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싸워 이길 정부는 없다
[중앙일보]
출범 석 달 만에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차도를 점령하고, 가두행진을 벌이는 대규모 불법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엿새째 계속됐다. 밤마다 도심의 도로가 막히고, 무더기 연행과 불구속 기소가 반복되면서 공권력을 희화화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발표한 그제 서울에서만 1만 명이 모였고, 지방 12개 도시에서도 4000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주말에는 더 큰 인파가 모일 전망이다.
정부의 인사 실패와 무능, 실정(失政)에 국민이 실망하던 차에 쇠고기 수입 파문이 분노의 기폭제가 됐다. 수입고시 발표도 국민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보완조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밀어붙였다. 정부는 좀 더 세심하게 민심을 살폈어야 한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물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세력의 문제점은 별개다.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검역주권 확보 등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이 다 해결됐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정부가 설명을 해도 국민이 안 믿으면 소용이 없다. 단체급식 선택제, 단체급식에 대한 학부모 감시 강화, 소비자단체가 참여하는 원산지 표시 감시 강화, 업계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중단 자율 결의 유도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동원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줘야 한다. 정부의 판단이 옳다고 무조건 우길 일이 아니다. 국민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상황이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보완대책만으로 해결될 위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은 물가 불안에 떨고 있다. 고유가 때문에 어민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화물차는 운행을 멈췄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가면 물류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 경상수지는 5개월째 적자다. 외환위기 후 최대 규모다. 올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서민들을 위한 제대로 된 민생대책 하나 내놓은 것이 없다. 정치권이 민의를 수렴하는 역할을 못하니 국민이 거리로 나서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졸속 협상으로 국민이 낸 혈세를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광고에 쏟아붓고 있는 한심한 장관을 비롯해 무능하고 무책임한 장관들부터 바꿔야 한다. 인적 쇄신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서민을 위한 특단의 민생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통령부터 바짝 엎드리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마음과 가슴에 다가서는 것만이 현재의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이다.
거리에 나선 국민도 생각할 것이 있다. 출범 3개월밖에 안 된 정부에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시위를 하더라도 법을 지켜가며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 일부 불순세력의 선동에 이용당할 가능성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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