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과학기술부 폐지 움직임에 따른 카이스트 '최광무' 교수님의 글입니다.
(강의 하실땐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 줄 몰랐습니다.)
" 새 정부의 과학기술부 폐지 움직임을 바라보며 "
KAIST 교수협의회장 최광무
새 정부가 정부 조직을 크게 바꾼다고 한다.
다섯 개 부서를 줄였다고 자랑이다.
왜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 바뀔 때 마다 있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과학기술부를 폐지하려고 한다.
과학기술부 폐지 논의는 처음이 아니다.
IMF 직후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와 국민의 반대로 과학기술부는 다시 부활되었고,
도리어 과학기술부장관이 부총리도 겸하게 하여 과학기술의 위상을 높였다.
일제 35년 압제, 남북분단, 6.25 동족상잔으로
세계 최빈국으로 떨어졌던 지난 역사를 생각해 보라.
그 후 50 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보통신,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등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계 12위 규모 경제 강국이 되었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정치인들의 노력이 아니다.
회사에서 연구소에서 학교에서, 일하는 날 쉬는 날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불을 밝히며
묵묵히 자기 일을 했던 과학기술자들의 몫이 제일 크다고 본다.
격물치지, 성의정심(格物致知, 誠意正心)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大學)에 있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앞에 있는 말이다.
공자가 본 올바른 지도자(수신제가)는
과학기술(격물치지; 세상 무서움)과 인문사회(성의정심; 사람 아름다움) 모두를 공부 한
사람이다.
격물치지가 과학기술의 몫이라면 성의정심은 인문사회의 몫이다.
2000여 년 전에 이 두 공부가 함께 가야한다고 바라본 공자는 역시 큰 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8년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서 사회과학은 너무 크고, 과학기술은 너무 작고,
인문은 초라하다.
인수위 초기에는 교육부를 없애고, 과학기술부에 교육의 최소한을 가지고와
과학기술을 강화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던 것이 슬금슬금 과기부 기능분리 폐지 이야기가 나오더니, 인재과학부가 슬그머니 교육과학부로 바뀌었다.
인수위원 중에 과학기술을 전공한 사람은 단 한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200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현재 위치이고 그 결과가 과학기술부 폐지이다.
장영실을 파격적으로 등용하여 과학기술과 문화의 큰 꽃을 피웠던 세종대왕의 깊은 뜻과,
실사구시(實事求是; 객관적 사실에서 옳은 길을 찾는 것)를 주장하며 무너져가는 조선왕조를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노력했던 정약용 같은 실학자들을 잊지 마라.
그 분들이 우리 큰 스승이다. 그 분들이 일궈놓은 정신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 우리를 만들었다.
국민들은 돈(경제)과 일자리(고용)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노동력에 의존해서는 더 많은 돈과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국민소득을 3만 불, 4만 불로 늘리려면 ‘위험하지만, 큰돈을 가져오는(High Risk, High Return;
큰 위험, 큰 결과)연구’를 해야 한다.
성공률이 1%도 안 될지 모르는 위험한 도전에 우리 미래가 있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부 기능 중 과학은 교육과학부로 기술은 지식경제부로 보낸다고 한다.
왜 과학과 기술을 찢어서 이리저리로 보내려는가?
지금은 과학과 기술이 분리된 무지한 19세기가 아니다.
과학이 기술이고, 과학기술이 곧 문화인 융합의 21세기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문화까지가 모두 융합된 위험한 도전에 국민소득 4만 불의 미래가 있다.
그리고 위험한 도전은 민간 기업이 아닌 정부만이 도와 줄 수 있다.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이공계 기피 현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 왜 그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가?
과기부 존속 주장이 단순한 부처이기주의라고 생각하는가?
정치인들은 자신이 수신제가했다고 주장하기 전에 얼마나 격물치지와 성의정심 공부를 하였는지 깊이 고민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이공계 기피현상이 크다고 하여도, 아직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많은 머리 좋은 젊은이들 대한민국 미래 과학기술을 끌어가려고 밤을 새워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다. 그들을 다 의대로 법대로 내몰려는가?
"의대는 가슴 따듯한 젊은이들이,
법대는 뜻이 올바른 젊은이들이 가면된다."
다시는 이공계 기피라는 말은 꺼내지도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