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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미국소고기,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김훈정 |2008.06.02 23:26
조회 51 |추천 1

현재의 촛불문화제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단지 협상의 시시비비 여부를 따져야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단지 쇠고기 수입 거부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는가?

나는 후자라 생각하며, 그 이상의 무엇은 민주주의라 생각한다.


배후세력을 밝혀내라?


촛불문화제의 의미와 시민들의 요구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 한심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그래, 원한다면 배후를 알려주마.


촛불문화제를 촉발시킨 것은 분명히 미국소고기 수입조건 변화에 따른 광우병 우려 때문이었다.

이를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와 사실 은폐, 국세와 공권력을 이용한 선전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가길 바랐다.

정부와 반대세력의 논리가 어느 쪽이 맞는가, 그리고 세부적 사항의 시시비비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그들이 마지막 보루로 삼은 ‘확률론’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맞다. 사실 쇠고기를 수입해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촛불문화제의 시발점이었던 ‘광우병 공포’는 상당히 과장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인가?


광우병 공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며, ‘치료법이 없고’, 병에 걸렸을 시 100%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병은 ‘단지 고기를 먹었을 뿐인데’ 감염이 될 수가 있단다...(추가적으로 2차적 감염위험까지 있고...)


이는 과거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도 유사한데,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고, 치료법이 없고, 감염시 확실하게 죽는다는 사실과 동일하고, 에이즈에 대한 공포의 근본 원인이었던 ‘단지 섹스만 했을 뿐인데’ 감염되는 질병이어서 더욱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일종의 히스테리 증상까지 발생했던 점과도 유사하다.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면 물타기를 시도하며 웃음 지으려 하겠지만, 그러나 더 말하고 싶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평범한 소시민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 시민이 최대한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면.


일단 정육점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확인하며 구매하고, 식사나 술자리가 있을 때 음식점에서 어떤 고기를 사용하는지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한다. 어쩌면 소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아예 안 먹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또한 가공품에 미국소고기가 사용될 우려도 있으므로 각종 가공식품에 첨가된 고기의 원산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기재가 안 된 식품은 되도록 최대한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첨가물의 원산지를 항상 고정시켜놓는 것도 아니니 자주 먹는 식품들에 한해서라도 항상 기업의 행태를 모니터링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모든 행위를 하더라도 과연 내가 찾는 정육점이, 식당이, 그들에게 고기를 대는 유통업계가 그리고 기업이 원산지를 속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명박 정부는 분명히 한국 국민의 ‘생존권’을 미국소고기 협상 과정과 결과에서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이 협상 결과가 그대로 시행될 경우 위와 같이 ‘생활권’마저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한국 국민들이 이런 ‘불편함’들을 감수하며 ‘두려움의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정부와 대통령은 국민에게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들이니 어느 정도의 위임권과 재량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심각하게’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권리까지 부여받았는가?

또한 ‘확률론’이란 것은 그것이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도 그 단위규모가 커지면 ‘누군가’는 직격탄을 맞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직격탄을 맞는 누군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부도덕자? 성폭행범? 살인자? 아니 그는 ‘단지 고기를 먹었을 뿐’인 일상을 살아가던, 죽음이란 대가를 치를 어떤 이유도 갖고 있지 않은 일반 ‘시민’이다.


협상의 결과가 가져올 미래상의 문제만이 아닌 협상 자체에서도 문제가 있다.

일본 우파는 간단히 말해 쓰레기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 자기 국민만은 지키고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다.(방향이 틀려서 문제지)

그런데 좌빨세력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을 회복코자 하는 ‘우파’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무엇을 했는가?

‘지지부진’하던 쇠고기 협상을 단지 ‘2시간의 긴급회의’로 처리하신 능력은 무엇을 위함이었나?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를 국민에게 대령하기 위해서?

아니, 그 과정 속에 ‘국민’은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우파’인가?


또한 협상의 결과, 그것의 성과는 무엇이었는가?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는 없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설마 한국 대통령이 영광스럽게 미국 부시 대통령의 카트를 몰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겠지?



‘생존권’과 ‘생활권’, 그리고 도저히 참지 못할 협상의 ‘불합리성’에 분노한 여론은 인터넷에서 들끓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괴담론을 주장하며 ‘무시’했다.

이에 시민들이, 혹은 우리의 원더걸스가 촛불을 들었고, 여기에 더 많은 시민들이 가세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무시’했다.

정말로 문화제에서 시위로 이행하며 가두행진을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이명박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전/의경을 투입했다.’

