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만지다
---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인전 갖고 있는 고명근
조각가의 시각으로 보고, 사진가의 기법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 고명근. 입체 작품 속에 그의 이미지가 실루엣처럼 비친다.
‘조각을 사진으로 찍는 작가’ 고명근의 개인전(6월14일~7월26일 한미사진미술관)은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일깨운다. 존 버거가 보는 사람의 시선 속에 감춰진 사회적 의미를 탐구했다면, 고명근은 서구의 고전 조각상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앵글에 감춰진 예술적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조각과 사진, 평면과 입체를 자유로이 오가며 매체와 재료를 극복하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라는 주제로 서구의 고전 조각상을 수 시간 동안 모든 각도에서, 그리고 클로즈업과 절취의 방식을 통해 촬영한, 아니 매만진 그의 사진은 보는 이의 눈을 교란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퇴적된 시간의 흔적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진 조각을 여과 없이 담아낸 사진으로 인해 전시장을 거닐던 관객들은 착시와 환영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귀환하게 된다. 조각가의 시선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소유한 고명근이라는 작가가 소중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Q. 서구의 고전 조각상을 수 시간에 걸쳐 촬영했다고 들었다.
조각을 전공한지라 해외에서 전시를 갖거나 여행을 할 때마다 언제나 박물관에 들려 조각 작품을 보는 걸 당연시했다. 조각 작품을 공부하고, 박물관에 가서 직접 보고, 자료를 모으고 돌아와서 다시 공부하는 과정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내 행위가 다른 일반 관광객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과연 조각과 사진을 공부한,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이 취할 자세인가를 놓고 고민한 것이다.
그 후로는 해외 미술관에서 조각 작품을 감상할 때 공부하는 자세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조각 작품 앞에서 몇 시간을 머물며 응시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작품 앞에서 ‘지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시간이 쌓여가면서 왜 서구의 조각 작품들이 이상적인 몸의 형태를 고민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더해만 갔다.
Q. 조각을 전공한 사진가로서 조각 작품과의 ‘교감’이라는 필터링을 거친 셈이다.
원래 나에게 조각이란 그저 공부나 촬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고, 이걸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지우자 일종의 ‘교감’이 일어나더라. 조각이 말을 거는 듯한 친밀감이라고 할까.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시 사진을 찍게 되었다. 확실히 달랐다. 교감 전과 후의 사진이 많이 틀리더라. 그 후로 사진을 찍을 때 가급적 여러 앵글에서 나만의 앵글을 가지고 조각 작품에 카메라를 갖다 댈 수 있었다.
Q. 그렇기에 여느 사진작가에 비해 조각의 물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돌 조각을 직접 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 작품이 어떤 돌로 이루어졌을까를 생각했다. 어떤 형태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물성이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오직 형태만 강조했다면 아마도 작품 전체를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성과 형태의 조화를 추구한 까닭에 조각 작품의 물성, 그 입자가 나오는 순간까지 클로즈업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Koh, Myung Keun ‘Body 7’, C- print, 2008
Q. 국내에서는 6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 동안 고명근이 찾은 것은 무엇인가?
이번 는 나만의 작업을 풀어가는 맥락을 찾은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각과 사진이라는, 두 작업을 병행하는 게 일종의 숙명이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알다시피 내 초기 작업은 나무나 쇠로 구조를 만들고 거기에 사진을 붙이곤 했다. 소재 역시 과거에는 ‘빌딩’이라는 주제에 한정되어 빌딩 외벽을 찍고 디테일을 찍은 후 확대 재생산해서 또 다른 미니어처 같은 작업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워낙 디지털 프린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형 사이즈의 사진 작업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소재와 재료를 찾은 것이다. 이처럼 소재와 재료가 바뀜에 따라 초기에 천착했던 작업에 한정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은 와 , 그리고 나무와 물을 찍은 후 투명한 입체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리즈를 병행하게 되었다. 내 작업에 있어 하나의 큰 줄기를 잡은 것. 이것이야말로 지난 수년간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자 성과다.
