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건 도대체 뭐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거지?
저 교활한 웃음의 의미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거지?"
제임스 캐그니가 이루어놓은 전설적인 '비아냥거림표의 섬듯한 미소'는 비로써 반세기를 지나서 뉴저지 출신의 마귀같은 사내, 잭 니콜슨에의해 재현되었다. 그는 거리를 걷거나 스튜디오 안팎을 드나들때도 저 미소를 잃거나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어떤 이는 그런 그의 음산한 미소를 두고, 그가 제발 정신병동에 갇힌 1970년대의 "뻐꾸기 둥지" 안에서 하루빨리 뛰쳐 나오기를 고대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처음 그와 마주 한것은 로만 폴란스키의 필름 느와르 <차이나타운>에서였다. 그는 멋진 38구경 권총을 아무렇게나 싸질러대며 헝겊처럼 버려진 자신의 스트라이프 슈트를 해괴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있었다. 난, 그의 슈트를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아마 그랬다면 난 총맞아 죽었을테지만..말이다..

두렵긴 하지만 그에겐 남다른 매력이 만만치않을만큼 비일비재하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다닐 나이임에도 빤빤하게 예쁘고 쭉빵하게 흐르는 몸매의 여인들과 헐리웃 플래닛의 가장 고급스런 탁자에서 식사를 즐긴다. 그날 그는 기분이 몹시 좋았나부다. 지독히도 짠돌이인 그가 마주앉은 여자의 환심을 사기위해 거금 '10달러'를 자신보다 더 늙은 웨이터의 손안 가득히 들려주며 예의 '그 우라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정도면 마주앉은 여인은 그가 가끔은 '돈지랄'을 할줄 안다는 걸 충분히 알게될 것이기때문이다. 뉴저지의 작은 도시, 넵튠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영화계에 뛰어든 60년대의 암울한 시기를 대부분 B급영화나 로져 코만의 컬트 영화에서 요란스러운 깡패나 사이코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 시기는 몹시 길었다. 그는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고 영화계에서의 보편적인 권태로움을 비관하기까지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뜻밖의 제의가 들어온것은 60년대가 저물던 바로 그해, 1969년이었다. 그처럼 독립영화를 전전하던 '폰더 가의 아들' 피터 폰더와 괴기청년, 데니스 호퍼와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그에게 <이지라이더>의 '조지 핸슨'역을 제의했다. 비록 짧은 씬이었지만 그에게는 그의 가치를 입증해줄만한 최초의 배역이였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MGM 스튜디오의 일개 메신저보이로 출발한 그의 이력은 <이지라이더>의 의외의 성공으로 그후 많은 영화관계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그는 다음해, 밥 라펠슨과 첫 번째 조우를 했다. <파이브 이즈 피시즈>의 로버트 듀페는 곧 잭이었고 잭은 로버트 듀페를 할만큼 완벽한 연기를 펼쳐보였다. 그는 그때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1974년의 갱스터물 <차이나타운>을 거쳐서 바로 이듬해 그는 정신병동에 갇힌 정신병자들의 블랙 코메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자신의 연기영역의 정점에 들어섰다. 그의 탁월한 변신과 흡인력있는 연기는 곧바로 오스카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그는 오스카 트로피를 하늘 높이 쳐들고 그간의,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 길고도 험했던 무명기의 서러움으로부터 해갈을 맞은 듯한 웃음을 흘렸다. 잭..파이팅이다.. 1980년, 그에게는 또하나의 획기적인 이미지컷이 부여되었다. 훗날, 지금으로서는 고전적인 양식이 되다시피한 샤크한 그의 미소가 다시한번 언론매체는 물론, 팬들의 광적인 추종을 불러일으켰다. <샤이닝>에서의 디테일한 표현력은 브래드 피트(12 몽키스)와 덴젤 워싱턴(트레이닝 데이)의 연기양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광기에 가까운 그의 '웃음'은 그 당시의 여타로 제작된 많은 그의 영화들에 있어서 부득이한 제한을 가할만큼 문제점 또한 발견되는 불균형을 이루기도하였다. 