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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에서의 죽음

최재철 |2008.05.22 14:04
조회 1,090 |추천 0


1. 죽음과 귀신 사람은 불멸의 정신이나 영혼을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것들은 죽음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유교에서는 영혼이나 개체정신이 영원하다고 생각했는가? 유교의 제사가 영혼의 영원성을 인정하는가? -유교의 영혼론은 귀신론이다. 유교에서 귀신은 유령이나 사탄등 잡신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닌 매우 중요한 철학적 용어이다. 즉 “하나의 존재자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복합개념이다.” “음(陰)과 양(陽)처럼 존재의 변화나 운동방식을 설명하는 기능개념이다. -귀신이라는 복합어에서 귀(鬼)는 사람이 죽어서 되는 특수존재, 신(神)은 오묘한 공능을 지닌 보편존재를 뜻했다.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유교에서 정신은 육체에 대립되는 비공간적 어떤 실체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보편적인 실체개념인 기(氣)가 현상화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3단계, 또는 3실재의 준말이다. 즉 일기(하나의 氣)가 현상화할 때 나타나는 정(精), 기(氣), 신(神)의 준말이다. 정은 육체적 정신, 신은 정신적 정신에 해당한다. 2. 선진(先秦)유가의 귀신론과 죽음에 대한 생각 (1) 귀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유물유칙(有物有則)의 형이상학적 존재관 (하늘관)은 고대중국사상의 원형이다. 이는 종교적인 인격천이나 천체물리학적 하늘 관념과 구별된다. 유교는 법칙적으로 이해하려는 합리정신이 투철함. “유가는 공자로부터 인문세계도 법칙적으로 이해하려는 합리정신이 투철하였다.” 공자는 제자 계로가 사후세계나 귀신을 섬기는 일을 물어왔을 때, ‘사람을 섬기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라 하고, 다시 죽음을 물었을 때 ’삶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유인희 교수는 “위 질문에서 춘추전국시대이전에 벌써 원시적 종교적 대상으로서의 천신, 지신, 인귀의 실재성에 대한 호기심이 엺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말을 해석해 본다면 [유인희교수의 주장]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이 별개의 이치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죽음이나 귀신같은 경험가능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정말 그런가? -“즉 죽음을 우리의 경험세계의 이치에 어긋나는 괴이한 실체나 현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즉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리(正理)나 상리(常理)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이 뜻하는 바는 다른데 있었던 것 같다. 즉 귀신섬기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요. 삶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는 말이다. 즉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에 죽음에 대해서 답하기기 어렵다는 말을 한 것이다. 결코 귀신이나 죽음이나 죽음이후의 상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최재덕). (2) 귀신의 이해 귀와 신의 복합개념 i) 원래 신(神): 곧 천신으로 상제(上帝)를 삼아 그 아래로 오제(오제)를 포함하는 신의 통칭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순수한 종교사상이라기 보다는 인간세상의 모습을 생각한 것으로 인간현실을 투영한 것이다. 다섯 위격의 神: 상제-> ... ->신 ii) 귀는 처음부터 “돌아간다”(귀: 歸)의 뜻을 지닌 개념이었다. 설문(說文)에서도 ‘사람이 돌아간바 귀가 된다’라 하고, 석언(釋言)에서도 ‘귀라는 것은 돌아감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돌아간 사람이라고 하였고 요새도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대에서는 현세이외의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사람이 죽으면 그 세계인 귀세계로 간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형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사람이 죽으면 다른 세계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을 뜻한다. 즉 귀(歸)는 사람이 죽은 후 별도의 세계로 가는 것을 설명해 주는 개념이다. 