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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도

최영호 |2008.06.24 22:26
조회 50 |추천 1


토우는 후쿠오카의 우익 민족주의 단체 겐요샤의 일원이었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당 중 연장자에 속했다. 토우는 사건 13년 뒤인 1908년 '민비를 베었을 때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번민을 하다 범행에 사용한 일본도를 신사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칼은 신칸센의 시종점인 후쿠오카 히카타역 인근의 사찰 밀집지 고후쿠마치 소재 셋신원 근처의 쿠시다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길이 1m20cm의 이 칼의 칼집에는 '단숨에 전광과 같이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문구가 적혀있어, 당시 일본의 군인, 외교관, 거류민, 낭인등으로 구성된 명성황후 시해범들이 작전명을 '여우 사냥'이라고 붙였다는 이야기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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