저녁과 밤, 수만의 촛불들이 ‘협상 무효’를 외쳤다. 촛불문화제가 끝날 무렵 그리고 자정 무렵 내일의 일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 ‘적은 인원’이 ‘비폭력, 평화’의 태도를 유지하며 남아있을 그때... 이명박 정부는 그 ‘남은 사람들’을 ‘연행‘했다.

연행사유야 무슨 핑계를 못 대겠는가? 그러나 그 거짓말들에 누가 속겠는가? 경찰의 행위는 단 한가지로 요약된다. ‘위협’이다. 누구에게? 바로 ‘국민’에게 ‘위협’을 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일방적’으로 시민을 억압하고 귀를 닫은 정권은 ‘고시를 강행’했다. 그리고 촛불문화제에선 ‘이명박 탄핵’의 구호가 나왔다. 그리고 ‘청와대 진격’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또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살수차’



대의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대표자에게 위임하지만 그 위임은 ‘백지위임장’을 건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당선의 의미는 시민들 ‘위’에 군림할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 ‘아래’에서 그들을 위해 노력할 의무이자 권리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권한과 권력을 가진 일방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거부하는 체제이다.(그래서 교과서에선 삼권분립이 붕괴한 체제를 그것의 명색이 어떻든 ‘부패’한 정부라고 가르친다.)

대의에 의해 선출된 정부라도, 그들이 ‘소통’을 거부할 권한까지 부여되지는 않았고,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무언가를 말한다면, ‘민의’가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다면 ‘민주정부’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대안을 구성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만족하진 못하더라도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정책이 수립되었다는 인식을 시민 일반이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소통 부재’를 사과한다는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을까?

술자리의 한풀이론 안 되니까, 인터넷에서의 의사표출로는 도저히 그들이 들어먹질 않으니까, 일상에서 행위로 나선 촛불들을 그들은 어떻게 대했는가?

‘민주정부’가 국민의 ‘의사표현권’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시’해도 되는가? 이렇게 ‘억압’해도 되는 것인가?


이는 비단 쇠고기 협상에서만의 문제가 아닌데, 한반도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등에서 그들은 ‘밀실’에서 정책을 협의하고,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고시하며, ‘반대의견’을 소위 ‘좌빨’로 규정하며 규탄하고 외면했다.

또한 여론의 비판에 뭇매를 맞고 ‘철회’하겠다던 ‘한반도 대운하’를 ‘4대강 재정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추진하려 했다. 그리고 이것은 한 연구원의 양심고백에서 명명백백히 드러나듯이 이명박 정부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국민 기만’



쓰다 보니 길고 긴 장문이 되어버렸는데,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답변을 하겠다. ‘누가 촛불시위의 배후인가?’

바로 ‘민주주의’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그리고 점차 확대되는 ‘말살 행위’에 저항한다.

정말로 당신이 ‘배후’를 색출하여 감옥으로 처넣고 싶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아니 이미 ‘마지막 숨결’을 끊어버리기 위해 열심히신 당신이지....



08년의 촛불문화제는 87년과 닮아 있다.

논란의 세항목들, 여러 행위의 세부적 시시비비의 문제들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중요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행위가 시대의 ‘본질’과 닿아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항의 여러 단면들의 세부적 시시비비를 넘어 87년까지의 민주화 항쟁은 ‘독재 타도’라는 사회의 ‘근원적 억압’, ‘부조리의 근원’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정당성과 시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08년의 이명박 정부와 쇠고기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들은, 현재의 反민주적 행위와 反민주정부에 대한 ‘민주주의 수호’의 행위라는 점에서 분명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본인이 이 글을 쓰고자 생각했던 때는 아직 ‘살수차’가 동원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마지막 글귀에는 이런 말을 쓰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반독재,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너무도 많은 슬픔과 희생을 치러야 했다. 현재의 저항 역시 反민주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투쟁이지만 그러나 민주주의의 제단 위에 또 다른 희생자를 얹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다. 2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연속상에 이 시대를 놓는 것은... 부디 이 물결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희생자 없이 이 저항이 결실을 성취해 끝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렇지 못한다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니까.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희생당하신 분이 나와 버렸다. 너무도 안타깝고, 너무나 슬프다.

왜! ‘2008년’의 한국에서 누군가가 다쳐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울부짖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가?

이 모든 문제는 무엇 때문인가?


아래는 광주민중항쟁에서 시작하여 87년 6월 항쟁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100℃란 만화다.

정말로 이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가? 정말로 이 시대로 돌아가려 하는가? 또다시 민주주의에 피를 부어야 하는가?

http://610.or.kr/museum/bbs/sub03e_000.html 


글의 제목을 민주주의의 ‘죽음’이 아닌 ‘위기’로 쓴 것은 아직까지 지속되는 촛불들의 저항에서 한 가닥 가능성이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부디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되어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16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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