귀(歸)--->귀(鬼) iii) 이런 별도의 세계가 실재하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유인희교수). 반면 대부분의 다른 종교(무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는 실재한다고 믿는다. iv) 공자는 귀와 신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근본 뜻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심성(道德心性)을 가꾸게 하려는 것이었다. -인귀에게 제사드림으로 효(孝)를 -천신에게 제사드림으로 경(敬))을 길러주려 하였다. 최재덕의 질문: 그런가? 그렇다면 신이 존재해서 그에게 제사드리는 것이 아니라 도덕심성을 가르쳐 주기 위해 신이란 개념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것인가? 또한 도덕심성이 조상에 대한 존경심에서 온다고 보았다는 말인데 꼭 그런가? 그렇다면 조상이 없는 사람은 도덕심성이 좋을 수 없는 것일까? v) 공자가 귀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그의 인본주의 철학체계속으로 끌어드려 약화시켰다는 말이다 [유교수의 해석]. 이것은 공자가 ‘귀신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하면 가히 지혜로울 수 있다’ [논어, 옹야(蕹也)편]는 말로 설명된다. 사람으로 하여금 불가지의 세계에 매달리거나 의지하려는 생각을 멀리하고 가지(가지)의 산 사람과 현실세계를 관심으로 영역으로 확정시켜 준 것이다. 즉 유교는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사상이다. [유교수의 해석] 질문: 그러면 신이 없는데 신이 있는 것으로 전제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로 신이 있는 것인가? (신위) 이런 점과 관련 공자의 입장에 대한 묵자(墨子) 묵자는 겸애 즉 혈연사랑의 우선시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점에서는 예수와 비슷하다. 의 비판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묵자는 공자와 공자의 학파를 유(儒)라고 불렀는데 이는 제사를 지내주는 사람, 제사에 관한 전문가들을 비아냥거리며 붙인 이름이다. 그자신은 유가 아니었다 (非儒). 이원복,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 (세계의 종교편), (서울: 두산동아, 2003). 230. 묵자는 공자가 “귀신이 없다고 하면서 제례를 배운다”고 예리하게 비판했다. 공자는 “실체로서의 귀신 즉 영생하는 영혼이나 초자연의 신비적인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도덕적 사람으로서의 삶을 자율적으로 이룩하려고 하였다.” 김승희 편저, 죽음이란 무엇인가? 140쪽. 마치 칸트(Kant) 같은 입장이다. vi) 내세와 현세, 죽음과 삶, 귀와 신도 자연의 큰 법칙으로서 음양의 변역논리(變易論理)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상은 동양의 보편정신이다. 만물은 변역의 기체인 기(氣)가운데서 생겨나는데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생 (생겨남)은 우주 원기(원기)가 이와 같이 응집하여 펴나오는 것 (죽음)은 우주 원기(원기)가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어난 사람의 경우 (生) 정신의 인식작용--> 신(神) 기억기능--> 귀(鬼) 운동에서 펴는 것 (신) / 운동에서 굽는 것 (귀) 이렇게 모든 변화를 귀신이라는 보통용어로 설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神)은 사람이나 자연이 펴나오는 헤아리기 어려운 신묘한 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며, 천신과 같은 생전의 정신체가 그대로 존속한다는 실체개념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유교에는 천신과 같은 존재가 없다.] 사후 영혼의 실재성 문제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동양의 보편현상이다 (왕충: 기원전 20-90년).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정기(정기)때문인데 죽으면 정기는 소멸된다. 능히 정기가 되는 것은 혈맥에 의해서인데 사람이 죽으면 혈맥은 고갈된다. 고갈되면 정기는 소멸되고, 소멸되면 형체는 썩고, 썩으면 재와 흙이 되는데 무엇으로 귀가 되겠는가....무릇 죽은 사람은 귀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알 바도 없다. 무엇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사람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는 원기가운데 있으며 즉으면 다시 원기로 돌아간다. ...달리 말하며 우주안에서 생겨나는 것은 얼음과 같다. 음양의 기가 응취하여 사람이 되며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돌아가 기가 된다.” [최재덕의 설명: 즉 기(氣)-->체(體)-->기(氣)가 된다. 