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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태생과 60년대 이전의 짓거리(1)

이상호 |2008.06.23 23:14
조회 110 |추천 0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오전 11시경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박성빈, 어머니의 이름은 백남의였다.

아버지는 양반의 후손이었으나 가난했으며, 처가 문중의 산지기로 일했다.

박정희는 원치 않는 자식이었다고 한다. 어머니 백남의는 이 원치 않는 자식을 지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전해진다.

박정희의 별명은 '악바리'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구미공립보통학교 시절 1등을 하면 급장을 시켜주는 제도에 매력을 느꼈으며,

3학년 때부터는 내내 급장을 맡았다고 한다. 이에 조갑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3학년에서 6학년 때 까지 급우들 중에서 박정희

에게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전한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초인의 노래1 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런 그의 통솔력이 박정희의 통치술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박정희는 나폴레옹을 존경했다고도 전해진다. 여기서 조갑제는 작은키, 사관학교 교육, 포병출신, 이혼 경력, 쿠테타로 집권, 비극적

죽음 등등 비슷한 것이 10가지나 됨을 지적한다. 대구사범으로 진학한 박정희는 36년에16세의 처녀 김호남과 결혼한다.

그리고 37년에 대구사범을 졸업하여, 40년 이곳을 떠날때까지 3년동안 선생짓을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의 영웅처럼 군인으로 살고 싶었다. 이에 그는 만주군관학교(일본학교)에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서 보낸 후 40년 3월에 만주군관학교로 떠난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로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칼 차고 돌아올 땐 군수나 서장보다 높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박정희는 야심가였다. 그리고 그는 만주군관학교에 만족하지 않고, 42년 이곳을 졸업하고 44년 일본육사까지 졸업한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에 입학한 후  다카키 마사오라는 자신의 창씨개명 이름을 오카모토 미노루로로 바꾼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이 박정희라는 이름의 일본식 변형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박정희라는 이름을 아예 버리고 황국신민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만주군관학교 출신, 일본육사 출신, 그리고 오카모토 미노루 이런 것들이 그의 친일 행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꺼삐딴 박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면모를 거의 찬양하다 시피하기도 했다.

그건 그의 다음과 같은 말에도 잘 나타난다.

"조선 사람은 풀어놓으면 모두가 지 잘났다는 것뿐이고, 지 멋대로가 아닙니까? 와 그 왜놈들이 잘 카던, 조센진도 멘타이....카 하는 말

있잖습니까.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왜놈들을 패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꼬라지를 보니 그런 히니쿠를 들어도 싸다

싶습니다. 누군가 매를 들고 두들겨 주기 전에는 이런 무질서는 백년하청일낍니다. "

저 위에 말하는 조센진도 멘타이..... 이 말은 조선인과 명태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말이다.

또 있다.

"국민 대부분은 강력한 타율에 지배당하는 습성을 제 2의 천성으로 한다."

어쨌든 박정희는 육사 출신으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건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방후 그는 광복군 3지대에 들어간다. 이 광복군 3지대에 대해 최성찬은 말한다.

"광복군 3지대는 임시정부와 일본군 패잔병의 합작품이었다. 다시 말해서 임시정부와 일본군 채잔병 집단이 야합해서 만든 부대다.

(중략)임시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고, 일본군 패잔병들은 경력을 변조하기 위해 광복군 복장과 계급장이 필요했다."

여기서 박정희는 후자 즉 일본군 패잔병 측에 서 있었다.

패잔병의 신분인지 광복군의 신분인지 박정희는 결국 46년 고향인 경북 선산군 구미면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약 4개월을 논다. 4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박정희는 46년 가을에 조선경비사고나학교 제 2기생으로 입학한다.

여기에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동기인 이한림의 도움이 컸다. 이한림은 조선경비사관학교 행정부장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46년 12월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에 있는 제 8연대에 근무하다가 소위에서 바로 대위로 진급한다.

그리고 46년에는 조선경비사관학교 중대장 자리를 맡는다. 여기서 박정희는 만주사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 동기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그리고 5.16당시 주체인맥인 육사 5기생들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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