ⓒKoh, Myung Keun ‘Head 13,12’, C- print, 2008
Q. 사진을 얘기할 때 ‘디지털’이라는 개념을 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처음 사진은 미술의 보조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 속에 미술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디지털이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인해 지금 사진이라는 매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건 19세기 사람들이 캔버스와 유화 물감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사적으로 예술 도구가 일반 대중에게 이처럼 보편화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10년 전, 뉴욕에 머물면서 미술관에서 사진을 많이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 역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적인 특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분명한 건 사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영향력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시각예술과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평면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회화의 역사를 통해 평면에 대한 실험을 시도해왔다. 따라서 지금 사진작가들이 평면의 실험성을 조금만 차용해도 굉장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회화가 감당하던 평면 영역을 아우르는 테크놀로지의 힘이 뒷받침된 요즘 사진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사진작가인 나로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Q. 19층과 20층의 전시가 각기 다르다. 전시 감상의 포인트가 있다면?
19층에 43점, 20층에 14점 등 총 57점의 작품을 준비했다. 19층은 라는 전시 테마의 자료가 되는 평면 작업을, 20층은 이것을 이용한 입체 작업과 콜라주 작업을 따로 모았다. 19층 입구에 들어서면 관객은 시리즈를 먼저 만나게 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리즈로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썰미가 있는 관람객이라면 이 사이사이마다 사진을 통해 조각상의 세부를 근접해서 촬영해 그것이 인간의 피부인지 돌인지 구분하기 힘든 전시의 핵심적인 개념을 설명해주는 몇 점의 사진을 두 개씩 붙여놓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좀 더 힌트를 주자면 많이 훼손된 얼굴과 신체, 잘 보존된 얼굴과 신체를 섞어 놓았다. 이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작가인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오랫동안 사유했던 경험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싶다. 작가인 내가 미술관에서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받았던 감동, 그리고 그 작품들을 사진이란 매체로 ‘만질’ 때의 느낌과 사유의 축을 관객이 쫓아가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사유, 즉 깊이 생각하는 것이 사라진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대상과 사물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전시 서문을 통해 데칼코마니를 통한 놀이로서의 작업을 발견하고 있다.
알다시피 데칼코마니란 가장 기본적인, 평범한 기법이다. 조각을 나만의 특정한 시점으로 찍은 결과물은 우선 평면에 안착된다. 그리고 20층의 작업들처럼 다시 입체적인 공간으로 옮겨가거나, 데칼코마니를 통해 기이한 형상의 왜곡과 변주를 겪게 된다. 재미있는 건, 평면을 입체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적인 입방체 안에 사진을 넣다보면 자연스럽게 데칼코마니적인 형태가 나온다는 것이다. 투명한 입체 안에 사진이 들어가면 콜라주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어떤 특정 작업은 평면에 안착시키되, 데칼코마니 방식으로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고명근은 조각과 사진,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재료와 매체의 한계를 극복한 작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Q. 사진과 조각, 평면과 입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처음 입체 작업을 시작할 때는 단순히 머릿속에서의 생각에 의존했다. 하나의 모델을 입체로 만들기 위해 드로잉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작가적인 상상력이라는 기본 재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면서 결과물과 거의 같은 수준의 밑그림을 만들 수 있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바로 이 시간, 즉 작업을 계획하고 시뮬레이션을 거듭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건 아마도 바로 이때가 가장 순수한 창작의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후 이어지는 물리적인 작업도 너무나 좋다. 입체 작업의 마지막에는 패널과 패널을 인두로 녹여 지져 붙이는 작업이 필수인데, 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이 시간을 너무나 즐긴다. 작가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Q. 관객이 고명근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는 소통의 지점은 어디인가?
매체나 소재란 일종의 과학의 산물이다. 내가 사용하는 매체와 소재, 즉 디아섹(고투명 고강도 아크릴을 사진 위에 접착하여 프레임이 없는 액자로 만드는 방식)과 캔버스에 사진을 얹고 그 위에 필름을 얹어 압축하면 캔버스 질감이 사진에 나오는 방식,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 등은 모두 테크놀로지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내 작업은 바로 예술에 적용된 첨단 테크놀로지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조각 작품이 만났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내가 사용하는 테크놀로지와 사진 속 작품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간극에서 빚어지는 날카로운 대비가 관객의 감동으로 연결되기를 소망한다.
| 윤동희 _ 미술 저널리스트,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
* 고명근은 서울대 조소과와 뉴욕 프랜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국민대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91년 뉴욕 히긴스 홀(Higgins Hall) 갤러리, 1993년 금호미술관, 1999년 학고재 아트스페이스 서울, 2003년 한미사진미술관, 2006년 샌프란시스코 프레이 노리스(Frey Norris) 갤러리, 2007년 시카고 앤드류 배(Andrew Bae)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