순환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므로 우주안에 귀신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죽어 정기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람의 생각과 상상력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訂鬼] [최재덕의 비판: 그러면 저자 유교수는 어느 것을 믿는가? 앞에서는 귀신이 된다고 설명하지 않았는가?] 귀신은 기가 요얼하여 생긴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요얼: 기가 울결하여 떠도는 것으로 억울하게 죽은 경우 그 기가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본다. 정리해 보면 (1) 사람은 앎의 기능을 가진 정기체이다. (2) 정기는 혈맥에 의해 성립된다. (3) 혈맥이 고갈되면 정기는 사라진다. (4) 정기가 사라지면 몸도 썩는다. (5) 몸이 썩으면 원기로 돌아간다. (6) 따라서 앎의 작용을 하는 귀는 있을 수 없고, 있다면 상상력의 산물이다. 결국 사람의 생명이나 생존원리는 정기로 설명된다. 그리고 정기의 대표적인 속성은 아는 작용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서구의 정신개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정기는 물질적인 몸과 본질적으로 다른 또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일원기의 하나의 존재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신과 육체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유기체적 관계가 있다. 그리고 아는 작용을 지닌 개체로서의 정기는 결국 소멸되어 일원기로 돌아간다. 이것이 개체의 죽음이다.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일원기 뿐이다. (이원론을 반대한다). 요약하면 기가 뭉쳐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은 정신(혼)과 육체(백)로 나뉘며 죽으면 다시 기로 흩어져 돌아간다는 말이다 (최재덕). 3. 신유가(新儒家)의 인간론 주자(朱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원리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함. 그가 말하는 존재원리는 이기론(理氣論)이다. 사람과 귀신 그리고 생사문제도 이 원리에 의해 설명된다. 1) 사람은 일원기이다. 다만 그 정기의 신묘한 작용력이 다른 존재들에 비해 탁월할 뿐이다. 그러나 죽으면 산화하여 일원기로 돌아간다. 2)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된 인귀(인귀)가 아니라 음양이 소장하면 만변하는 큰 변화의 개념이다. 정이천(程伊川): “사람이 죽는 경우 이미 변화하니 있던 것은 없어지고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패하여 다시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귀신의 원리도 이와 같을 뿐이다” (이정전서, 권 18). 영혼의 실재성을 단호히 부정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구원과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존재하는 것은 일기와 그 조화작용일 뿐이다. 사물의 생성에 관한 정이천(程伊川)의 주장: “ 대저 물이 흩어지면 그 기(개체기)는 드디어 다하되 다시 흩어지기 전 본래의 개체기로 돌아가는 이치는 없다. 천지 사이는 큰 용광로와 같아서 비록 살아 있는 생물체라고 하더라도 녹아서 또한 없어지니, 하물며 이미 흩어진 기가 어떻게 다시 우주에서 조화함이 있겠으며 또한 어찌 이 흩어진 기를 사용하겠는가. ...예를 들어 달이 뜨면 밀물이 되는데 이것은 이미 말랐던 그 물이 다시 밀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의 시작과 마침이요 열고 닫히는 것이다.” (권 5)라고 단언하였다. 혹 흩어진 개체 기가 다시 모여도 본래의 그것의 모습과는 다르다. 다만 원기만 남을 뿐이다. 유교에서는 심신(心身)보다 더 원자화된 개념으로 사람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런면에서 유교는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인간존재에 대한 설명을 주자의 설명을 통해 이해해보자. “이기 (理氣: 陰陽)의 나누어짐이 곧 일기(一氣)의 운행됨이다. 사람을 분석적으로 말하면 정(精)은 음(-)이고 기(氣)는 양(+)이다. 그러므로 백(魄)은 귀 (-)가 되고 혼(魂) (+)은 신이 된다. 기능적으로 말하면 스러져가는 것(消: -)은 음이요 펴나가는 것(息: +)은 양이다. 그러므로 펴 나오는 것은 신(+)이 되고 돌아가는 것은 귀(-)가 된다.” (성리대전, 권28). 즉 사람으로 응취한 뒤에는 ‘정’과 ‘기’ 그리고 ‘신’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다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정과 신의 의미및 상호관계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황면재) “사람이 생겨남에 오직 정과 기뿐이다. 정은 털, 뼈, 살, 피가 된다. [음 (-)] [백] 백은 음의 신 : 정의 신: 귀와 눈이 능히 보고 듣고 한 바는 백이 하는 것이다. 형체적 존재인 정이 된다. 백은 음의 신. 