리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우리들의 삶이요 이야기일지 모른다. 여자에게 있어서 미모는 단순한 타고남을 넘어서 능력이고 때로는 돈을 쉽게 그리고 적잖이 벌 수 있는 수단이자 도구가 되지 않는가. 꼭 성매매라든지 불법적인 방법으로 벌이를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경제력을 넘어서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능력이다. 사랑(물론 하룻밤의 사랑이라 해도)을 사는 것도 부를 소유한 남자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게다. 주현이라는 큰 사업가에게는 하룻밤을 넘어서 꽤 오랫동안 박시연을 밤마다 곁에 두는 상대였으니 그 집착과 소유욕이 오죽 했을까. 주진모의 새로운 존재에 그토록 분노하고 죽이려고 한 남자의 잔인한 Instict를 대놓고 욕하고 비난하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사실이다. 그래서 영화는 애증을 그려내고 치정을 소재로 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요단계'를 넘어선 'All for Life"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인간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도 남는 소재가 된다.
영화평의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글이 길어졌다. 별로 길게 쓰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고 친구의 집에서 그것도 지루하게 리모컨으로 스토리를 돌려가면서 봤다는 관람자의 평이 열연한 배우나 감독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드는데 노력한 많은 Staff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자유에는 제작의 자유가 들어가지만 상업성을 넘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과 스토리의 탄탄함 그리고 자막이 올라가고 객석에서 일어서 출구로 나가면서 따라오는 감동같은 것을 제공해야 할 의무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사랑'은 부족함이 많은 영화이다.
곽경택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상도 사투리'와 '다소 많은 욕설' '깡패' '폭력'등은 한국영화의 주소재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적잖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다음 영화에서 그러한 다소 높은 기대를 해보는 것은 나뿐일까? 더 현실적이고 꾸밈없는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관람자와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그의 손에서 탄생되길 기대해 본다.
P.S 비록 미모의 배우 '박시연'은 아니지만 박시연과 꽤 많이 닮았고 아니 박시연을 훨씬 능가하는 그녀를 나는 영화를 본 날 저녁에 만났다. 영화 '사랑'에는 실망했지만 그 날 저녁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