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아나운서의 지상파 방송 복귀를 바라보며
2006년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였던 베스트셀러 의 대리번역 사건으로 SBS파워FM 를 포함한 지상파 방송에서 하차하였던 정지영 아나운서가 2년만에 코너의 패널로 지상파 방송에 복귀하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등을 통해 워낙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던 아나운서인지라 정지영씨의 복귀는 많은 이들의 환영 속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을 바라보며 나는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리번역 사건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연예인들이 흔히 하듯 1,2년 정도 쉬고 복귀를 할만한 그런 사건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유명인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대리번역이 우리 출판계에서 종종 행해져 왔다고는 하지만 그건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아나운서라면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위였다.
더구나 정지영씨는 단지 이름만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로서 쌓아온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각종 신문, 잡지의 인터뷰와 대규모 사인회를 포함한 각종 수단을 통해 책의 광고에 앞장서왔다. 어디 그뿐인가. 의 성공으로 아나운서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해왔고 문제가 생기기 직전까지도 출판사와 속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늘상 그래왔듯 가만히만 있었어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을 매스컴에다 하루에 100페이지를 번역한 적도 있다는 둥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이 바로 그녀였고, 결국 이를 참지 못한 몇몇 번역인의 고발이 이 사건이 터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되려 일간지에 글을 기고한 번역인과 싸우는 선택을 한 것도 그녀였고 실제 번역가의 양심선언이 터지자 언제 그랬냐는듯 방송에서 하차하며 변변한 사과도 없이 흐지부지 파문을 마무리한 것도 그녀였다.
게다가 가 어떤 책인가. 현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네 노력이 부족하니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하다"라고 공공연히 조롱하던 책이 아니던가. 제법 그럴듯한 문장과 논리로 현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한 인간의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그저 개인의 차원으로 귀결시키던 쓰레기가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쓰레기의 출판에 책임있는 자로서 책의 내용과 사회적 효과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를 하기는커녕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데 얼굴마담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결국 이 성공한 젊은 아나운서의 광고질은 이런 쓰레기를 1년씩이나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려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대해 자기개발서에 열광하는 우리 시대의 멍청한 20대 독자들은 그저 "과연 정지영이다", "대단하다"같은 찬사를 연발하였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병폐를 더욱 깊게 만들고야 말았다.
엄연한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유명 아나운서가 이런 책을 자신이 번역했다고 사기를 치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번역가에 크게 반발하며 항의하다가 직접 이 글을 번역한 번역가가 양심선언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듯 조용히 방송 1선에서 물러났던 것이 채 2년이 되지 않은 일이다. 한 인간의 추잡한 인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이 사건이, 마치 음주운전을 한 연예인들이 1년정도 쉬다 방송에 복귀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작금의 현실에 나는 어이가 없어진다.
이건 한 유명 아나운서가 1억원을 받고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책의 번역가로 이름을 올렸다는, 물론 이것만으로도 용서받기 어렵겠지만,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번역된 책은 서점가에 자기개발서 바람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병폐를 더욱 깊게 하였으며 자신이 광고하는 책의 본질에 대한 최소한의 고뇌도 없이, 더구나 이 책의 성공을 타고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시도를 공공연히 거듭하였던, 한 가증스러운 인간의 본질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녀는 한 번역인의 번역가로서의 삶을 마감하게 하였고 이에 문제를 제기한 다른 번역인을 매장시키려 하였다.
그녀와 출판사의 거듭된 언론플레이에 문제를 제기하였던 한 번역가에 대하여 그녀와 출판사가 크게 반발하였던 사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에 대한 실제 번역가의 양심선언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녀와 출판사가 승리하였을 그 사건에 대해 나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번역은 엄연히 하나의 창작인데 남의 창조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던, 더구나 그에 대해 자랑스럽게 자신의 능력을 떠벌이던 그녀의 가증스러운 행동들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이 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였더라면 그녀는 아마도 용서받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공격하였고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하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시 지상파 방송에 나와서 웃고 떠들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그랬듯 그녀를 롤모델로 삼고 살아가게끔 방치하는 것인가. 어떻게 저지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진정 이 사회에 상식과 원칙, 그리고 양심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적어도 잘못이 사적 차원에 한정되었던 IVY와 무개념 발언이 문제가 되었던 정선희, 양원경 같은 연예인들은 못잡아먹어 안달이면서도 정말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던 한 아나운서의 방송복귀를 오히려 환영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혀 끝이 씁쓸해진다.
2008. 6. 11. 수요일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