그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안정을 취했다. 2년간의 외유(?)를 끝으로 그는 다정한 옆집 아저씨로 돌아왔다. <애정의 조건>은 그에게도 사랑할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다시 2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는 자신의 트렌디나 다름없는 느와르 영화인 <프리찌스가의 명예>를 지키기위해 다시 총을 잡았다. 하지만 이전처럼 마구잡이 쏘아대는게 아니라 정돈되고 절제된 총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날도 그는 멋드러진 블랙슈트를 걸치고있었다. 1989년 그는 블록버스터 <배트맨>의 성대한 파티를 끝낸다음 고집세고 정의감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해군 장교로 분한 <어 퓨 굿맨>의 하얀 제복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는 그때 처음 나와 절대 물러설 수없는 한 판 승부를 벌였다. 그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누군가는 기필코 이겨야하거나, 죽살나게 얻어터져서 만신창이가 되어야할 운명이었다.캐피 중위(톰 크루즈)는 오로지 합법적인 문서를 들이대며 만삭의 나단 대령(잭 니콜슨)을 몰아세웠다. 결국 캐피는 이겼지만 톰은 여지없이 잭에게 얻어 터져서 아주 보기좋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후 그는 여자친구와 저멀리 카리브 해안의 비치릴리스에서 끝내주는 저녁을 즐기며 머지않아 다가올 자신의 로맨스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90년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평생, 자신의 연기 경력에 결코 이름을 올리지 못할것만 같았던 사랑이 도래하기 시작한것은1997년 여름이었다. 속이 차고 평상심을 잃지 않은 여인 캐롤(헬렌 헌트)을 만난 것은 소설가 멜빈 우달(잭 니콜슨)로서는 하나의 변혁이며 폭풍같은 순간의 포맷 상태, 그 자체였다. <이 보다 더 좋은순없다>, 그랬다. 그녀보다 더 좋을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최고의 매리트였다. 서툰 두 사람의 사랑도, 서툰대로 맛깔을 내고 향기를 뿜어내보였다.

한 번의 로맨스를 끝내고 그는 침체기와 같은 시기로 접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배우로서의 직업적인 일이외의 조급함이 없었기에 그리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제작자로써 자신의 소요를 잠시 잊었다. <이 보다 더 좋을순 없다>의 성공에 매료된 감성적인 여류감독 '낸시 마이어스'가 그를 불러냈다. 그에게 다시한번 사랑의 방정식을 묻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그에게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단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거침없이 늙어 쪼그라던 자신의 엉덩이를 수치하지도 못하고 적나라하게 까발려보였다. 그 참.. 늙은이의 엉덩이치고는 제법 섹시했다. 그래서일까.. 다이안 키튼의 입도, 아만다 피트의 젊은 입술도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끝내 '영건' 키아누 리브는다이안의 팔짱을 껴보지도 못하고 노인내의 금슬좋은 망중한을 그저 바라보기만했다. 2006년 그는 요즘 방나게 잘나가는 젊은 끄나풀들과 어울렸다. 그것은 대단한 싸움이었고 끔칙한 세대간의 충돌이기도 하였다. 마틴 스콜세지는 처음부터 프랭크 코스텔로를 그에게 남겨둔 상태였다. 은밀하게 조여오는 사내들의 주변 상황은 목을 조르듯 '부르르'하며 떨려왔다. <더 디파티드>의 그러한 숙면은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이상의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커리어의 육중한 무게와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었다. 그는 늘 예리하고 정확하며 단번에 사냥질을 서슴지않는 무서운 지략을 갖춘 갱스터로서의 전형을 선보이며 1930년대의 미 경제 공황기를 다시 부추키는 듯한 고전적인 비쥬얼을 그려내보였다. 지금 그는 또다시원하지않는 은둔으로 들어가있다. 하지만 또, 언제 불시에 우리곁에 나타나 '그 우라질 미소'를 보여줄지는 아무도 모를일이다. 그는 그래서 나는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를 갖도록 하는지 모른다. 그가 항상 건강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