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감독 : 토드 헤인즈
음악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
밥 딜런. 난 그를 잘 모른다.
밥 딜런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스무살 초입, 시골 촌년이 신입생이라고 들떠서 한창 서울 구경 다닐 때였다. 그해 봄 대학로 인켈소극장(지금도 있나?)에서 '노래모임 새벽' 콘서트가 있었고 선배들은 나를 데리고 콘서트 나들이를 했다. 물론 내 인생 최초의 소극장 콘서트 경험이었다.
공연 시작 전 스텝으로 보이는 한 분이 악보를 나누어 주었다. 처음 보는 노래였다.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을 배우는 게 공연 앞풀이. 진행자가 객석을 향해 무대에 나와서 불러볼 사람을 찾았다. 선배들의 등떠밀림으로 무대에 나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인생 최초로 소극장 무대에 서보는 순간이었다. 노래방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마이크 잡고 혼자 노래하는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멜로디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데다가 그때가 한창 무대나섬증(!)이 극심했던 시절인지라 매우 능수능란(?)하게 그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은 그렇게 내게, 한번 따라불러보면 누구나 부름직한 '참 쉬운 노래'(영화를 보니 절대 쉬운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아니더구만. 쩝... ㅡㅡ;;)를 부르게 한 외국가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노래연구(?) 비스꾸무리한 걸 하는 학회활동을 하면서 다시 밥 딜런을 듣게 되었지만, 워낙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무심했던 고로, 그저 '밥 딜런 = 포크락의 저항정신=반전운동'쯤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등식만을 머리 속에 담아놓은 채 지금까지 살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밥 딜런을, 다양한 인물을 통해 밥 딜런의 생애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는 다큐도 아니고 드라마라고 하기엔 또 뭐한 독특한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아임 낫 데어'.
제목 그대로 밥 딜런은 거기 없었다. 나와 같은 내용은 아니더라도 나처럼 단순한 등식으로 머리 속에 담아놓은 대중들 각자의 이미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 난 밥 딜런은 물론이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비틀즈도, 롤링스톤즈도 미국 대중음악사에 대단한 족적을 남겼다는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관심 또한 없이 살아왔기에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현대사에 대해서도 두루뭉수리한 윤곽만 그리고 있을 뿐 그 시절 그곳 대중의 정서가 어떠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영화는 락음악에 대해, 그리고 그 시절 미국의 대중음악 뮤지션에 대해, 미국현대사에 대해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꽤나 지적인, 그래서 나한테는 참 버겁고 안 어울리는 영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MBC 무르팍도사에 양희은이 나온 것을 보았을 때 가졌던 느낌과 비슷한 감상이라고 해야 하나?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중들의 정서를 예민하게 읽어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이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이가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은 그런 예술가에게 열광한다. 열광은 예술가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예술가에게 투영한 자신의 욕망에 대한 열광이다. 하기에 자신의 욕망, 혹은 익숙함으로부터 예술가가 엇나가기 시작했을 때 열광은 곧 살의에 가까운 분노로 돌변한다.
엊그제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가서 이승환과 김장훈, 윤뺀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팔딱팔딱 뛰었던 나를 떠올렸다. 2002년 월드컵으로 반짝 떠버린 윤뺀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을 때 속으로 구시렁거렸던 나를 떠올렸다.
이 영화에서 포크를 접고 일렉트릭 기타를 잡은 '쥬드 퀸(고전적인 포크에서 락으로 전향하던 시절 밥 딜런의 모습)'에게 비평가들은 마치 밥 딜런 때문에 저항정신이 훼손된 것인 양, 심지어 밥 딜런이 흑인폭력단체를 선동하는 선동가라도 된 양,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거기서 또 나를 발견했다.
물론,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전향해 자의였든 어쩌다 보니 그리 됐든 저항운동의 선두에 섰던 지난 시절을 악마의 시절로 회고하는 '존'의 모습을 보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쥬드 퀸을 조롱하는 영화 속 비평가와 대중, 그리고 나는 '음악 하나 듣는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다'는 진리를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그저 기타를 들었을 뿐이고 자신의 눈에 비친, 마음에 비친 세상을 노랬을 뿐이다. 열광을 분노로 바꾸어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얍삽한 비평따위는 개한테나 던져주는 게 옳다.
아이고, 말이 길었다. 음악이라는 것, 더 나아가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풀리지 않는 물음을 던져주는, 오랜만에 만나는 퍽 지적인 영화였다는 얘기를, 그래서 내가 소화하기엔 버거웠던 얘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다니... 쩝. 이것도 병이지 싶다.
P.S. 1 그러고 보니 난 밥 딜런 얼굴도 모른다. ㅡㅡ;;
P.S. 2 쥬드 퀸을 분한 케이트 블랑쉐. 밥 딜런의 페르소나 일곱 중 유일하게 여배우가 남장을 하고 연기한 건데, 가장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영화 포스터 속 더벅머리 담배쟁이가 바로 케이트 블랑쉐다. 완전 멋지다. 꺄~~ >_<
P.S. 3 영화 내내 흐르는 밥 딜런의 노래, 정말 좋다.
P.S. 4 오늘 하루종일 Travis, U2, Radiohead, Coldplay, Oasis의 히트곡들을 반복청취하며 일했다. 따져 올라가보면 이들도 밥 딜런의 후예들이 아닌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