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한창이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거리는 이제 광장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1987년과 지금이 다를 바 없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의 촛불은 그 시절과 분명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주체가 다르다. 이념이 다르다. 결집된 형태가 다르다.
시민들은 87년 당시처럼 운동권의 조직적 활동에 기반해 거리로 나선 게 아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다. 처음 시작은 ‘개념 없다’고 여겨졌던 여고생들로부터다. 이들은 UCC와 문자메세지를 통해 소통한다. 정부는 실체 없는 이들을 잡아들이려 하지만 잡을 수 없다. 정부의 행보는 바람을 손에 쥐려는 행위와 같다. 이런 이유로 새로 등장한 주체는 강력하고 자발적이며 역동적이다. 이들은 분명 과거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새로운 주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래로 전세계가 추앙하는 이념 혹은 가치는 자유․평등․박애다. 이 이념은 진정으로 가치 있다. 허나, 한국 사회에서의 촛불은 자유․평등․박애가 이념적 기반이 아니다. 현재의 촛불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촛불을 든 이들 중에는 과거 타협할 수 없는 대립관계에 있었던 이들도 있다. 그런 그들이 동일하게 촛불을 든다. 이 현상은 촛불이 새로운 이념으로 뭉쳤음을 반증한다. 시민들은 ‘살려달라’고 나왔다. 이들이 내새우는 가치는 ‘생명’과 ‘생존’이다.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자유․평등․박애와는 다른, 이것이 특화된 것이 아닌 새로운 이념 새로운 가치 ‘생명권’과 ‘생존권’이다.
과거 집회 현장은 심각했다. 모두들 긴장상태에 있었다. 자리를 뜨면 뭔가 지탄을 받을 분위기였다. 현재는 다르다. 촛불은 춤춘다. 노래한다. 사람들은 이곳 저곳에서 타인과 자발적으로 대화한다. ‘촛불시위’가 아닌 ‘촛불문화제’인 이유다. 혹자는 ‘문화제’의 형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나, 그것은 과거의 자유․평등․박애라는 이념으로 현재의 새로운 이념을 보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이념은 저급하고 미달한 수준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제의 형태이기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강력한 감화력을 지닌다. 역사는 문화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지닌 형태인지를 증명해 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문화제의 형태를 유지하고 촛불을 들어야 한다.
‘계속 촛불만 들고 있으면 어쩔건데?’라는 의문이 많다. 이 질문이 바로 핵심이다. 과거의 이념의 잣대로 현재의 새로움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생존권’과 ‘생명권’은 우리 사회가 처한 총체적인 위기(비정규직 사태, 교육 자율화 문제,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를 아우를 수 있는 권리요구다. 과거처럼 협상을 무효화하고 정권의 전복만이 의미 있다 여겨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이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동일한 문제를 또 다시 답습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 모두가 즐겁게 향유하는 촛불이 계속 유지되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람이 쇠파이프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보다 정부가 두려워하는 핵무기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