기는 호흡냉열이 된다. [양 (+)] [혼] 혼은 양의 신 : 기의 신: 마음이 능히 사려하는 것은 혼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유동적 생명기인 기가 된다. 여기서 신은 형기(形氣)의 주가 된다. 즉 모양을 결정하는 주체가 된다. 신은 출처가 분명치 않으나 기에서 나온 어떤 것으로 모양을 결정하는 주체라고 설명하면 적절하다. 백과 혼을 합하면 곧 음양의 신이요, 이(理)가 그 가운데 갖춰지게 된다. [유교에서는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혼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이가 정(靜)하면 인의예지의 성(性)이 되고 동(動)하면 측은수오와 공경시비의 정(情)이 된다. 위를 요약: (1) 일기가 음양으로 분화되면서 사람이 생겨났다. (2) 처음에 이루어지는 것은 정과 기이다. 음의 성질의 가진 기인 [음: 陰]과 양을 성질을 가진 기[양: 陽]이 합쳐져서 생명을 지닌 사람의 모습을 갖춘다. (3) 정은 형체적 존재기가 되고, 기는 유동적인 생명기가 된다. (4) 아직은 생동하고 생각하는 완전한 사람의 기능을 하기 위한 단계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신(神)기능이다. 신은 정과 기보다 더 곱고 신묘한 기작용으로서 지각과 사려등의 정신작용을 나타내는 주체이다. (5) 신에 의하여 사람으로서의 이성능력이 갖추어 지게 된다. 그것이 실현되면 혼백이라고 한다. 그 속에서 도덕성이 자라나게 된다. 사람다운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 육체와 정신은 주 실체가 아니라 일기의 두 표현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서양사상은 이분법으로 나누지만 딱히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분이 된다. 4. 신유가의 사생관 삶과 죽음은 하나의 연속적인 현상이다.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같은 이치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기가 응취하는 것이다. 생(生)은 (맑고, 곱고, 빼어나고, 온전한) 기가 응취된 것이며, 죽는다는 것은 그 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즉 죽고 사는 것은 기가 응취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주희는 이를 “기가 응취하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하였다. -정, 기, 신의 결합체인 혼백이 되는데 일정기간 존속하다가 그 기운이 다하게 되면 혼은 양으로서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음으로 땅으로 돌아감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혼과 백은 결국은 흩어져 가는 것이므로 종국에는 사라져 없어지고 만다. 먼저 혼이 분리되어 흩어지고 다음에는 기와 정이 흩어져 돌아가 인간이 영원히 없어지게 된다. -여기서 생겨나거나 흩어져 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치를 이(理)또는 자리(自理))라고 한다. [김소월의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도 그런 의미를 갖는다] “만물이 생기고 죽는 것은 이(理)이다. 이라는 것은 만물의 곧고 바른 것이다. 생기는 것은 응취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니 있다(有)고 하는 것이요. 죽는 것은 흩어져 볼 수 없으니 없다 (무)고 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만물의 형체다. 만물의 이는 일찍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귀신설은 무엇인가? 제사는 누구에게 지내는 것인가? 귀신이 있다는 것은 인간귀신을 말해 불명하는 개체존재가 있다는 말인가?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돌아간 선조의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않은가? 답: 항존적인 존재는 없다. 즉 살아있던 사람과 같은 존재인 귀신은 없다. 귀신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헛것을 본 것이다 (정자) 헛것이나 유령같은 존재는 이렇게 설명할 수 도 있다. 원한에 맺혀 죽은 사람: 일정기간은 그 신의 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죽으면 보통은 곧장 하나의 기로 흩어지지만 때로는 일정기간 뭉친상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흩어져 하나의 기(일기)로 변하고 만다. 주자의 설명: 사람이 귀신이 되었다는 하는데 그것은 특이한 이치다. 사람이 병들어 죽으면 그 기는 다 흩어진다. 갑자기 죽은자도 잠깐은 뭉쳐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흩어진다. 몹시 원한을 품고 죽은자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일기(一氣)와 취산(聚散:모이고 흩어지는)의 이치일 뿐이다. [응취(凝聚)의 원리] * 제사(祭祀)를 드리는 이유 유교에서는 선조의 영혼이나 정신, 귀신은 없다. 