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누가복음 18:31)
예루살렘은 주님의 생애에서 마지막 목적지였다.
아버지의 뜻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아버지의 뜻"을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한복음 5:30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주님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도 드물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그분의 탄생에서 성장, 공생애를 지나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그 굴곡진 주님의
날들을 묵상해 보라.
주님께서 스스로 고백하셨던 것처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복음 8:20)고 하실 만큼 그분의 시간은 하늘 아래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없었던 분이시다.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셨고 그 사람들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이 슬퍼하셨던가?
많은 무리가 그의 뒤를 따를 정도로 성공과 명예를 얻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손에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비참한 실패의 자리에도 머물지 않으셨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인간적 야망이나 성공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공생애를 가시는 동안 아버지께서 주신 목적에서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누가복음 9:51)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육신적인 삶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아버지의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이 길을 가노라고 비장하게 결심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위해 결심한다.
그리고 이것 저것을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결심들을 남발한다.
그러나 신약은 오직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만을 이야기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한복음 5:16)
아버지의 목적은 위로부터 내려온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린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의식하고 그것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서 그 목적으로 인도될 뿐이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은 살아갈수록 더욱 모호해진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저곳으로 가길 원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이 특별한 일을 위해 나를 부르셨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상 우리를 이끄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목적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비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전적으로 무가치하다.
우리의 일은 그분의 목적과 일하심에 필요한 작은 기초 재료일 뿐이다.
우리가 각자 확신하고 있는 삶의 목적들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우린 오늘도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생애의 목적인 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서는 사뭇 얘기가 달라진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이룰지에 대해서 주님은 별 관심이 없으시다.
마가복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주님에게 있어 우리의 존재는 사역이 우선이 아니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룰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갈지... 주님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의 이유는 한 가지, 그것은 우리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다.
주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단지 우리와 함께 하고픔이 더욱 절실한 동기였던 것이다.
요한복음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시고 싶으셨다.
주님과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주님을 통해 우린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는 우리를 자녀로 받아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아버지의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신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누가복음 18:31)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당신은 "그분이 나를 선택하신 것은 현명하지 못하시다. 내 속에는 선한 것,
가치 있는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신다.
당신이 하나님께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한 당신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그분의 손길에 이끌려 당신의 자기만족에 종지부를 찍을 때 그분은
당신을 예루살렘으로 갈 동역자로 선택하실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분의 목적이 비로소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드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 속에
무엇을 주실 수 있는가이다. 그러므로 천성적 도덕, 인격의 힘, 지식, 경험 등은
중요하지 않다.
오지 가치 있는 것은 주님의 거역할 수 없는 뜻에 온전히 이끌림을 받아 그분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우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그분의 손이 결코 아니다.
시편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하나님의 우정은 자신의 가난함을 철저하게 아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우정은 인격적인 관계이며 서로의 성품을 통해 연결되는 긴밀한 관계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축복인지를
경험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스스로 하나님께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바로 하나님 그분이시다.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분과의 관계는 언제나 지속되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
만약 하나님과 관계가 손상을 입었다면 시간을 갖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역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이며,
그 관계로부터 흘러나오는 영향력과 성품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주의를 딴 데로 돌이키기 위해 계속적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에게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나.. (누가복음 18:31, 34)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자신이 죽임당하는 것을 보게 하셨다.
이를 본 제자들의 마음은 참담하기만 했다.
그분의 삶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히 실패였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라.
그것은 완전하고도 영원한 승리였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절대적으로 이해되거나 외형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내적 성품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깨달아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믿음에 있다.
주위의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일어난다.
모든 상황을 이끄시며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하나님은 주도적으로 이루어 나가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정을 맺고 그분과 하나가 되고, 그분은 자신의 목적대로 우리를
이끄신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우리의 삶은 단순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