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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더 아름다운 어머니 오드리 햅번.

이준호 |2008.06.09 21:19
조회 310 |추천 3


 


 


오드리 햅번은 1929년 벨기에 브르쉘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 제임

 

스 .A. 햅번 레스톤과 네덜란드의 유서 깊은 남작가문 출신인 폴란

 

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4살때 영국으로 건너갔고 6살때 런던의 기숙 학교에 입학했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얼마 안 있어 부모가 이혼하여 오드리 햅번은

 

어머니의 고국인 폴란드에 가서 살았다.

 

나치 점령지의 폴란드에서 굶주임과 공포등 옷갖 고초를 겪었으며


이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평생 해보고 싶었던 배역이 '안네 프랑크'

 

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반 나치 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후일 이러한 경험이 아

 

동 구호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기로 작용한다.


 

 

19살때 단신으로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 발레 학교에 입학 하였으

 

며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던 중 1950년 마리오 덴비 감독의 눈에 띄

 

어 <낙원의 웃음>에 단역으로 데뷔하였다.


 

 

이 후 <젊은 아내의 이야기>, <첫사랑>등 6개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 하였으나 크게주목 받지 못하고 프랑스 몽테 카를로에 체류하

 

던 중 에 출연 하는데 이곳에서 만난 <지지>의 작가 꼴레뜨의 눈에

 

띄여 그녀의 작품 <키키>의 브로드웨이 무대에 주연으로 캐스팅되

 

었다.  공연은 성공이었고 이 작품을 본 '윌리엄 와일드'가  그녀를 

 

<로마의 휴일>에 캐스팅 하여 은막의 주연배우로  데뷔시켰으며 

 

<로마의 휴일>은 단번에 흥행타를 날리며 온 유럽을 가냘픈 몸매의


신인 여배우로 들썩이게 했다.


 


53년 <로마의 휴일>로 오스카상을 거머쥐고 그 후 12년동안 15개

 

의 영화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 후 결혼과 이혼으로 아픔을 겪으며 66년 스크린에서 은퇴를 한

 

다.  이혼 후 두 아이와 함께 살면서 오드리 햅번은 유니세프의 평

 

화 대사 역할을 수행하며세계의 기아 아동 구호를 위헤 앞장 선다.


 


 


아프리카 기아 아동을 위한 자선 행사를 하였으며 88년 부터는 유

 

니세프 친선 대사로 베트남, 이디오피아, 수단 등을 방문했다.


젊어서는 공주같은 외모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배우로서

 

의 삶을 살았고  늙어 가면서도 젊었을 시절의 가냘픈 몸매와 고움

 

을 유지한 채 평화의 사절로 이름을 높였다.


 




 


 


 


1992년, 소말리아 어린이들을 위한 그녀의 자선 활동은 전 세계적

 

으로 널리 알려졌다.


오드리 햅번은 뒤늦게야 대장암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11월 미국의

 

로스 엔젤리스에 가서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완쾌되지 못한채 스위스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아오다


1993년 스위스의 제네바호의 톨로체나즈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친

 

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63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톨로체나즈 마을은 그녀가 66년 영화계를 은퇴해 두명의 아이를 키

 

우며 지내던 곳으로 그녀는 레만호와 눈덮인 몽블랑 알프스가 바라

 

보이는 곳에 안장됐다.


 

젊은 햅번의 청초한 아름다움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눈가는 주름으

 

로 변했고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고귀해 보이던 자태는 이웃집 노

 

부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녀의 주름진 눈에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가의 결연한 의

 

지가 깃들였으며 나이를 들어서도 여전히 날씬하고 큰 키는 그녀의

 

구호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젊은이 못지 않게 바빴는가를 말해 주었

 

다.


 


그녀는 1993년 3월 2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도주의 상'을 수

 

상 할 예정이었으나 영광을 안기 두달 전에 세상을 떠난것이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영원히 그녀를 소녀로 기억하는 많은 팬들이

 

눈물을 흘렸으며그녀의 살아 생전 구호가로서의 업적에 많은 이들

 

이 존경과 애도를 나타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느 말아 있듯이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출세작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공주같이 아니 그보다 더 고귀하게

 

사용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다음

 

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이웃과 나눠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씩 어린아이의

 

손으로로 하여금 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께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자신이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며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

 

져야 하며 병으로 부터 치료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 부터 교화

 

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 받아야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내가 만약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 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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