조상의 기가 더디게 흩어진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흩어진다. 그러므로 공자가 “선조가 있는 것 같이” 지내라고 한 것도 엄밀히 말하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제사를 드리는 것은 “성(性)은 곧 이(理)이니 취산(聚散)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응취하면 생기고 흩어지면 죽는 것은 기일 뿐입니다. 이른바 정신. 영혼. 지각이 있는 것은 기입니다. 그러므로 응취하면 있고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자의 제자) 그러니 무엇에 대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까? 주자의 대답: “조상의 정신과 영혼은 비록 흩어졌을지라도 자손의 정신과 영혼은 스스로 여기 있으니 조금은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같은 책) [최재덕의 질문: 여기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혼백이 있다는 것인데 흩어진 상태로 있고 후손의 정신과 영혼과 조금은 연결된다. 왜냐하면 기억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주자의 답은 개체는 없어졌어도 우주창생의 이치(理致)는 나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기가 생겨나고 없어지는 이치는 언제나 일정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조상의 신도 이 이치에 의해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자손의 정신과 영혼 속에 조상의 이도 구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이의 원리안에서 조상과 후손이 만나며 그 원리가 조상과 후손을 잇는다. 그런점에서 선재한 조상에게 공경심을 갖는 것이다. “존재와 존재원리가 조상으로부터 나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그 엄숙한 사실 자체에 대한 경건한 확인행위이다.” 제사는 존재와 존재원리에 대한 경건한 확인행위다. 또한 제사는 조상에게 만이 아니라 자연의 기와 나의 기가 공통되는 자연에 대해서도 지낼 수 있다. 그래서 옛날 한국이나 중국황제들은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지 모른다 (사직동은 제단이 있었던 자리면 제기동도 마찬가지다). [기우제] 5. 인간적 문화속에서의 영생 유교에서는 죽어서도 영원히 남을 나에 대한 미련이 없다. [동양의 철학사 거의 전체에서 만나는 견해이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죽은 뒤에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것은 소박하지 못한 것인가? 버리지 못하는 때묻은 욕심인가?]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죽으면 하나의 기로 돌아간다면 이생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1) 유교는 저승세계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그런 것에 관심갖는 사람을 비지성적이거나 비정상적이라고 경멸했다. 공자의 대답도 그런 의미다. 2) 유교는 삶과 죽음을 대자연의 법칙으로 봄으로 형이상학적인 이해의 문제로 돌렸다. 유교는 일회적인 인생자체에 몰두하였다. 현실의 삶에 대한 정열과 관심을 가졌다. [혹 이런 태도가 지나친 현실주의적 사고를 부추키지 않는가?} 3) 영생이나 영원에 대한 관심을 버림으로 인생을 멋있게 엮어가기가 쉬워졌다. 사람의 능력을 다 발휘하고 살다가 가려고 하였다. [최재덕의 질문: 소박하고 소탈한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는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질병, 고통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멋있지 않다.] 4) 죽음을 마침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죽음은 인생을 엮어가다가 마치는 엄숙한 과정이다. 이런 태도는 자기 책임아래 인생을 엮어간다는 자율의 도덕론적 관심으로 정착되었다. [질문: 인간이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부자연스럽고 욕심사나운 것인가?] 5) 후회없는 마감을 위해 노력하는데 삶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인간적 문화속에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는 살아 있는자는 가치의 순화와 창조에 전념하는 책임에 죽음의 공포와 영원의 꿈도 묻어버렸다. 6. 최재덕의 비판 1) 유교가 과연 신을 부인했는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수많은 제사기물들은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 아닌가? 수많은 제기들의 존재는 하늘의 신에 대한 제사의 증거다. 예: 은나라의 청동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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